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기 불편한 환자를 위해 간호사가 직접 머리도 감겨주고, 부모님이 편찮으셔도 간병인이 필요 없는 병원 시스템 덕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일은 없는 곳. 내가 먹는 이 수많은 약들이 대체 무슨 용도이며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지 간호사가 일일이 설명 해주고, 몸도 아픈데 보험이 안 돼 더 비싼 치료비 걱정에 한숨 내뱉지 않아도 되는 사회.
그런데 정말 가능할까? 92.4%의 압도적인 찬성률로 당선된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5대 위원장은 "할 수 있다"고 했다. 단지 구호가 아니라 현실을 분석해 나온 주장이었다.
입사 2년 만에 이화의료원노조 위원장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해 4만 조합원의 새로운 '맏 언니'로서 "앞으로 3년 간 사회보장제도 확대 등 의료 공공성을 위해 싸우겠다"는 나순자 위원장을 8일 만났다.
▲ 이화의료원노조 위원장으로 6년, 보건의료노조 서울본부장으로 3년, 보건의료노조 사무처장으로 3년을 지낸 뒤 나순자 위원장은 다시 자기 사업장으로 돌아갔었다. 보건의료노조 이화의료원지부장 3년을 거친 뒤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선거에 나선 그는 누가 뭐래도 '현장파'다. ⓒ프레시안 |
"환자들이 내게 '간호사들 밥 좀 먹게 해줘' 부탁했다"
이화의료원노조 위원장으로 6년, 보건의료노조 서울본부장으로 3년, 보건의료노조 사무처장으로 3년을 지낸 뒤 그는 다시 자기 사업장으로 돌아갔었다. 보건의료노조 이화의료원지부장 3년을 거친 뒤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선거에 나선 그는 누가 뭐래도 '현장파'다.
당연히 현장 조합원이 느끼는 어려움과 우리 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몸으로 직접 느껴 왔다. 그래서 나온 그의 일성은 바로 '인력 충원'이었다.
"선거 과정에서 현장 순회를 다니면서 병원의 어려움을 많이 봤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갔더니 간호사 옆에 있던 환자가 내게 '간호사들, 밥 좀 먹이고 일하게 하라'고 부탁하더라. 그 정도로 병원 노동자의 노동 강도 문제는 심각하다. 인구 1000명 당 간호사 수는 OECD 국가 평균 9.0명이다. 우리나라는? 1.9명이다.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문제는 간호사 인력 부족이 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불친절한 병원에 대한 기억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지고 있을 정도로 "환자들의 불만도 하늘을 찌른다." 그리고 그 불만은 또 고스란히 간호사에게 쏟아진다.
"미국은 간호사 한 명이 환자 5명만 보도록 법으로 규제"
▲ 나 위원장은 미국의 사례를 얘기했다. 미국은 간호사 1명이 일반병동의 경우 5~6명의 환자를, 중환자실의 경우 1명의 환자를 보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프레시안 |
나 위원장은 미국의 사례를 얘기했다. 미국은 간호사 1명이 일반병동의 경우 5~6명의 환자를, 중환자실의 경우 1명의 환자를 보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당연히 우리도 법적 기준만 있으면 가능한 얘기다.
물론 문제는 돈이다. 나 위원장은 "병원에서 모든 인건비를 부담하라고 하면 불가능한 얘기"라며 "그래서 정부의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력 충원은 사회 제도적 문제다. 현장의 일하는 병원 노동자에게는 자신의 노동 조건 문제지만, 국민들에게는 의료 서비스 질의 문제고, 국가에게는 공공성 확보와 일자리 창출의 차원도 있다."
"환자들에게 약의 효능과 부작용, 하나하나 설명해주고 싶다"
보건의료노조가 내년 산별교섭과 대정부 교섭에서 핵심 요구안으로 인력 충원을 꼽고 있는 것이 "산별노조로서의 사회적 책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래서다.
"지난 의료기관 평가 기간 중에 간호사들이 환자들에게 '이 약은 무슨 효능이 있고 무슨 부작용이 있다', '이 검사는 이런 이유로 저런 것을 알아보기 위해 하는 것이다'라고 일일이 설명해줘야만 했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병원이 시킨 것이지만, 현장 간호사들은 그 과정을 통해 '아, 환자에게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건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현재 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나 위원장은 "개개인이 건강보험료를 3~5만 원 정도씩만 더 내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보장성도 현재 40~60% 수준에서 9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정부 의료 정책, 돈 없어 손자 산소호흡기 떼는 할아버지 늘어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의료 정책은? 이와는 정반대다. 나 위원장은 "현 정부는 의료를 영리화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즉, 병원에도 시장 경쟁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병원은 돈 되는 환자만 끌어 들여 수익을 내는 데만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그리고 피해는 고스란히 산업재해 환자나 저소득층 환자에게 돌아간다.
"직접 다녀보니 지방 의료원은 벌써부터 장례식장, 건강검진 센터 등 돈 되는 곳만 투자하고 있었다. 외국 환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하면 없는 사람들은 더 갈 병원이 없다. 몇 년 전에 치료비가 없어 손자의 산소호흡기를 자신이 스스로 제거한 한 할아버지 얘기를 신문을 통해 본 적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의료 정책대로라면, 그런 할아버지만 늘어날 것이다."
▲ 이명박 정부의 의료 정책은? 이와는 정반대다. 나 위원장은 "현 정부는 의료를 영리화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산업재해 환자나 저소득층 환자에게 돌아간다. ⓒ프레시안 |
"사용자들에게 '아산, 삼성병원 따라가려다 다 같이 죽을 거냐'고 묻겠다"
나 위원장은 "내년 산별교섭에서 사용자들을 상대로도 '같이 사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얘기하겠다"고 공언했다. 아산 병원, 삼성 병원 등 1급 병원만 살아남고 중소 영세 병원은 다 죽어가는 현실은 고작 노동자 임금 삭감을 통해 돌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대로는 삼성, 아산 병원 따라가려다 다른 병원이 다 가랑이 찢어져 죽게 생겼다. 의료체계 개선이 절실한 이유다. 사용자들도 산별교섭이 병원의 위기 극복 방안을 찾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는 다면 산별교섭에 대한 태도가 달라질 것으로 본다. 국민의 건강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을 정부 뿐 아니라 사용자도 가져야 한다."
나 위원장은 또 "그것이 바로 10년 역사의 보건의료 산별노조의 질적 도약"이라고 말했다.
"강남성모병원 갈등 계기로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 집중"
산별노조의 가장 큰 장점이 비정규직을 껴안을 수 있다는 것이라면, 보건의료노조의 지난 2007년 산별합의는 그 모범이었다. 정규직 임금을 일정 부분 양보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이뤄낸 것이다.
하지만 이 합의는 직접고용 비정규직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나 위원장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강남성모병원 문제와 관련해 "병원 내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투쟁이 이제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고 말한 것은 그런 맥락에 있다.
"명백히 불법이지만 현장에서는 강남성모병원처럼 간호 보조 업무를 파견 노동자로 쓰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보건의료노조도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에 눈을 돌릴 것이다."
▲병원에서의 비정규직 사용은 그 폐해가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더 심각하다. 인력 충원 및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가 '국민의 건강하게 살 권리'인 까닭이다. 나 위원장은 마지막으로 촛불의 힘을 얘기했다. ⓒ프레시안 |
병원에서의 비정규직 사용은 그 폐해가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더 심각하다. 인력 충원 및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가 '국민의 건강하게 살 권리'인 까닭이다. 나 위원장은 마지막으로 촛불의 힘을 얘기했다.
"촛불 집회 당시 의료 영리화 문제가 많은 사회적 논란이 됐고 결국 정부는 '당연지정제 폐지' 계획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들이, 국민들이 그만큼 관심을 가져 준다면 '간병인 필요 없는 병원'은 충분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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