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억 원. 17일 현재 넥사이언(전 유일반도체)의 시가총액이다(종가 기준). 주당 가격이 액면가(500원)에 한참 못 미치는 140원에 불과하다. 강남의 고급 아파트 두 채 가격이다.
아무리 그 동안 적자를 냈다고는 하지만 분기 매출액이 30억 원에 달하는 회사의 시가 총액이라기에는 현실성이 떨어져 보인다. 회사가 매각한 부동산 일부 가격만 못하다.
주가가 낮아서 감자 할 수밖에…
이 회사 김홍철 사장은 "주가만 생각하면 기분이 울적해진다"며 짧은 한숨을 쉬었다. 쓰러져가던 회사를 8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켜놓은 경영진이 보기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준까지 주가가 밀려났기 때문이다.
새 경영진은 흑자 전환과 함께 인도네시아 유연탄 사업에 회사의 미래를 걸었다. 사업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서는 투자자금이 필요했다. 인도네시아에 세운 합작법인에 앞으로 최소 150억 원이 더 필요했다. 사업의 불확실성을 줄여나갈 유일한 도구는 언제나 돈이다.
하지만 이미 은행은 중소기업에 문을 닫아건 지 오래다. 기업이 주주와 거래소의 감시를 감내하면서까지 거래소에 상장한 가장 큰 이유는 증자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가가 액면가보다 낮아진 건 오래 전. 액면가보다 주가가 싼데 증자에 참여할 이가 나타날 리가 없었다.
회사는 결국 지난 9일 10대 1 감자를 선택했다. 이로써 내년 2월 23일이면 회사 유통 주식수는 4280만 주에서 428만 주로 줄어들고 주가는 열배가 된다. 감자를 해도 시가총액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증자를 할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비슷한 사례가 많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17일 현재 관리종목 사유가 해지될 예정인 회사 중 12개사가 감자를 완료했거나 진행 중에 있다. 팬텀엔터그룹, 신명B&F, 산양전기 등이 그들이다.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모 일간지에서 넥사이언이 낸 공시를 보고 "주가도 십분의 일로 줄어든다"고 오보를 낸 것이다. 당연히 주주들이 난리가 났다. 이 회사 신동훈 부사장은 "심지어 어떤 주주는 '작전하는 줄 알고 들어왔는데 주가를 왜 떨어뜨리냐'고 항의했다. 기사 하나 때문에 코미디같은 상황이 벌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감자에 이어 넥사이언 경영진은 다음날 곧바로 부동산 매각 공시를 냈다. 보유 중이던 기흥의 토지와 아파트형 공장 5만㎡를 198억 원에 넘겼다. 전체 보유 부동산의 3분의 1 정도. 이 조치로 유동성도 어느 정도 확보가 됐다. 경영진의 눈으로는 주가가 떨어질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주가는 그 후 더 밀려났다. 한때 130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부동산 가격과 시가총액의 괴리도 경영진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매각한 부동산 가치만 따져도 시가총액의 세 배가 넘었다. 단순 계산으로는 회사 시가총액이 부동산 가격의 10분의 일 수준에 불과한 셈이다. 대차대조표상에 부동산 가격은 장부가격으로 표시된다.
김 사장은 "아는 분과 부동산 매각을 소재로 얘기를 나눈 적 있다. 그 분이 우스갯소리로 '부동산을 뭐하려고 그 돈 주고 사? 회사가 더 싼데'라고 하시더라. 씁쓸했다"고 했다.
▲주가 하락은 경영진도, 투자자도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 여파는 다시 노동자에게로, 투자자의 가족에게로 이어진다. ⓒ뉴시스 |
주가 100원 미만인 주식 속출
비단 이 회사만의 사례가 아니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주식시장이 작년 말의 절반 수준으로 폭락하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액면가 밑으로 주가가 추락해 회사 시가총액이 실제 자산가치보다 형편없이 떨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17일 현재 주가가 액면가 이하로 떨어진 종목은 코스피시장 135종목, 코스닥시장 166종목 등 총 301종목에 달한다. 이 중에는 주가가 100원도 되지 않는 종목 15개가 포함됐다. 전체 상장종목 1973개 종목의 15.3%에 달하는 수치다.
특별한 추락 요인을 찾을 수 없는데도 큰 폭으로 떨어진 종목도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속출하는 모양새다.
행남자기는 지난해 적자에서 올해 비교적 큰 폭의 흑자전환에 성공했음에도 액면가(5000원) 미만인 2000원대 주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동양매직 역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의 견실한 실적을 낼 것으로 예상되지만 주가는 액면가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다.
물론 부실한 기업이 대다수다. 최근 수 년여 간 에너지 개발, 엔터테인먼트 등 시장을 뒤흔들던 테마에 편승해 실적과는 상관없이 단기간에 주가가 떴다 급락한 종목도 부지기수다.
ST&I, IDH, 쏠라엔텍, 에이엠에스, 포이보스, 씨엔씨테크, 이롬텍 등 7개 회사는 지난 반기보고서에 이어 올 연말보고서에서도 자본잠식률이 50% 이상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퇴출 가능성마저 거론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부 회사 경영진은 소위 말하는 '마사지' 권유 전화를 받기도 한다. 투자자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자 선망의 대상이기도 한 '작전세력'들과 손잡고 주가를 한번 띄워보자는 얘기다.
한 코스닥 상장업체 관계자는 "아무래도 코스닥업체는 회사 덩치가 작은 편이라 그런 연락을 받기 마련"이라며 "특히 올 연말 들어 몇 번 그런 제의가 조심스럽게 왔었다. 주주들에게 크게 시달리거나 경영권 위협을 느끼는 경영자라면 혹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주가 폭락으로 인한 '블랙 코미디'가 2008년 말 한국 사회 곳곳에서 연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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