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이 최근 무려 8억 원을 들여 극장, 버스, 라디오, 인터넷 등에 광고를 한 까닭은 이런 인식을 극복하려는 시도다. "보이는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국민의 편에서 일하겠습니다"라는 광고를 통해 공무원에 대한 '오해'가 풀리길 바라는 것이다.
정부도 아닌 노동조합이 나서 '공무원 이미지 쇄신'에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지난 19일 만난 정헌재 민주공무원노조 위원장은 "억울해서"라고 답했다. 그는 "앞으로는 실질적인 '민중 행정'을 통해 인식을 바꿔나가겠다"고 다짐했다.
합법화 여부를 놓고 극단적 진통을 벌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에서 떨어져 나와 민주공무원노동조합을 만들었지만, 새삼 '통합'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더 힘 있는 단일 공무원 노조를 통해 국민을 위한 공공성을 지키는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
22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등은 모두 함께 '100만 공무원 총궐기 대회'를 연다. 이 대회는 2년차 대정부 교섭을 앞둔 시점에 열리는 것이라서 그 의미가 각별하다.
결코 좋다고 볼 수 없는 이명박 정부 공무원 노사관계는 어떻게 진행될까? 공무원 노동조합이 '공공성 강화'를 통한 이미지 쇄신에 끝내 성공할 수 있을까?
다음은 정헌재 위원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현장 조합원, '공무원=철밥통' 억울해 한다"
▲ 민주공무원노조가 최근 8억 원을 들여 대대적인 이미지 광고를 했다. 정헌재 민주공무원노조 위원장은 "억울해서"라고 답했다. 그는 "앞으로는 실질적인 '민중 행정'을 통해 인식을 바꿔나가겠다"고 다짐했다. ⓒ프레시안 |
정헌재 : 현장 조합원의 요구였다. 공무원하면 국민들이 '철밥통', '부정 부패의 근원지'를 떠올리는 것을 현장 조합원들은 억울하게 생각한다. 일부 소수 아닌 공무원도 있지만, 정부와 언론이 몇몇 사람의 잘못을 전체 공무원의 문제로 확대시키는 것도 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자기 정권이 위험할 때면 공무원 공격을 이용해 왔다. 국민이 공무원을 믿지 않는 국가가 발전 전망이 있을지 의문이지만 정부는 오히려 국민이 공무원을 불신하게 만든다. 국민과 공무원의 사이를 이간질시키고 나쁜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언론도 그런 일부 공무원의 모습을 다루기를 즐겨했다. 정치인들은 정치인대로 자기 이해관계 때문에 공무원의 부정적 면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대다수 공무원은 자기 일에 대한 자긍심이 있다. 물론 지난 시기 잘못도 많이 했다. 워낙 월급도 박봉이었고 정부도 어느 정도의 부정은 용인해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프레시안 : 소수라고는 하지만 부패한 공무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번 이미지 광고도 그 문제에 대한 공무원 스스로의 개혁 노력을 알리려고 했던 것 아닌가?
정헌재 : 지금은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전자 입찰 제도만 해도 노동조합이 전국공무원노조 시절부터 꾸준히 요구해 왔던 것이다. 물론 정부는 노조가 요구해서 한 것이라고는 안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는 그것마저 후퇴하고 있다. 비록 우리가 직접 조사권은 없지만 단체장들의 업무 추진비 사용 내역도 자체 자료로 분석해 발표한 바 있다. 노동조합이 있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거액이 들어가는 일회성 광고가 아니라 '민중 행정'을 실현해나갈 생각이다. '참 공무원'이라는 공무원 노조의 목표를 현실에서 구체화시켜나가다 보면 그에 못지않은 효과를 거둘 것으로 생각한다.
사실 공무원만큼 제도와 현실의 괴리를 잘 아는 사람들도 없다. 쌀 직불금 문제만 하더라도 공무원들은 이미 진작부터 제도가 현실에서 잘못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앞으로는 우리 노조가 먼저 그런 현실을 밝혀내고 더불어 법과 제도에 대한 대안을 같이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공무원이 일하면서 느끼는 제도 자체의 문제나, 제도와 운영의 괴리의 문제를 찾아내서 제대로 바꿔내는 것이야말로 국민을 위한 행정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것이 사회 공공성 강화다.
프레시안 : 공무원 안에서 '암행어사'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인가?
정헌재 : 암행어사는 부정부패 처벌이 목적이지만 우리는 제도 개선 및 정책 대안을 내놓는 것이 목적이다. 물론 암행어사 역할을 하는 내부 고발자나 공익 제보자의 보호를 위해서도 법 개정 노력을 해나갈 예정이긴 하다.
"'일단 노무현 전으로 줄여'…MB, 상식이 없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는 노사관계 개입하지 않겠다면서도 노동계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공무원의 노사관계, 즉 정부와의 관계는 좋지 못했는데 현 정부에서는 어떨까?
정헌재 : 정부가 촛불 시위 관련 시국 선언을 한 공무원들을 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놨었지만 아직까지 고발은 안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는 대통령 불신임 투표 건으로 인해 조사를 받고 있다.
정부가 공무원 단체를 탄압하는 근본 원인은 사실 현재의 공무원노조 특별법이 잘못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모든 문구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노조를 못하게 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6급 등 조합원 가입 문제를 놓고서도 정부가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한다.
즉, 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이 문제가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단결권조차 정부가 부정하는 것이다. 결국 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불필요한 사회적 소모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법 개정 운동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특히 이명박 정부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공무원 감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헌재 : 그동안 공무원 조직에 우호적인 정부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은 조금 더 유별스럽고 강도가 세다. 당장 연구 기관 및 중앙 부처의 경우 감원이 인력 계획에 명시돼 있다. 지방 자치 단체는 올해 1만 명 정도를 줄였다. 내년부터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특히 현 정부는 '무대뽀'다. 행정 수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공무원을 줄여야 한다는 논리인데 행정 수요가 늘어나는 곳도 있다는 것을 무시하고 그냥 밀어붙인다. 시골은 필요 없는 인력이 있을 수 있지만 경기도는 자고 일어나면 사람이 더 필요하다. 그런데도 '무조건 어디든 일률적으로 몇 퍼센트는 다 줄여라'는 것이 이명박 방식이다.
우리가 강하게 항의하니 실무자들이 "알았으니까, 일단 노무현 정부 이전 수준으로 줄여 놓고 그 뒤에 필요하면 더 늘려주겠다"고 하더라. 줄여야 할 곳은 줄이고 필요한 것은 늘리는 것이 상식인데 상식이 없다.
프레시안 : 그런 정부를 상대로 단체 교섭을 준비 중이다. 처음으로 민공노가 단체교섭에 참여하는데 전망이 어떨까?
정헌재 : 우리 뿐 아니라 전공노 등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았던 조직이 처음으로 교섭에 들어간다. 정부도 긴장을 많이 하고 있다. 세 조직 모두 큰 조직이다 보니 교섭단 구성부터 합의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하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도 실무 회의 등 준비 많이 해 왔다. 각자 조직 입장이 다르니 쉽지는 않겠지만 교섭 위원 등은 조합원 수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교섭 내용은 조직 별로 크게 다른 것은 없다. 다만 과거 전공노 시절 해고자 복직 문제와 4000여 명에 달하는 징계자의 원상 회복 문제, 공무원 노조법 개정 문제 등을 교섭 안건으로 넣을 계획이다. 공노총에서 부담스러워하긴 하지만 같은 공무원으로 징계와 해고 문제에 대해 반대하기는 어렵다.
아마 그런 안건이 교섭 대상이 되는지부터 부딪힐 것이다. 정부는 우리 요구안을 대부분 교섭에서 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섭 안건 정하는 것이 가장 오래 걸리지 않을까 생각된다.
▲ "그동안 공무원 조직에 우호적인 정부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은 조금 더 유별스럽고 강도가 세다. 특히 현 정부는 '무대뽀'다." 정헌재 위원장의 말이다. ⓒ프레시안 |
"힘 강한 정부, 힘 약한 공무원 조직…하나의 노조가 목표다"
프레시안 : 전공노와는 원래 하나의 조직이었다가 합법화 여부를 놓고 갈등 끝에 결국 갈라서게 됐다. 다시 통합 얘기가 나온다고 하는데 조직 통합에 대한 민공노의 입장은 무엇인가?
정헌재 : 설립할 때부터 민공노는 공무원 조직 통합이 최종 목표였다. 현재 100여 개에 달하는 공무원 단체를 단일한 노조로 만들기 위해 지난해 8월 연석회의를 제안했다. 그 결과 현재 대부분의 조직이 통합 추진위원회 등이 만들어져 있다.
다른 조직과 별개로 전공노와 우리는 특별한 관계다. 따라서 통합도 특수하게 진행돼야 한다. 연석회의와 별도로 전공노와는 지도부 원탁회의를 진행했다. 상호 비난을 중단하고 각종 소송도 취하하고 신뢰 회복을 위해 공동 사업과 공동 투쟁을 진행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전공노와의 통합에 대해 만장일치로 승인을 받았지만 전공노가 문제다. 전공노는 내부 반발로 인해 아직 통합 기획단을 만들지 못했다. 소수 반대가 있지만 통합이 거역할 수 없는 큰 흐름이 될 것이라고 본다. 쉽지는 않겠지만 밖에서 보는 것보다는 빠르게 진행될 수도 있다.
프레시안 : 빠르게라면 어느 정도 시점을 염두에 두나?
정헌재 : 내 임기 내에 통합하겠다는 것이 공약이었다. 2010년 2월이다. 내년 상반기에 하자는 사람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내년 상반기 중에 로드맵은 확정짓겠다.
프레시안 : 조만간 복수노조도 허용될 텐데, 통합을 꼭 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
정헌재 : 정권의 힘이 워낙 세고 노조는 힘이 약해서다. 전체 공무원 조직이 크게 뭉치지 않으면 정부를 상대로 제대로 노조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통합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통합 얘기만 나오면 '빨리 해야 한다'는 등의 당위적인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정말 통합이 가능하려면 선배 노동조합 활동가들도 듣기 좋은 얘기만 하지 말고 책임 있는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전공노가 상급단체로 있는 민주노총에게 하는 말인가?
정헌재 :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등 진보진영에게 하는 얘기다. 공무원 노조를 걱정하는 사람은 많지만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 민주노총이든 민노당이든 공무원 노조가 바로 서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지 당장 지금 이 시기에 필요한 것 때문에 '덩치 큰 아이를 어른 취급'해선 안 된다.
프레시안 : 오는 22일 열리는 '100만 공무원·교원·공공부문 노동자 총궐기 대회'는 통합으로 가는 첫 걸음의 의미도 있는 것인가?
정헌재 : 공무원노조 운동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본다. 당초 계획은 공무원 조직 뿐 아니라 공공부문 노동자까지 같이 하는 대회를 만들어보고 싶었지만 공무원과 교사에 그쳤다. 어쨌든 이번 대회를 거치면서 공무원 조직들이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게 되고 그를 통해 어느 정도 지각 변동도 있으리라고 본다. 그 과정에서 통합 논의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내용적 목표는 사회 공공성 강화다. 국민의 삶을 지키는 것이 곧 우리 공무원을 지키는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그런 결의를 다지는 자리다. 12월부터 있을 대정부 교섭을 앞두고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는 기회기도 하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얘기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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