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최근 늘었다. 정권 초기 내걸었던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라는 구호대로라면,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 원리를 존중하는 게 옳다. 반대로 정부 역할을 강조하는 입장이라면, 시장 실패에 대해 정부가 강력하게 개입하는 게 옳다.
김대중 정부에 쏟았던 비판이 그대로 이명박 정부에게 적용돼
그런데 현 정부는 이도저도 아니라는 지적이다. "그게 뭐가 문제냐"라고 할 수도 있다. 정부 개입과 시장 원리 사이에서 장점만 취하면 더 좋은 일 아니냐는 목소리다.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권한과 책임의 경계를 분명히 못박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실패에 따른 책임을 분명히 물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간 기구를 만든다면서 사실상 관료가 배후조종을 한다면, 이런 전제에서 어긋나는 게 당연하다. 이렇게 되면, 민간과 정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정상적인 의사 결정이 이뤄지기 어렵다. IMF 외환위기 당시 기업의 퇴출 여부를 결정했던 '기업구조조정위원회'에 대해 이런 비판이 나온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 시절 나왔던 비판을 다시 끄집어낼 상황이 벌어졌다. 서로를 부정하는 두 정권이 같은 비판을 받는 모양새다.
전광우 금융위원장 "'10년 전 기업구조조정위원회', 다시 만들겠다"
▲ 전광우 금융위원장. ⓒ뉴시스 |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위기에 대해 정부가 내놓은 해법은 별 차이가 없는 셈. 그래서 비판하는 내용도 10년 전과 닮았다. 경제개혁연대는 2일 논평을 통해 "실질적인 의사결정은 관료기구가 담당함에도 불구하고 민간 구조조정기구를 앞세워 관치를 은폐하는 양상을 되풀이할 것"을 우려했다.
"민간을 들러리 세운 실질적인 관치"…구조조정 비용만 늘린다
경제개혁연대 역시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기구의 설립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민간을 들러리 세운 실질적인 관치'가 이뤄진다면 구조조정의 비용만 증폭시킬 뿐 아무런 실익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논평에서 부실기업을 구조조정 하는 방식으로 크게 세 가지를 소개했다. 첫째는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CRC), 기업구조조정펀드(CRF) 등 시장의 부실처리 전문기구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을 쓸 수 있는 나라는 미국 정도다. 그리고 부실 규모가 지금처럼 커지면, 시장 자체가 작동하지 않은 한계가 있다.
둘째는 정부가 직접 구조조정 과정에 개입하는 방식이다. 동구권 등의 체제전환 국가나 상대적으로 경제 규모가 작은 나라에서 쓰인 적이 있다.
셋째는 채권금융기관과 채무기업 사이의 자율적 협의를 통한 구조조정 방식이다. 1980년대 초 영국에서 사용돼 긍정적 성과를 거뒀다. 그래서 런던 어프로우치(London Approach)라고도 불린다.
외환위기 직후인 10년 전, 한국이 사용했던 부실기업 처리 방식, 즉 워크아웃(Workout) 방식이 이 범주에 든다. 이 방식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은 채권자와 채무자간에, 그리고 다수의 채권자간에 발생하는 복잡한 이해관계 충돌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신뢰받는 조정자의 존재다. 1980년대 초 영국에서는 중앙은행(Bank of England)이 이런 역할을 맡았다.
'책임 없는 개입'의 부작용…시장이든, 정부든 책임 소재가 분명해야
'신뢰받는 조정자' 역할을 누가 맡는 게 옳은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 상황에 따라 답이 바뀐다. 외환위기 당시 IMF는 이런 역할을 정부가 맡도록 권고했다. 기업 구조조정기구를 청와대 산하에 설치하라는 것. 하지만, 당시 김대중 정부는 구조조정 과정에 공식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겨 거절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문제는 공식적인 개입에 따르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면서, 사실상 정부가 개입했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한국 상황에서 민간 구조조정기구가 수많은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에 따른 이해충돌 문제를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금융감독원회 산하에 설치된 '구조개혁기획단'이 5대 재벌의 빅딜(Big Dea)l과 6대 이하 재벌 및 중견기업의 워크아웃(Workout) 작업을 사실상 처리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MB정부, '도덕적 해이'에 대한 해법 없이 '10년 전 처방' 다시 꺼냈다"
그 결과, 구조조정은 신속하게 이뤄졌으나 후유증이 컸다. 특히 노동조합을 협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은 게 대표적인 패착이었다. 고용조정에 대한 갈등이 증폭됐다. 또, 부실을 낳은 기업주에 대한 책임 추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기업은 죽어도 기업주는 산다"는 세간의 인식을 더 깊게 만들었다. '도덕적 해이'가 더 심해진 것이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진행된 공적자금의 조성 및 투입을 놓고도 다양한 비판이 쏟아졌다.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회생한 기업의 구조조정 성과가 비용을 부담한 주체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돈 내는 사람과, 이익을 누리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비판이다.
그런데 정부가 다시 10년 전 방식을 꺼내면서, 이런 비판은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실제로 대우조선해양, 하이닉스, 현대건설 등 이른바 구조조정기업이 최근 매각되는 과정에서 과거 제기됐던 문제가 다시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간 구조조정기구는 이해 충돌 조정 못한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논평에서 "이번에 금융위가 설립을 검토하고 있는 민간 구조조정기구도 10년 전의 기업구조조정위원회와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민간인들로만 구성된 위원회가 채권자와 채무자간, 그리고 다수 채권자간의 이해충돌 문제를 합리적 해결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경제개혁연대는 "결국 지난 11월 28일 금융위와 금감원 합동으로 설립한 '기업재무개선지원단'(단장: 금감원 수석부원장)이 실질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10년 전과 똑같이, "기업구조개선지원단이 실질적인 의사결정을 담당하고, 민간 구조조정기구는 관치의 외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게 경제개혁연대의 판단이다.
정부가 10년 전과 판박이인 처방을 내놨지만, 부작용은 더 클 수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10년 전과는 달리 지금은 부실기업의 문제가 전면화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할 필요성이 크고, 또 정부가 (우리은행을 제외한) 채권은행들의 주식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해충돌을 조종하는 구조조정기구의 역할은 더욱 복잡하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부실기업 구조조정, 현행 법 절차대로 하는 게 최선"
그렇다면, 경제개혁연대가 기대하는 처방은 뭘까? "현행 기업구조조정촉진법 및 통합도산법상의 공식 절차에 따라 채권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부실기업을 구조조정할 수 있도록 지원하되, 구조조정에 따른 비용이 시장 자체적으로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을 초과한다고 판단되면 조속히 국회의 동의를 거친 공적자금을 조성·투입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비판하면서 권력을 잡은 이들답게, 시장원리를 짓밟지 말아달라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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