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깐깐해질수록 금융소비자들은 돈을 빌리기 어려워진다. 제도금융권에서 돈을 빌리지 못한 중소기업, 자영업자, 서민들은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릴 수 밖에 없다. 최대 연 49%의 엄청난 고금리이지만 당장 돈이 필요한 이들은 울며겨자먹기로 빌려써야 한다. 경제위기가 심화될수록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이들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다시피 법에서 허용하는 금리를 뛰어넘는 살인적 고금리, 협박과 폭력을 동원하는 불법채권추심행위 등 대부업계는 '무법천지'다. 허술한 법률과 부실한 관리감독은 '불법'의 자양분이다. 경실련은 17일 대부업체 관리감독 실태를 조사해 발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대부업체 이용자와 대부업체 수 증가 추세
금융위원회는 지난 6월 설문조사를 통해 등록대부업체 이용자는 94만5000명, 이용금액은 7조4000억 원, 1인당 이용금액은 785만 원으로 추청된다고 밝혔다.
최근 대부업체 이용자와 대부액이 더욱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말보다 제주도내 대부업체 이용자는 8.1%(760명), 1인당 평균 대부액은 6.3%(18만 원) 증가했다. 다른 지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제도금융권에서는 금융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저신용층(신용등급 7-10)이 720만 명이나 된다는 점에서 경기불황이 심화될수록 저신용층은 늘어나고, 따라서 대부업체 이용자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부업 등록 규제 거의 없어
하지만 대부업체의 관리감독 체계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정부가 가뜩이나 서러운 금융소외자들을 또 한번 눈물 짓게 만드는데 일조하는 셈이다. 현행 법에 따르면 대부업체의 관리감독 주체는 각 시도 자치단체장이다. 대부업 관련 주요 정책수립은 정부의 금융위원회에서 담당하고 있다.
'대부업체=폭력'으로 연결되는 것은 조직폭력배 등의 대부업 진출을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폭력단체의 대부업 등록을 법적으로 막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와 관련된 별도 규정이 없다고 경실련은 지적했다.
현행 대부업법이나 시행령에 대부업체로 등록하기 위해 작성하는 신청서의 내용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 대포폰과 임시거주지로도 등록이 가능하다. 경실련은 "강원도의 경우 강원랜드 근처 모텔에 거주하며 대부업을 등록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사를 위해 현장점검을 나가도 대부업자나 종사자와 만나기조차 불가능 하다는 것. 경실련은 "소재지 확인불가로 등록이 취소되는 업체가 최근 3년간 2595개나 됐다"며 "등록대부업체임에도 불구하고 행정적인 관리 감독의 사각지대로 방치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실련은 대부업체의 불법행위에 대한 벌칙이 유명무실하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 과태료 미납에 따른 압류절차 과정을 수행하면서 대부업자의 재산내역을 파악할 길이 없어 과태료 미납율이 92%에 달해 과태료 부과로 대부업체의 불법행위를 제재하는 것은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또 실질적으로 미성년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성인이나 단체에 대부업 등록을 허용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경실련에 따르면, 경실련은 "충북 영동군의 5개 등록대부업체 중 4개 업체 대표자가 20대(최소 만 22세)로 다른 지역에서도 20대 초반의 대부업자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며 "이들 중 상당수가 사회경험이 적고 미숙한 탓에 대출금 전액을 손실하여 오히려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자체의 75%가 자체검사 안 해
지자체가 담당하고 있는 대부업체 관리감독도 엉망이다. 경실련은 "전체 145개 지자체(대부업체 관리감독을 담당하고 있는 6개 광역지자체와 139개 기초지자체) 중 서울시를 포함해 109개 지역(75%)이 최근 3년간 한 번도 자체검사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 지자체별 등록대부업체 및 담당자 수. ⓒ경실련 |
경실련은 "대부업 관리감독 업무만을 전담하는 부서와 인력을 확보하고 있는 자치단체는 서울시가 유일하며, 대부분 다른 업무와 같이 담당하고 있었다"며 "광역단체에 담당부서나 인원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충북, 충남, 전북)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또 "대부업체 이용자 중 32%만이 등록업체를 이용하고 68%는 비등록업체를 이용하고 있는데 정부나 지자체 등 어떤 감독기관도 이들 비등록업체의 실태파악에 나서고 있지 않다"며 대부업체에 대한 실태 파악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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