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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전교조 빨갱이가 새빨간 교과서로' 딱 이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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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전교조 빨갱이가 새빨간 교과서로' 딱 이 수준"

[인터뷰] '징계 철회' 1인 시위 나선 한홍구 교수

"너희들 춥지?"
"안 추워요! 괜찮아요!"
"춥잖아! 교장 선생님은 너희가 안타까워서 그러는 거예요~."
"우리 위해서 그러는 거 아니라는 거 다 알아요. 우리는 마음이 춥다니까요."

22일 서울 송파구 거원초등학교 교문 앞은 작은 교실이 됐다.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해임을 통보받은 이 학교 6학년 9반 담임 박수영 교사가 교문 밖에서 수업을 연 것이다. '아스팔트 수업'은 이날로 사흘째였다.

박수영 교사는 교내로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는 교장·교감에게 학부모와 학생들은 '담임 없는 교실'에 학생들이 들어갈 수 없다며 맞섰다. 학생들은 인도에 옹기종기 앉아 담요를 덮고 수업에 참여했고, 학부모들은 학생을 둘러싸고 바람막이를 만들고 수업을 도왔다. '시설 보호'를 위해 경찰 3개 중대를 부른 교장은 경찰 뒤에 들어갔다가 시시때때로 나와 학생들에게 교실로 들어갈 것을 요구했다.

이날 거원초 앞에서는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도 만날 수 있었다. 부당한 징계에 항의하기 위해 1인 시위를 하러 온 것이었다. 한홍구 교수는 "얼마 전부터 줄곧 '곧 해직교사가 나올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이렇게 뜻밖의 일로 교사들이 해임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 22일 서울 송파구 거원초등학교 교문 앞은 작은 교실이 됐다.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해임을 통보받은 이 학교 6학년 9반 담임 박수영 교사가 교문 밖에서 수업을 연 것이다. '아스팔트 수업'은 이날로 사흘째였다. 학생들은 추위를 잊기 위해 박 교사가 고안한 'OX퀴즈'에 참가하며 즐거워했다. ⓒ프레시안

"우리나라에서 제일 가는 졸업 앨범을 만들자"

"여러분이 6학년이어서 아직 어린이일줄 알았더니 다 어른이 된 것 같다. 세상이 험하면 철이 빨리 든다."

한홍구 교수는 학생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씁쓸히 말했다. 그는 "박수영 선생님은 2003년에 대학원에서 저의 한국현대사 강의를 들었던 학생"이라며 "말도 안 되는 일로 쫓겨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몹시 화가 나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한홍구 교수는 이어 '깜짝 제안'을 했다. 그는 "어떤 학교에서는 졸업 앨범에서 선생님들 이름을 뺀다는 얘기도 들린다"며 "우리 해직된 선생님들의 반 학생들이 함께 대한민국에서 제일 가는 앨범 7권을 만들어보자"고 말했다. 그는 "가장 뛰어난 사진 작가들을 알아보고 있다"며 "방학 때 즐겁게 나들이도 가보자"고 말했다.

이어 한 교수는 "20년 전에도 선생님들이 많이 잘린 적이 있었지만 여러 학생들이 잘 지켜줬기 때문에 결국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며 "선생님을 잘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아이들의 환호와 박수소리가 울려퍼졌다.

"수구 세력의 공세는 점점 심해질 것"

"역사 교과서를 비롯해 교육 분야에서 수구 세력들의 공세가 점차 세질 것은 분명했다. 어떤 걸 빌미로 잡을 지는 몰랐지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들이 표적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지만 일제고사에서 선택권을 준 이런 문제로 해직될 줄은 몰랐다."

한홍구 교수는 "왜 하필 전교조가 표적이 됐을까"라는 질문에 "정부가 생각하는 바가 바로 그렇지 않나"라고 일갈했다.

"아이들이 먼저 나오면서 촛불 집회가 시작됐다. 왜 애들이 먼저 나왔는지 고민하던 끝에 우파들이 내린 결론은 '전교조 빨갱이들이 새빨간 교과서를 가지고 아이들을 망쳐 놓았기 때문'이었다."

한 교수는 "이런 판단에 기반한 공세가 내년에는 더 심해질 것"이라며 "전교조 불법화가 목표일 테니 그 과정에서 대량 해직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한 교수는 누가 봐도 무리수를 둔 교육 당국의 처사가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그간 전교조에 대한 인상이 굉장히 왜곡돼 전달되어온 것이 사실"이라며 "그것을 바로 잡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한홍구 교수는 그 과정에서 당사자인 전교조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중의 지지와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 대한 위기 의식을 끄집어내야 한다"며 "전국 교사들의 의견을 묻고, 또 2009년은 어떻게 대처해나갈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원초를 방문했던 한 교수는 이어 역시 해임당한 설은주 교사가 근무했던 유현초등학교로 발길을 돌렸다. 설 교사 역시 한홍구 교수의 수업을 듣는 학생이었다.

"누구의 말이 위선이고 가식인가"

▲ 학생들은 10~20분 간격으로 수업 진행을 끊고 학교 안으로 들어갈 것을 종용하러 나오는 교장에게 "교장 선생님, 우리 수업하게 해주세요"라고 호소했다. ⓒ프레시안
한편, 혹한 속에서도 이날 '아스팔트 수업'은 1시간 이상 계속됐다. 아이들의 건강을 염려한 학부모들은 바로 옆 성당을 잠시 빌려 오후 12시 10분까지 수업을 무사히 마쳤다.

이날 수업에는 박수영 교사의 학급 학생 30명 중 대부분이 참여했지만 일부 등교를 일찍 했던 학생들은 학교 밖으로 내보내주지 않아 박 교사의 수업에 불참할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은 10~20분 간격으로 수업 진행을 끊고 학교 안으로 들어갈 것을 종용하러 나오는 교장에게 "교장 선생님, 우리 수업하게 해주세요"라고 호소했다.

30여 명의 학부모 역시 수업이 끝날 때까지 '교실'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수백 명의 경찰을 동원해 학부모와 교사를 막으려 하는 학교 측의 처사를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경찰의 숫자는 지난 17일 첫 출근 투쟁이 시작된 이후 매일 배 이상 불어나고 있었다.

수업 중인 자신의 손자를 바라보던 한 학부모(74)는 교장을 향해 "경찰을 이렇게 들여놓다니, 동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며 "교장 선생님이 사임해야 한다"며 호통을 쳤다. 또 다른 학부모(40)는 "어제 교장이 몸이 불편해 병원에 가야 하는 학부모에게까지 전화해서 당신의 자녀만 학교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연락해서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서 나오셨더라"며 "그런데 와봤더니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안 들어가고 있는데 교장 선생님이 또 거짓말했다며 항의했다"고 전했다.

박수영 교사의 반 학부모는 아니지만 두 자녀가 거원초등학교에 다닌다는 한 학부모(39)는 "지난주에 학교에 왔다가 우연히 이번 사건을 알게 됐다"며 "경찰 사이로 도저히 아이들을 등교시킬 수 없어서 오늘 등교시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초등학교 교문 안팎으로 경찰이 에워싸고, 교사 내에서도 경찰들이 담배를 피도록 학교장이 놔둘 수가 있나"라며 "그러면서 아이들을 위해 이러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위선이고 가식"이라고 일갈했다.

한편, 학생과 학부모를 향해 "원리원칙에 따라야 한다", "불법행위다"라고 되뇌였던 거원초 교장과 교감은 "어떤 것이 원리원칙이고 또 불법이냐"라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황급히 자리를 피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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