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쌍화점 |
격정의 에로티시즘을 다루려던 <미인도>가 제대로 된 에로티시즘을 선사하는 데에 실패했던 것과 달리, <쌍화점>은 정념에 미쳐 날뛰는 인간들을 단순명쾌하게, 그러나 매우 섬세하게 그려내며 우직하게 결말로 달려간다. 평생을 궁에서 살며 정해진 운명을 살아야 했던 이들이 에로스의 세계를 경험하며 새로이 발견한 것은 위험한 자유와 열정이다. 위엄과 권위를 드러내며 온갖 격식을 차려야 하는 왕후와 왕의 명령에 죽고 살아야 하는 호위무사가 자신의 몸에 새겨진 상징을 모두 벗고 본연의 자기자신이 되는 순간이기에, 그들은 그토록 서로의 몸을 탐닉하며 육체적 행위에 골몰한다. 금지된 열정과 행위를 반복해 나가며 갖게 되는 공범의식이야말로 이들의 사랑을 더욱 강렬하게 해주는 요소다. 한참 피가 뜨겁고 호르몬이 폭발할 나이의 청춘들에게, 위험한 사랑이야말로 억압된 삶에 대한 가장 강렬한 자극일 터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에로스는 죽음의 일면을 닮았다. 한편 이들의 섹스를 주선했던 왕은 이후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분노와 질투로 몸을 떤다. 그가 그토록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단순히 애인이 변심해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만은 아니다. 자발적인 애정 없이 그저 권위와 명령에 복종한 것일 뿐이 아닌가 하는 의심과 불신 때문이다.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가 둘러대는 거짓말 하나하나에 상처받으며 왕은 질투로 미쳐간다. 그의 분노와 질투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유하 감독은 세 남녀의 지독한 사랑과 얽힘을 통해 에로스와 죽음 사이의 상관관계라는 매우 고전적인 주제를 탐구하며, 매회 인물의 심리 변화가 섬세하게 드러나도록 설계된 정사씬을 통해 이를 표현해낸다. '쌍화점'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그리고 노출에 대한 광고로 화제를 모은 영화답게 과연 <쌍화점>은 수위가 높고 빈번한 성애 묘사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분명 상업적 고려를 포함한 것이지만, 두 남녀의 격정적인 사랑을 드러내는 데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실제로 두 남녀의 깊어가는 사랑의 양상을 적절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처음엔 지극히 어색한 손길을 주고받던 두 남녀는 횟수가 거듭되고 이들의 정이 깊어갈수록 더욱 농염하고 격렬한 적극성을 띄며 다양한 체위를 표현해낸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죽이고야 말겠다는 살의를 품은 채 한때 연인이었던 남자를 찾아오는 장면은 설득력이 떨어졌을 것이다.
▲ 쌍화점 |
그러나 감독이 주요 방점을 찍은 것은 두 남녀의 격렬한 사랑보다는 배신당한 자의 회한과 상처 쪽으로 보인다. 왕은 죽기 직전 사랑하는 이로부터 가장 잔인한 말을 듣고, 숨을 거두는 순간 마지막 눈물을 떨군다. 두 남녀의 열정이 다소 우직하고 단선적으로 표현됐다면, 주진모가 연기한 왕은 보다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감정 연기를 선보인다. 결정적으로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 역시 홀로 남은 왕비가 아니라, 과거 더없이 다정했던 두 남자의 한때이다. 이를 통해 강조되는 것은 결국 사랑의 위대함과 강렬함보다는 변하기 쉬운 속성과 덧없음, 이로 인해 남는 회한이다. 그렇게 <쌍화점>은 사랑을 둘러싼 인간의 모든 감정들을 스크린 안에 한 올 한 올 펼쳐 보인다.
<쌍화점>은 공민왕과 노국공주를 모델로 했고 실제로 공민왕이 거느렸던 호위대인 자제위를 등장시키지만 실제 역사와는 큰 상관이 없다. 정치적인 배경이 강조되지만 현실의 정치를 은유하기보다는 주인공들에게 사건을 만들어주기 위한 외부 환경의 기능이 더 크다. 오히려 고려 말이라는 이 시대가, 유학이 국가이념으로 자리잡기 전 남녀 간 차별이 크지 않고 성이 자유로웠던 마지막 시대라는 점이 더 의미있다. 대량으로 상품화된 성이 아니고도 에로스를 마음껏 꽃피우고 그로 인한 정념과 회한과 상처가 격렬하게 아로새겨졌던 거의 마지막 시대다. <쌍화점>은 바로 그 시대를 깊게 애도하는 듯 보인다. 그런 애도 역시 결국은 또다시 상품화된 성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영화'라는 패러다임을 통해야 한다는 아이러니가 우리 시대의 비극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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