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국회의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민주당의 국회 본회의장 기습 점거에 이어 28일엔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국회의장 경호권 발동 및 쟁점법안 직권상정을 공식 요청했다.
청와대도 연말 쟁점법안 처리에 강경한 입장이다. 퇴로는 봉쇄되고 결단의 시간만이 다가오고 있다.
전날 지인이 주지로 있는 수원 용주사를 거쳐 지역구인 부산 영도에 머물고 있는 김 의장은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좀 두고 보자"며 말을 아꼈다.
경호권 발동에 대해서도, 연내 직권상정 여부에 대해서도 "좀 두고 보자"면서 "무엇이 가장 바람직한 방향인지 구상중에 있다"는 답변 이외에 첨언이 없었다.
다만 "서울이 있으면 뭐 하느냐"고 답답한 속내를 드러냈고, 충무공 이순신의 `한산도가'중 `一聲羌笛更添愁(일성강적경첨수.어디서 들려오는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느냐)'를 인용해 결단을 앞둔 심경을 밝혔다.
김 의장은 일단 29일께 현 상황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전해졌다.
그 내용은 당장 경호권 발동 및 직권상정 여부보다는 시한을 정해 여야 마지막 대화를 촉구하고, 그때까지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모종의 결단을 시사하는 내용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한 측근은 "의장으로서는 양단간 선택을 해야하는 입장이고, 물리력 충돌까지 예상되는 상황에서 착잡하고 비장한 심경"이라며 "내일쯤 의장께서 직접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장 입장에서 가장 고민이 되는 대목은 결국 시기다.
여야 막판 협상 타결로 최소한 민생법안에 대한 처리가 합의될 경우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여권의 연내 처리 압박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경호권 발동을 포함해 대대적인 충돌을 감수하면서 법안을 무더기로 직권상정하기에 여론이 무르익었는지 아직 미지수다.
내달 8일까지가 회기인 만큼 여야 협의를 요청하는 것이 본인 입장에선 바람직하겠지만, 본회의장까지 점거당한 상황에서 대화만을 주장하는 것은 자칫 끌려다니는 무기력함으로 비칠 수 있다.
법안 강행 처리에 따른 모든 부담이 최종적으로 본인에게 전가되는 상황도 부담스럽다.
한 측근은 "연내 처리 여부가 국회의장 입장에서도 제일 고민스러운 부분"이라며 "하다못해 병력 배치라도 제대로 해 놨어야지, 본회의장까지 다 점거당해놓고 우리보고 청소까지 하면서 직권상정을 하란 말이냐"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또 다른 측근도 "어느 정도 조건과 명분을 충족시켜 줘야지, 대화의 노력도 없고 국민설득의 노력도 없고 여론조성도 안하고 국회의장한테 모든 것을 떠넘기고 있는 것 아니냐"면서 "원내 지도부야 사퇴하면 그만이지만 모든 짐은 의장에게 돌아온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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