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에 맞지 않았다. 미국의 자동차업체가 회생할지 파산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자동차 협상에 어떻게 대처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한미FTA를 들고 나왔다. '선 비준으로 미국을 압박한다'는 논리가 얼마나 공허한지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데도 한나라당은 한미FTA를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았다.
이젠 알겠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보니 한나라당의 계산을 짐작할 만하다.
'동아일보'가 국회에서 "망나니짓"을 한 민주당을 비난했다. "많은 국민이야말로 이들에게 망치를 들고 싶을 것이다"라고 했다. '조선일보'도 "폭력 코미디"를 연출한 민주당을 비난했다. "(민주당이)상정을 막겠다고 공사판의 해머를 들고 날뛴 것은 보통 모순이 아니다"라고 했다.
▲ ⓒ프레시안 |
그러면서 걸었다. 이력을 빌미 삼아 태클을 걸었다. '조선일보'는 "한미FTA는 어느 정권이 체결했는데 해머 들고 날뛰나"라고 힐난했다. '동아일보'는 한미FTA 체결 당사자가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 정권이었고 17대 국회 마지막 회기이던 올 2월에 민노당이 반대하자 회의장을 옮겨가며 비준안을 상정한 사실을 복기했다.
그렇게 밑그림을 그렸다. 민주당을 올챙이 시절 생각 못하고 "폭력코미디"를 연출하는 "망나니"로 드로잉했다.
천연색으로 색칠도 했다. 두 신문이 1면에 "전쟁판" "무법의 전당"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걸면서 그 밑에 설명을 달았다. 민주당을 폭력 주범으로, 가해자로 묘사하는 설명을 달았다. '동아일보'는 "민주당과 민노당 당직자들이 회의장 진입을 시도하다가 국회 경위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달았고, '조선일보'는 "야당 당직자가 해머로 부수려 하고 있다"고 달았다. '한겨레'가 "민주당 의원 보좌진이 문을 뜯고 들어가려다 안에서 뿜겨나오는 소화기 분말에 괴로워하고 있다"며 민주당을 폭력의 피동태로 설정한 것과 달리 두 신문은 민주당을 능동태로 규정했다.
이로써 완성됐다. 민주당은 형편없는 정당이 됐다. 안면몰수 정당이 됐고 폭력 정당이 됐다.
한나라당으로선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두 신문의 '몰아가기'를 사양할 이유가 없다. 아니, 어쩌면 이런 논조를 기대하고 단독상정을 감행한 것인지도 모른다.
부작용이 있을 수는 있다. 민주당에 등을 돌렸던 과거 지지층이 결사투쟁을 선언한 민주당에 다시 호의적인 눈길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이들은 한나라당에 의탁할 사람들이 아니다. 중요한 대상은 부동층이다. 이들만 잡으면 된다. 안면몰수 정당, 폭력 정당에 염증을 내는 이들을 부여잡으면 된다. 설령 이들을 잡지 못하더라도 막기만 하면 된다. 민주당에 쏠리는 움직임을 차단만 해도 된다. 그러면 '더블 스코어'를 보이는 당 지지율 격차는 유지된다.
이러면 고립시킬 수 있다. 민주당의 결사투쟁을 후미진 골목에서 자기들끼리 '으쌰으쌰' 하는 골목싸움으로 가둬버릴 수 있다. 정치혐오증이 극에 달한 부동층이 정치권 전체에 등을 돌려버리면 싸움판은 한나라당 지지층 대 민주당 지지층의 대결로 한정되니까 백전불패의 상황을 만들 수 있다.
더불어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다. 규제완화법안과 사회법안을 일사천리로 처리할 수 있다. 안면몰수 정당, 폭력 정당이 협상에 응하지 않으니 눈물을 머금고, 구국의 결단으로 단독처리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웅변할 수 있다. 민주당이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정책 논란이 극한 표출되는 일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일도 막을 수 있다.
일방적인 전망이 아니다. 보수언론도, 한나라당 또한 그렇게 전망한다. '동아일보'가 그랬다. 민주당을 향해 "제발 길거리에 나가 성난 민심과 마주하기를 권한다"고 했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그랬다. 야당과의 타협 가능성에 대해 "저 쪽에서 만나 주겠느냐"고 했다. 이들에게 민주당의 장외투쟁은 "해주면 고마운" 일이다.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건 몰라도 조중동의 '파워'를 검증하는 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계기가 부여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부동층이 동요하는지, 그래서 민주당의 결사투쟁이 고립무원의 지경에 빠지는지를 보면 잴 수 있을 것이다. 조중동의 '몰아가기'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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