오랜 논란 끝에 문을 연 로스쿨이 올해 첫 신입생을 받는다. 올해가 로스쿨 원년인 셈. 그런데 새해 들어 접한 로스쿨에 관한 첫 기사는 몹시 우려스러운 내용이었다.
전국 25개 로스쿨이 3월 개원을 앞두고 예비 신입생을 대상으로 로스쿨 간의 본격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법학 특별과외를 개설하고 있다는 기사다. 로스쿨협의회 관계자의 발언을 이용한 기사에 따르면, 전국 25개 로스쿨 합격자(2000명) 중 67%가 법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이에 로스쿨 측은 "신입생의 법학 전문지식이 부족하면 수업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며 대부분 기본 3법(헌법·민법·형법) 특별과외를 마련한 것이다.
로스쿨 제도를 도입한 취지를 떠올려보면, 이런 보도 내용이 얼마나 우려스러운 것인지 알 수 있다. 사법시험을 통과한 뒤 사법연수원의 교육과정을 거치는 기존 법조인 양성시스템에서 제기되었던 문제점인 주입식, 암기식 교육에서 벗어나 사회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전문성을 가진 법조인을 양성하겠다는 게 로스쿨을 도입한 취지였다.
그러나 과연 이런 취지가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까. 물론, 로스쿨 1기생이 배출되지 않아 아직 제도 시행의 성패를 가늠할 수 없는 이 시점에서 함부로 예단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한국 로스쿨이 이미 실패로 드러난 일본 로스쿨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징후는 많다. 일본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고, 로스쿨 도입의 원래 취지를 제대로 살리려면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가야 할까.
핵심은 이익집단간의 역학관계다. 로스쿨을 둘러싸고 있는 3개의 이익집단인 법률서비스 수요자, 로스쿨의 교육을 담당하는 로스쿨 당국, 새로운 경쟁자들의 유입을 기다리고 있는 기존의 법조계 사이의 관계다. 이 관계를 제대로 들여다 볼 때, 해법도 찾을 수 있다.
일본 로스쿨의 총체적 실패
먼저 우리보다 먼저 미국식 로스쿨 제도를 도입한 일본의 예를 살펴보자.
지난 2004년 출범한 일본의 로스쿨은 우리와는 달리 설치기준에 맞는 모든 신청 대학에 로스쿨 인가를 내주는 제도로서 현재 일본에는 모두 74개 로스쿨이 있고 입학생 총원은 5800명에 이르고 있다. 위와 같은 총 정원의 확대로 인하여 발생한 문제는 로스쿨 학생 수와 사법시험 합격자 수의 차이에서 발생하는데, 2006년에 처음 실시된 새 사법시험에서는 2087명이 응시하여 1009명이 합격했고(합격률 48.3%), 2007년 시험에서는 4600명의 응시자 중 1851명(합격률 40.2%), 2008년에는 6261명 중 2065명(합격률 33%)이 합격했다. 로스쿨 중 제일 높은 합격률은 65%, 제일 낮은 합격률은 3%에 불과했다. 애초의 정책방향은 졸업생의 70내지 80%가 합격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지금 법무성과 일본변호사단체협회는 합격자 수를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 결과, 여러 가지 부수적인 문제와 병폐가 나타나고 있는데, 로스쿨 도입목적이 변호사를 대량으로 공급해 법률서비스의 양과 질을 높이자는 것이었는데 합격률이 낮아지면서 '고시낭인'이 연간 5000명에 달하게 됐다.
이에 로스쿨 입학 지원자가 줄어들기 시작하였고, 특히 비(非)법학 전공자의 지원이 감소하여 합격생 중 비법대 출신의 비율이 30% 아래로 떨어졌다. 또한 로스쿨 학생들은 사법시험 과목에만 집중하게 되고, 심지어 사설 고시학원의 특강을 로스쿨 안에 끌어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고시낭인 ' 해소, 다양한 지적 배경을 갖춘 변호사 양성, 변호사 수 증대 등 로스쿨 도입 취지가 대부분 제대로 구현되고 있지 않은 셈이다.
비법학 전공자 겨냥한 고액 사교육, 여전히 소외된 지방 인재
그렇다면, 이제 첫 신입생을 받은 한국 로스쿨의 문제를 들여다 볼 때다. 먼저 꼽을 수 있는 게 로스쿨 제도 시행과 관련한 천문학적 비용 문제다.
2008년 교육부 국감자료에 따르면 로스쿨을 유치한 대학들이 로스쿨 유치를 위해 평균적으로 투자한 금액은 116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중앙대는 549억1900여만 원, 서울시립대는 2784억5900여만 원, 성균관대는 230억3000여만 원 등을 지출하였고, 한편 로스쿨 첫해인 2009년도 1학기 등록금은 성균관대 1000만 원, 연세대 975만 원, 국립대인 서울대는 675만 원으로 책정됐다.
이와 더불어 로스쿨 입시 관련 학원들은 앞 다투어 로스쿨 진학반을 준비하고 있다.
강남 한 학원의 종합반은 2008년 12월 29일부터 2009년 11월 17일까지 진행되는데, LEET(법학적성시험)와 모의고사, 학원 자체 특강, 출제위원급 교수의 모의고사, 논술첨삭 등이 포함된 과정의 수강료는 800만 원, 여기에 1대 1식 집중강의 과정이 포함되면 1200만 원에 달하게 된다. 로스쿨 전문 학원인 LSA학원이 2007년 학원을 방문한 학생 6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학원 방문자 중 공학 계열 전공자가 20%(137명), 경영·경제 계열은 21%(143명), 사회·인문 계열은 22%(147명)으로 나타난 반면, 법학 전공자는 87명으로 9.3%에 불과했다. 즉 비법학 전공자들이 학원의 잠재적인 수요자인 셈이다.
하지만, 한국 로스쿨이 일본 로스쿨의 전철을 밟게 된다면, 현재 막대한 사교육비를 쓰고 있는 비법학 전공자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지방인재 육성에 관한 문제다.
지난해 12월 5일 전국의 로스쿨 합격자 현황을 살펴보면, 지방 소재 로스쿨 합격자의 상당 수가 수도권 대학 출신으로 나타났는데, 학교별 비율을 보면 원광대 83%, 동아대 75%, 전북대 74%, 경북대 73%, 부산대 63%의 합격자가 서울 및 수도권 대학 출신으로 나타났다.
반면, 서울대의 경우 로스쿨 합격자 150명 중 지방대 출신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제주대의 경우는 제주대 출신이 한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나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만든 로스쿨 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
로스쿨 논란, 왜 대학과 법조계 목소리만 있나
로스쿨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대학 당국은 위와 같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하여는 총정원의 확대와 인가 대학의 증설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기존 법조계는 무리한 충원은 자칫 일본 로스쿨과 같은 합격률 저하로 사회적 비용손실이 우려되고, 수준 낮은 법조인들의 양성으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그 피해는 사법수요자인 일반 국민들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오히려 로스쿨 졸업 후 2년간 수습변호사 과정을 거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대학 당국의 주장은 법조인의 양적 증가를 통해 법률서비스의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도출된 것이다. 반면, 법조계의 주장은 양적 증가보다는 질적 서비스의 측면에서 법률서비스의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대립은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여 합리적인 해법을 도출해 낼 수 있는 수준의 이해충돌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로스쿨을 둘러싼 잡음과 갈등을 보면, 이처럼 합리적인 해법이 가능한 수위를 훨씬 넘어선 듯하다. 이유가 뭘까.
필자는 법률서비스의 수요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빠졌다는 점을 들고 싶다. 로스쿨 관련 이해당사자인 대학당국, 법조계, 법률서비스 수요자 가운데 앞의 두 당사자만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고시 방식에서 소외된 이들, 로스쿨 방식에서도…"수요자 중심 관점 필요"
앞서 언급한 로스쿨 1기생에 대한 특별과외 역시 이런 구조에서 나온 결과다. 로스쿨 1기생에 대한 특별과외를 통해 변호사 시험에 다수의 합격자를 배출하여 로스쿨 간 경쟁의 우위를 점하려는 게 대학당국의 시도는 결국 사법시험에 의존하는 과거 방식으로 회귀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법학전문대학원의 교육이념은 국민의 다양한 기대와 요청에 부응하는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풍부한 교양, 인간 및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유·평등·정의를 지향하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건전한 직업윤리관과 복잡다기한 법적분쟁을 전문적·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 및 능력을 갖춘 법조인의 양성에 있다"고 돼 있다.
대학과 법조계의 이익 다툼 속에서 실종돼버린 법률서비스 수요자의 권리를 찾아야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 사법시험 제도에서 소외됐던 이들이 로스쿨 제도에서 다시 소외되는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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