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불을 지필 조건이 마련되지 않았고 한판 싸움을 불사할 동기가 갖춰지지 않았다.
사법문제가 정치문제가 되려면 누군가 나서야 한다. 누군가가 나서 사법처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거나 사법처리의 정치적 배경을 문제 삼아야 한다.
딱 한 사람 밖에 없다. 노건평 씨 문제를 정치문제로 끌고 갈 영향력과 동기를 갖고 있는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 뿐이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노건평 씨 구속 이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노건평 씨가 일부 인정했다. 자신에게 씌워진 혐의 일부를 인정했다. 그러면서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움직이지 못한다. 입을 열 수가 없다. 노건평 씨가 인정한 일부 혐의가 극히 미미한 것에 불과하다 해도 입을 열 수가 없다. 콩알 만한 범법행위라 해도 죄를 저지른 게 사실이라면 전직 대통령으로서 감쌀 수가 없다. 게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친인척 관리 소홀에 대한 포괄적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처지다.
▲ ⓒ뉴시스 |
이런 경우는 어떨까? 노건평 씨가 인정한 게 금품 수수와 같은 범법행위가 아니라 애초에 밝힌대로 정대근 전 농협 회장에게 전화 한 통 건 행위, 즉 부적절 처신에 한정되는 것이라면 어떨까? 더구나 검찰이 관련자 진술에만 의존한 채 물증 확보에 실패했으면, 그래서 법정다툼의 소지가 다분하다면 어떨까? 바로 이 점을 중시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이 부실・편파・기획 수사를 했다고 치받고 나오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런 모습을 보인다 해도 정치권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봤자 일방적 주장에 머물 수밖에 없다. 피고인과 특수관계에 있는 사람이 펼치는 방어용 발언 이상의 의미를 획득할 수 없다.
그래서 받아줄 수가 없다. 민주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방어를 위한 공격'에 부응할 수가 없다. 그랬다가 나중에 어떤 후과를 겪을지 모르기에 '일단 지켜보자'로 일관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 내의 친노 의원들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상황도 상정하기 어렵다. 친노로 분류될 수 있는 의원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데다가 이들이 행동 통일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개인 플레이'에 한정되는 친노의 항변 갖고는 정치권 전체는 고사하고 민주당조차 움직이지 못한다.
한나라당이 자체 발전을 통해 노건평 씨 문제를 키울 공산도 그리 크지 않다. '노무현 프레임'을 부활시켜 정치적 반사이익을 챙기는 상황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노무현을 침으로써 민주당을 때리는 효과 역시 미미하다. 그렇게 공을 들일만큼 민주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 하는 게 아니고 민주당 지지자가 '노무현 향수'에 빠져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과유불급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노건평 씨 문제가 부메랑이 되어 날아오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만큼은 불행한 과거가 되풀이 되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이명박 대통령 처사촌 김옥희 씨의 비례대표 공천청탁과 대통령 사위 조현범 씨의 주가조작 의혹사건을 환기시키는 행위(자유선진당 논평)가 확산되는 걸 경계해야 한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동기가 없고 정치적 조건이 미비하다. 그래서 커질 수가 없다. 노건평 씨 사건은 '죽은 권력'의 유산을 정리하는 정도의 의미만 지닐 뿐이다.
예외가 하나 있긴 하다. 원외에서 '노무현의 가치'를 앞세워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모색해온 이들에겐 적잖은 영향을 줄 것이다. '창업자본'을 다시 셈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됐으니 꽤 많은 공력을 들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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