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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나다"

[화제의책] <양지를 찾는 사람들>

날이 갈수록 생활이 팍팍해져 가까운 이웃의 사정조차 귀에 잘 들어오지 않을 것 같은 요즘이다. 자선단체의 모금함에서 개인 후원의 액수가 늘기는커녕 줄어들지 않았다는 얘기가 기삿거리가 된다.

그런 우리에게 버마(미얀마)는 어찌 보면 '너무 먼 곳'이다. 바로 옆 타이야 관광을 위해, 사업을 위해 다녀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만, 수십 년간 군사 정권의 지배 아래 황폐해진 버마의 상황에 사람들은 굳이 관심을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버마'와 '미얀마'가 어떻게 같고 또 다른지 아는 이는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러나 버마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하면 어쩌면 꽤 우리와 가까워진 국가이기도 하다. 오는 12월 30일, 버마 민주화를 호소하며 서울 한남동 미얀마대사관과 종각에서 진행된 '프리 버마 캠페인'이 꼭 100회째를 맞는다. 지난해 버마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샤프란항쟁)가 일어났을 때 사람들의 관심은 '의외'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높았다.

그렇지만 정작 버마의 실제 현실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참고할 만한 책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딱딱한 개론서 또는 학술서적을 제외하곤, 국내에서 활동하는 버마 민주화 운동가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일하는 몇몇 사회단체 관계자들을 만나야만 그나마 구체적인 상황을 접할 수 있을 뿐이다. 국내 학계와 사회의 무관심 뿐 아니라 버마 군사정부의 정보 통제도 이런 상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버마인들의 현실을 생생히 묘사해 차마 책장을 넘기기 힘들게 하는 책이 최근 출간됐다.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가 옮긴 버마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 <양지를 찾는 사람들>(아시아 펴냄)이다. 이 책은 타이에서 프리랜서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이주민들의 삶을 추적해온 삠 끗사왕이 1999년 펴낸 <빛을 찾아서>를 번역한 것이다. 그는 현재 타이인과 버마인의 우애와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프로젝트 '국경 없는 친구들'에서 활동하면서 타이로 이주한 버마 사람들의 인권 증진에 힘쓰고 있다.

"넓은 세상에 우리가 살 곳은 없는 것 같아요"

▲ <양지를 찾는 사람들>(삠 끗사왕 지음,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옮김, 아시아 펴냄) ⓒ프레시안
"(…) 그 몬족 브로커는 이들 일행을 '빅 보스'로 알려진 어느 경찰관의 집으로 데려갔다. 여기에서 다시 그의 부하인 타이인 한 명과 몬족 한 명이 이들을 사탕수수 농장으로 데려가 일인당 7000밧에 팔아넘겼다. 그 액수는 그들이 거기까지 오기 위해 지불한 돈보다 훨씬 많은 액수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버마인들은 타이로 건너온 이주노동자이다. 불법, 또는 합법 등 그들의 처지는 다양했지만 이들이 타이까지 오기까지 겪은 고통과 어려움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자는 "기아, 역경, 종족 전쟁에 직면해 버마의 보통 사람들은 고향 땅 밖에서 기회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며 "착취와 위험에 관한 무서운 소문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브로커의 거짓 약속에 현혹돼 희망을 찾아 떠나는 결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타국에서 잠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 두려움에 떨며 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자의 표현처럼 국경을 넘은 버마인들이 본 것은 또 하나의 절망적 풍경이었다. 그들은 브로커에게 속았고, 고용주에게 착취 당했으며, 타이 경찰을 피해 쫓겨다녀야 했다. 수만 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공포에 떨며 그들의 방, 공장, 과수원, 논, 또는 타이의 정글 속에 숨어 지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굶고 병들고 죽어간 이의 숫자는 통계에 잘 잡히지 않는다.

그렇지만 버마로 돌아가는 것 역시 쉽지 않은 길이었다. 빚을 갚지 못한 경우는 그나마 나았다. 애써 모은 돈을 부패한 경찰은 물론 브로커나 고용주, 그 외에 돈을 노리는 수많은 무리들에게 뺏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 모든 난관을 이겨내고 버마로 돌아간다 한들, 그들이 삶을 온전히 영위한다는 보장 역시 전무했다. 천문학적인 세금, 강제 징용, 그리고 반군과의 내전에서 이어지는 학살 등이 버마인들이 자기의 고향에서 겪은 현실이었다. 버마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이 같은 현실을 묘사하기에 앞서 저자는 책의 첫 번째 장에서 버마인들의 심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어느날 저녁, 소가 내게 전화했다. '저는 잘 지내요.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버마로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집이 너무 그립지만 거기서 살 수는 없잖아요. 이 넓은 세상에 우리가 살 곳은 없는 것 같아요.'"

빈곤의 바닥에서 죽어가는 버마인 이주 여성들

열악한 타이 내 버마인 이주 사회.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삶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기 쉬운, 실제로 그렇게 되는 이들은 젊은 여성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신분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결혼을 했다.

"내 친구는 브로커에게 빚이 있었는데 갚을 수가 없었죠. 버마에 남편이 있었지만 결혼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새 남편이 빚을 갚는 걸 도와줬기 때문이죠. 그녀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기 힘들어요.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니까요."

결혼을 한다고 빈곤한 삶이 달라진다는 보장은 없었다. 결혼한 뒤에도 남편이 경찰에 잡혀 강제 추방을 당하기도 했고, 일터에서 죽어가기도 했으며, 아무 말 없이 도망치기도 했다. 결혼 여부를 떠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일을 하러 나선 여성들 가운데 상당수는 성매매를 해야 했다.

불법 체류라는 불안한 신분 때문에, 일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또는 다른 일을 하다가 고용주의 지시 때문에 그들은 성매매 여성이 됐다. 그후 많은 여성들이 신분증이 없어 공립 병원에 가지 못해 '사이비' 의사에게 진료를 받다가, 혹은 제대로 된 성 지식을 알지 못해 그들은 성병에 걸려 죽어가거나 HIV에 감염됐다. 임신을 하면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낙태를 시도하다 병에 걸리거나 죽은 이도 한 둘이 아니었다.

"내가 가장 극심한 고통을 느꼈던 것은 열세 살짜리 버마 소녀 무 산 다를 알았을 때였다. 심지어 그녀는 월경을 하기 전이었던 열한 살 때부터 몸을 팔기 시작했다. (…) 무 산 다는 그녀가 처음으로 월경을 시작했을 때부터 피임약을 주사해왔다. 그녀의 몸은 다른 소녀들처럼 사춘기를 거쳐 발달하지도 않았었다."

타이로 가족을 보내고 버마에 남아있는 여성들 역시 고통을 당하긴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남편을 대신해 여자들은 힘든 노동을 감내해야만 했다"며 "생계를 위해 재혼을 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외국에 간 남편을 찾아 절박한 심정으로 여행길에 오르는 여인들도 있었다"고 묘사했다. 저자는 이런 버마인들의 처지를 "악어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나다"라는 타이의 한 속담으로 비유하기도 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민주화와 시민운동의 경험"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상황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최근 열린 이 책의 출판기념회에서 버마 민주화운동가 마웅저 씨는 "버마인들은 이곳에서 듣는 것보다 더 힘들어하고 있다"고 전했다. 13년간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오면서 소식을 듣다가 최근 타이-버마 국경 지대를 직접 방문했다는 그는 타이에 살고 있는 버마 난민들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마웅저 씨는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버마의 민주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 각국에서 난민들에게 지원금을 보낸다. 물론 생계를 잇는 일이 절박한 그들에게 물질적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줄 수 있는 도움 중 버마인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민주화와 시민운동의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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