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데 없다. 한나라당이 갑자기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있다. 교원평가제를 완화하고 노동법 개정을 미루기로 했다. 초중등교육법에서 교원 평가결과를 '인사자료로 활용해야 한다'고 명시하려던 의무규정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으로 바꾸기로 했다. 비정규직 고용기간 연장 등을 담는 노동관련법은 이번 회기 안에 '반드시 처리해야 할 법'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어찌된 일일까? 이번 회기에선 민생·경제법안을 처리하고 이른바 사회질서법은 협의해서 추진하자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사실상 거부했던 한나라당이다. 전교조에게 매타작을 퍼붓던 한나라당이다. 노동계에 고통 '분담'을 강요하던 한나라당이다. 그랬던 한나라당이 갑자기 태도를 누그러뜨린 것이다. 그 이유가 뭘까?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말에 답이 있다. "특정 계층의 집단적 반발을 불러올 소지가 있는 법들은 이번에 처리하지 않겠다"는 그의 말에 계산법이 숨어있다.
"특정 계층의 집단적 반발을 불러올 소지가 있는 법들"을 다르게 해석하면 "특정 계층의 결기와 결속을 집단화하는 법들"이 된다.
이런 현상을 막겠다는 것이다. "특정 계층의 집단적 반발"이 발화점이 돼 국민적 저항으로 확산되는 걸 막겠다는 것이다. 1996년 노동법을 날치기해 국민적 저항을 자초했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것이다.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을 강행처리했다가 당이 존립 위기에 내몰렸던 악몽을 다시 꾸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른 것이다. 교원평가제를 고르고 비정규직을 고른 것이다. 이미 조직화 돼 있는, 그래서 언제든 집단적 반발을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교사와 노동자를 일단 누르려는 것이다. 이들이 '생존' 명분으로 국민에 파고들고, '연대' 기치아래 거리에서 뭉치는 걸 막으려는 것이다. '생존'이 '민주'와 만나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차단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반발'을 고립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법안'을 처리하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방송과 통신이고, 그게 바로 신문-방송 겸영과 사이버모욕죄 도입이다.
인터넷은 조직돼 있지 않다. 그래서 "집단적 반발"을 조직할 구심이 없다. 방송은 조직돼 있지만 결속력이 약하다. 설령 방송이 "집단적 반발"을 한다 해도 같은 언론 범주에 드는 다른 신문이 방송의 후방을 칠 수 있다. 그래서 "집단적 반발"을 최소할 할 소지가 있다.
이렇게 방송과 인터넷의 입을 틀어막을 수 있다면 그 다음에 "특정 계층의 집단적 반발"이 나타나더라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고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목소리가 국민에 전달되는 통로를 차단함으로써 "집단적 반발"을 "조직적 사보타지"로 각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태도를 누그러뜨린 게 아니다.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속도를 조절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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