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은 물러가라!"
2009년 기축년 새해를 맞이하던 서울 종로 보신각 앞. 자정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10만 인파 사이에서는 환호가 울려 퍼졌다. 구호도 함께였다. 5000개의 노란 풍선과 33개의 풍등이 하늘 위로 올라갔다.
올해도 어김없이 보신각에서는 '제야의 종' 타종 행사가 예정돼 있었다. 이곳에서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는 촛불을 들자는 제안이 수 일 전부터 인터넷을 타고 속속 번져 나갔다. 누리꾼들은 저마다 촛불뿐 아니라 할 수 있는 퍼포먼스, 준비물을 마련해가겠다고 했다.
경찰은 이날 일찍부터 '촛불 집회'를 막겠다며 종로 일대에 142개 중대 1만2000명에 달하는 대규모 병력을 배치했다. 경찰 버스가 빈틈없이 차도와 인도 사이에 차벽을 만들었고, 오후 8시경부터 종각역을 비롯한 인근 역에는 출입구마다 경찰이 배치됐다. 또 인도와 역내 곳곳에 배치된 전·의경과 체포전담조는 시민들이 들고 있던 촛불, 깃발, 피켓 등을 빼앗았다.
▲ 올해도 어김없이 보신각에서는 '제야의 종' 타종 행사가 예정돼 있었다. 이곳에서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는 촛불을 들자는 제안이 수 일 전부터 인터넷을 타고 속속 번져 나갔다. ⓒ프레시안 |
"우리보다 전경이 더 많네. 누구 위해서 잔치하는 거야?"
타종 행사를 보러 나왔던 시민 중 일부는 삼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풍경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김숙자(가명·60) 씨는 오후 8시경 보신각 앞을 빈틈없이 둘러싸고 시민의 통행을 막는 경찰을 보며 "육십 평생 새해 맞는 보신각 앞에서 이런 꼴은 처음 본다"며 "이 정부가 경제를 어렵게 만들어 살기 힘들게 하던니 또 쓸데없는 데 돈을 쓰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유례없는 상황에서 경찰들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종각역 안에 배치돼 있던 경찰들은 기자가 사진을 찍으려 하자 순식간에 10여 명이 둘러싸며 사진을 찍지 못하게 막았다. 또 경찰은 한 시민이 거칠게 항의했다는 이유만으로 물리적으로 임의 동행한 뒤, 이어지는 시민들의 항의를 무시하기도 했다.
'대운하 반대' 뱃지를 나눠주던 김유미(가명·19) 씨는 "방금 전에 경찰이 와서 세 명 이상 모여서 구호 외치면 잡아간다고 위협하더라"며 "자기 주장 하나 맘대로 못 외치나.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는 "촛불 집회 소식을 듣고 나왔다"며 "운하를 정말 판다고 하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을 파괴하는 이명박 때문에 답답해서 못 살겠다"고 호소했다.
자정이 가까워 오면서 촛불과 손피켓을 든 인파가 점점 더 많아졌다. 경찰은 깃발과 촛불, 그리고 풍선을 '단속'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점점 더 모여든 시민들은 "명박 퇴진, 독재 타도"를 함께 외쳤다. MBC 노동조합을 비롯해 언론노조 조합원, 언론단체 회원 등 800여 명은 오후 8시경 프레스센터 앞에서 약식집회를 가진 뒤 종로와 시청 일대에서 언론노조 총파업 지지를 호소하고 한나라당의 언론 관련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선전전을 벌였다.
▲ 경찰은 보신간 주변에 병력을 집중 배치해 촛불을 든 시민들이 행사장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마치 경찰이 모여 '타종 행사'를 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프레시안 |
▲ 종각역 일대에는 빈틈없이 경찰이 배치됐다.ⓒ프레시안 |
"풍선을 빼앗아라!"…경찰이 연출한 '쟁탈전'
오후 9시 무렵, 견지동 평화박물관 앞에서는 때아닌 '풍선 쟁탈전'이 벌어졌다. '우리 선생님을 돌려주세요'라고 적힌 노란 풍선을 두고 경찰이 '불법 시위용품'이라고 하며 뺏으면서 몸싸움이 일어난 것이다.
이 풍선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을 비롯해 시민들이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해직당한 교사들의 중징계가 부당하다는 사실을 알리려 제작했던 것. 1월 1일 자정을 기해 하늘로 날리려 준비한 풍선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풍선을 빼앗아 속속 날리거나 터트렸고, 1시간 넘게 이어진 쟁탈전에서 100여 명의 시민들이 항의하며 몸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지난 12월 해임된 최혜원 교사과 시민 1명이 연행됐다.
옆에서 지켜보던 한 시민은 "경찰이 풍선을 뺏으려고 여고생을 발로 차기도 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또 다른 시민은 "정말 풍선의 용도를 알려줘야겠다. 풍선은 아이들 운동회, 재롱잔치에도 쓰인다. 단 12월 31일에 종로에 나오기만 하면 시위 용품이 된다"고 꼬집었다.
▲ 평화박물관에서 나오는 풍선을 시민들이 가져가려 하자 경찰은 주위를 봉쇄한채 시민들 사이에서 전달되는 풍선을 뛰어다니며 낚아챘다.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지면서 최혜원 교사 등 시민 2명이 연행됐고 여러 명이 경상을 입었다. ⓒ프레시안 |
"새해 소원? 첫째도 MB 아웃, 둘째도 MB 아웃, 셋째는 제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다."
인천에서 온 김상익(가명·41) 씨는 "TV만 보고 욕만 하느니 나와서 이렇게 집회에 참가하는 게 보람있겠다 싶어 처음으로 촛불 집회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을 장악하려는 문제가 제일 심각하다"며 "방송이 장악되면 우리도 모르게 세뇌당할 수 있기 때문에 막무가내 대통령을 빨리 끌어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좀 대통령이 바뀌어서 암울한 시대가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빨리 대통령이 바뀌어서 묻어놓은 펀드가 좀 올랐으면 좋겠어요."
손피켓, 모형 삽, 촛불 등 제각기 준비한 물품을 손에 들고 구호를 높이 외치던 이들은 '새해 소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통령이 바뀌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유선 씨(가명, 33)는 "상식적으로 뉴스만 봐도, 아무리 걸러 내려고 해도 이 정부의 실정이 보인다"며 "새해에는 명박 탄핵 외에는 소원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 사는 주부 박연희(가명·35) "원래 귀찮아서 타종 행사 같은데에는 안 나왔는데 어청수 청장이 오늘 보신각 앞에서 시민과 촛불을 분리해야 한다는 등 헛소리를 해서 참을 수 없어 나왔다"며 웃었다. 그는 "언론마저 정부와 재벌이 장악되는 문제는 최소한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며 "안정을 가지고 아이를 가져야 하는 상황인데 이명박 때문에 아이가 안 생기는 것 같아서 스트레스 해소하려고 나왔다"고 말했다.
보신각 앞 무대에서 공연이 펼쳐지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는 가운데 새해를 맞는 흥겨운 분위기와 함께 'MB 아웃'을 외치는 열기는 더욱 고무됐다. '시민'과 '시위자'를 구분해 막겠다던 포부를 밝혔던 경찰은 사실상 포기한채 차량 방송을 통해 "안전을 위해 촛불과 구호를 자제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카운트다운이 끝난 뒤 이어진 '타종 행사'에서도 구호 등을 외치면서 집회를 한 뒤 오전 1시 30분경 대부분 귀가했다. 사상 유례없이 '제야의 종' 행사에서 벌어진 촛불 집회와 함께 시작된 2009년, 한국 사회는 어떤 일들을 겪을까.
▲ ⓒ프레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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