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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징★오케스트라와 만나다

[뷰포인트] 노다메 칸타빌레 콘서트 시즌3 리뷰

처음엔 그저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를 본 뜬 가짜 S오케스트라일 뿐이었다. 3년 전 첫 번째 연주에서 그들은 모방 이상이란 걸 보여줬다. 지난해 두 번째 연주에서 그들은 진짜 S오케스트라가 됐다. 그리고 지난 1월 4일 저녁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마지막 연주에서 그들은 음악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들은 진짜 라이징 오케스트라였다.

그들의 마지막 공연은 진지했다. 분연했다. 치열했다. 공연장 밖에선 오늘도 망구스가 돌아다녔다. 천진한 관객들은 망구스 곁에 서서 까르르 웃었다. 그러나 S오케스트라에게 이번 공연은 더는 놀이가 아니었다. S자가 새겨진 노다메 티셔트도 입지 않았다. 말끔한 연미복과 드레스를 차려 입은 그들은 당당한 프로 연주자들이었다. S오케스트라는 지난 3년 동안의 성장을 보여주고자 애썼다.

▲ 올해로 세번째이자 마지막을 맞은 칸타빌레 콘서트.

선곡부터 달랐다. 시작은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작품 번호 35번 1악장>이었다. 아주 대중적인 클래식이다. 그래서 더 어렵다. S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리니스트의 기량이 대번에 드러난다. 낭만적인 곡인 만큼 지휘자의 드라마틱한 곡 해석과 바이올린 솔로이스트의 화려한 연주가 역동해야 한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의 연주엔 젊은 힘이 있었다. 난해한 소절을 거침 없이 돌파했다. 오케스트라에 압도되지 않으려는 분연함마저 있었다. 그는 때론 미숙했고 문득 경험이 부족했다. 촘촘하기 보단 성큼 성큼 연주였다. 그의 연주에선 풋내가 났다. 그건 안느 소피에 무터와 앙드레 프레빈의 협연에선 느낄 수 없는 열정이었다. 그건 젊은 연주자의 패기였다. 다음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었다. 라흐마니노프는 앞선 시즌들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이번엔 좀 달랐다. S오케스트라는 이번엔 작정한 듯 3개 악장을 모두 연주했다. 앞선 시즌의 라흐마니노프가 드라마의 재현이었다면 이번 라흐마니노프는 창조였다. 그들은 드라마의 라흐마니노프를 재현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자신들만의 라흐마니노프를 보여주고자 했다.
익숙한 1악장이 지나가고 맑은 호수의 정경과도 같은 2악장이 시작되자 비로소 그들이 구태여 <칸타빌레 콘서트>의 마지막 시즌을 준비한 까닭이 읽혔다. 그들은 드라마의 인기에 영합한 기획물이길 거부했다. 척박한 클래식 음악계에서 무언가에 기대 오케스트라를 시작하게 됐지만 그들은 홀로 당당히 서려는 의지를 잊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의 음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피아니스트 이효주의 연주는 드라마로 친숙한 1악장에서보단 서정적인 2악장에서 빛났다. 1악장에선 어느 부분에선 하모니가 불안했고 어느 부분에선 음이 떨렸다. 그렇게 질풍노도를 지나자 2악장의 고요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는 혼신을 다하고 있었다. 더 이상 <칸타빌레 콘서트>는 음대생들의 바깥 나들이가 아니었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그들의 자신이 지금 도달한 최고의 연주를 해 보이려 애쓰고 있었다.
공연의 백미는 <베토벤 교향곡 7번>이었다. 역시 작정이나 한 듯 4악장을 모두 연주해 보였다. 앞선 시즌들이 S오케스트라라라는 이름의 이벤트였다면, 마지막 시즌은 S오케스트라의 온전한 연주회였다. <베토벤 교향곡 7번>은 그걸 알려주고 있었다. 지휘자 최수열은 지난 3년 동안의 성취를 이 한 곡에 모두 담아냈다. 앞선 시즌에서 들었던 베토벤이 아니었다. 그는 7번을 어느 때보다 드라마틱하게 연주했다. 변주와 합주는 능숙해졌고 이젠 완숙함마저 엿보였다. 그는 7번의 음표 지도를 완벽하게 꿰고 있었다. 지난 3년 동안 함께 한 곡이었다. S오케스트라와 최수열이 연주하는 4악장은 어떤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던 <베토벤 7번>의 4악장보다 상쾌했다.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도쿄도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던 그 <베토벤 7번>의 4악장과도 달랐다. 훨씬 낭만적이고 훨씬 상쾌한 진짜 S오케스트라만의 연주였다.

그 순간 청년 연주자들의 마음이 두근두근 떨리고 있었다. 이제 끝이었다. S오케스트라도 끝이었다. 지난 3년의 도전과 실험도 끝이었다. 바이올린의 활이 쉴새 없이 움직였다. 어르신 호른 주자 김필배의 훤한 얼굴에 미소가 스쳤다. 지휘자 최수열은 몸으로 노래를 하고 있었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들이 이제껏 제대로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던 악기 돌리기를 시도했다. S오케스트라의 진지했던 분연했고 치열했던 마지막 공연이 끝났다는 신호였다.

<칸타빌레 콘서트>는 무모한 실험이었고 영민한 기획이었고 염치 없는 모방이었고 그럴 듯한 쇼였지만 결국 스스로 진짜가 됐다. 드라마의 S오케스트라를 보기 위해 호기심으로 <칸타빌레 콘서트>를 찾았던 관객들은 이제 현실의 S오케스트라의 음악을 분간한다. 젊은 연주자들에게 <칸타빌레 콘서트>는 기회였다. 지휘자 최수열은 이번 공연을 끝으로 독일로 음악 유학을 떠난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다. 현대음악을 했던 아버지 탓에 음악은 무조건 난해한 거라고 생각했다. 음악을 싫어했다. 처음엔 작곡을 전공했지만 설계자보단 현장 감독이 적성에 더 맞는 거 같아서 지휘과로 바꿨다. 하지만 오케스트라가 없는 지휘자는 배가 없는 선장과도 같다. 최수열은 <PREMIERE>와의 인터뷰에서 말했었다. "지휘자 입장에선 오케스트라를 연습시키는 건 연습이 아니라 실전이다. 그 순간만이 유일하게 내 악기를 만질 수 있으니까. 1분 1초가 아까웠다." 최수열에게 S오케스트라는 지휘자로서 자신의 적성과 재능을 시험할 기회였고 그는 자신을 증명해 보였다. 자신이 갈 길을 찾았다.
어르신 호른 수석 김필배는 한때 악기를 놓은 적이 있었다. 스스로의 재능을 의심한 탓이었다. 퇴보하는 듯한 자신이 두려웠다. 유학을 다녀온 뒤엔 두터운 현실의 벽과 마주쳤다. 프로 연주자로 살아간다는 건 외로운 일이었다. S오케스트라는 인생의 고비에 만난 행운이었다. 김필배는 <PREMIERE>와의 인터뷰에서 말했었다. "프로페셔널 오케스트라는 친구 사이가 아니다. 음악에 대해서 함부로 조언도 못한다. 기분 나빠할 수 있기 때문이다. S오케스트라에선 달랐다. 즐겁게 연습을 했다. 아직 내가 즐겁게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걸 느껴서 그게 제일 행복했다." 지금 호르니스트 김필배는 프로 오케스트라의 수석 호른 주자다. 일회성이 그칠 수도 있었던 S오케스트라를 진짜 오케스트라로 만든 건 그들의 진짜 음악이었다.

이제 즐거운 음악 시간은 끝났다. 하지만 <노다메 칸타빌레>에서도 치아키가 말했다. "모든 건 <베토벤 7번>에서 시작됐다. 이번에도 <베토벤 7번>에서 모든 게 다시 시작될 거 같은 기분이 든다." 1월 4일 저녁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섰던 한 무리의 젊은 연주자들에게도 썩 어울리는 말이다.

<칸타빌레 콘서트> 마지막 시즌 공연은 1월 3일 대구 공연을 시작으로 1월 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고, 1월 17일 부산 문화회관 대극장, 1월 18일 창원 성산아트홀 대극장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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