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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행정구역 개편 하면 지방경제가 살아날까?

[기고] 지역민은 뒷전, 정치적 이해관계가 지배하는 행정구역 개편

주말에 강원도 태백에서 폐광촌 지역의 시민단체 모임에 강연을 부탁받고 다녀왔다. 요즘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의 따가운 눈총과 시선들이 있는데, 평화롭고 자연적인 삶이 있을 두메산골에 얼마나 마음 아픈 일들이 있기에 연합체 형식의 시민단체를 결성하여 시민운동을 하고 있을까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그러한 평화로운 산골지역에 많은 이들이 모여 살며, 더 행복한 삶을 나누기 위해서 자율적으로 모인 행복나누기의 시민단체이겠지 생각하고 길을 떠났다.

가는 목적지는 태백이다. 동서울에서 영월을 거쳐 태백으로 가는 것이다. 일부러 무정차 직행 버스를 타지 않고 영월을 들러 가는 버스를 택했다. 영월에서 태백까지 어느 정도 걸리는가를 몸소 체험해 보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최근 정부와 정치권이 지방행정체제를 대대적이고, 전국적으로, 그리고 획일적으로 개편한다는 우려스런 안을 제안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지방행정체제 개편안에는 강원도를 4개 정도의 통합시 자치단체로 나누고, 그 중 하나가 평창, 정선, 영월, 태백을 하나로 묶어 새로운 통합 자치단체로 만든다고 한다. 이런 내용에 대해 정작 해당 지역주민들은 모르고 있으며 시민단체들도 그 의미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즉 대부분의 국민들은 정부와 정치권의 의도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있는 실정이다.

동서울에서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영동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를 거쳐 38번 국도를 통하여 영월에 도착하였다. 영월 버스터미널에서 잠시 쉬어 다시 구비 구비 산을 넘어, 물길을 건너 한 시간을 지나서야 태백에 도착하였다. 영월이라는 자치단체는 산길로, 물길로 나누어져 인적인 교류와 나름대로의 정체성이 산으로, 물길로 나누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태백시 또한 드높은 산과 차가운 물길로 나누어져 있다. 그렇다면 태백에서 정선을 거쳐 평창까지 가는 길은 몇 개의 산을 넘어야 하며, 몇 개의 물길을 건너야 하는 것일까.

이들 지역들 간의 인적인 교류와 삶의 교류는 잦지 않지만, 의도적으로 교류한다면 수 시간의 개념적 시차를 두고 교류될 수밖에 없다. 이것들을 경제적인 가치로 따지면 막대한 비용이 되고, 또 지역주민들에게는 커다란 불편의 요소들이 될 것이다. 이 지역들을 하나로 통합시키면 '생활권', '행정권', '경제권'이 일치하지 않아 매우 비효율적인 시스템이 될 수 있다. 또 중앙정부와 정치권이 지역의 의견,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여건들이 이질적인 지역들을 하나의 자치단체로 통합시킨다고 해서 그들 지역에서의 '하나 됨'이 얼마나 가능하겠는가.

현 행정구역이 구한말 때 것이다?

강연회 전에 시민단체 대표는 지역주민들은 별로 관심 없지만, 지방행정구역의 개편을 개인적으로 찬성한다고 한다. 경제에 도움이 되니까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시 경제가 핵심이다. 그러나 그렇게 통합하면 지역경제가 살아나느냐고 물었다. 확신은 하지 못하지만 살아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다고 한다. 막연한 기대가 문제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확신할 수 없지만 정부와 정치권에서 "구한말부터 농경시대에 골격이 짜여진 것"이라서 매우 비효율적이고 오늘날 지식정보화사회에 맞지 않은 시스템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이의를 달지 않는다. 정부와 정치권의 의도를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과 다른 이야기들이다.

'자치행정구역'은 1991년 지방의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많은 학계 전문가, 시민단체, 정부, 정치권의 당사자들이 몇 차례의 개편을 통해서 교통통신의 발달, 지식정보화사회에 알맞게 기초자치단체의 규모를 시군구로 광역화하여 설정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초자치단체의 평균 인구는 20만9942명으로 영국의 1.6배, 일본의 2.9배, 미국・독일・이탈리아・스페인의 24-37배, 그리고 프랑스의 120배에 해당되는 매우 규모가 킅 것이며, 평균 면적도 426.9㎢로 다른 나라의 기초자치단체에 비해서 매우 넓은 광역적 규모를 가지고 있다.

또한 이런 자치단체의 재정적인 규모는 매우 열악한 상황에 있다. 대부분의 기초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가 20% 내외이다. 그래서 시민단체의 대표에게 '재정적으로 열악한 자치단체들을 통합하면 어떻게 되겠냐'고 또 물었다. 얼굴이 굳어졌다. 당연히 더 못사는 것 아니냐는 표정이다. 못사는 자치단체들끼리 통합하면 오히려 서로가 서로의 파이를 탐내면서 싸움과 갈등이 지속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행정구역개편의 문제가 우선이 아니다. 먼저 해야 할 것은 지방이 지역의 문제를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는 지방분권의 문제이다. '선 지방분권, 후 행정구역개편'이라는 것이다. 지방정부에게 권한, 기능, 재정을 주지 않고, 지방이 지역의 문제를 어떻게 책임 있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국가가 획일적으로 지역의 문제를 결정하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그렇게 해서 지방이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방이 경쟁력을 스스로 갖출 수 있도록 지방자치의 시스템을 마련해 줘야 한다. 지방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재정, 기능, 권한을 과감하게 분권화해야 한다.

어떤 분은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최근 지방의회의원의 의장선출을 둘러싼 금품수수, 해외관광성 연수, 자치단체장의 뇌물수수, 그리고 지방공무원들의 비리 등의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그들에게 권한을 이양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충분히 동감이 간다.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언론에 보도되는 것은 그만큼 지방행정이 투명해졌고, 우리 사회가 건전해졌기 때문이라고 자위해 볼 수도 있다. 오히려 더 큰 문제는 중앙정치권의 부정의 고리들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강연회 중에 지방행정구역개편의 실상을 조목조목 설명하였다. 반신반의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진지하게 들었다. 그들의 삶과 역사와 문화가 관련된 문제이고 그들의 행복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는 자신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국가가 지역의 문제를 책임지는 것은 한계가 있다.

국가가 도지사를 임명하고 서울시를 분할한다?

사실 지방행정체제개편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의도는 이렇다. 먼저 정부는 정부 출범 초에 '5+2광역경제권'을 검토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으로, '도'로 이전하지 않고서는 국가가 지역의 산업경제기능을 수행하려고 하는 '도'가 걸림돌이 되었다. 그래서 그 걸림돌인 '도'를 폐지하려는 의도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최근 한나라당 권경석 의원은 도지사를 국가가 임명하고, 시군을 통합하며, 서울시를 분할하는 전근대적이고, 반자치적인 법률안을 제시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개별의원의 법안이라고 부인하나 정부와 여당의 의도가 엿보이는 법안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권의 의도 또한 그들만의 이해관계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에서 한나라당, 민주당, 자유선진당이 찬성하고 있고, 민노당, 진보신당은 반대하고 있다. 앞의 3당은 선거구제에 대한 이해관계가 있다. 전국적으로 3-4개의 시군을 통합하여 '중대선거구제'로 가게 되면 민주당은 '호남당'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고, 한나라당 또한 '영남당'이라는 이미지를 떨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렇게라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유권자들은 생각하지 않고, 정치공학적인 셈법에만 관심이 있는 그들에게 유권자들이 표를 모아 줄까 의문이다. 이런 꼼수만 생각하고 있으니 여전히 지역정당 수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측은지심이 든다.

또 양당 모두 2-3선의 중진의원과 초선의원들 간에는 약간의 이견이 있다. 중대선거구제로 가면 일반적으로 초선 내지는 신진후보자들은 불리하다. 반면에 지명도가 높은 중진의원들은 영원히(?) 철밥통으로 의원직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뼈저린 경험을 했던 민주당으로서는 더욱더 이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지역에서 골고루 득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선진당은 이들과는 약간은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초기에는 지방행정구역개편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강소국연방제'를 들고 나왔다. 왜일까? 이를 통한 그들의 속셈은 무엇인가? 당 총재는 싱가포르를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그들의 속셈도 지역정당인 '대전충남당'에서 좀 더 세력을 넓혀 '대전충청당'으로 가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라고 한다면 이런 이해관계가 우연히 일치한 것일까? 그렇게 권위주의 정부시절에 야당들이 주장했던 지방자치제도를 이제는 무력화시키려는 세력들의 의도는 무엇인가. 당의 이해관계가 국민들을 위한 이해관계, 지방의 이해관계에 앞서고 있다는 것 말고 무엇인가. 예의 주시해야 할 것이다.

강연회 중에 수도권의 규제철폐와 종합부동산세(종부세)의 폐지가 지방의 살림을 어렵게 한다는 대목에서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이 너도 나도 한마디씩 하려 했다. 종부세 폐지로 '도'의 예산이 몇 천억원 삭감되어 사업을 전면적으로 재수정해야 한다느니, 우리 지방의 기업은 다 수도권으로 간다느니 한숨을 쉬는 지경이 되었다. 종부세는 지방세원을 보충하는 중요한 재원이다. 그런데 이것을 무력화하고 지방을 궁핍하게 만드는 것은 지방의 살림을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지방을 살리기 위한 것은 무력화시키고, 지방에 이익도 없고 경제적인 효과도 없는 지방행정구역의 개편을 통하여 정치적인 이득만을 취하려 하는 정부와 정치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역시 지역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굳게 다짐하고 되새겨야 한다.

강연회에 참석한 어떤 사람은 그렇다면 분권은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느냐며 지역의 사례를 제시하였다. 지방공기업이 적자재정으로 도산할 위기에 처해 있는데 도산하게 되면 이것을 시가 책임져야 하는지, 아니면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지 물었다. 어려운 질문이지만 답은 해야 했다. 자치단체는 열악한 재정을 개선하기 위해서 궁여지책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했을 것이고, 국가는 애초부터 자치단체에게 충분한 재정분권을 부여해 주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서로가 책임져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지방정부에 완전한 권한이 배분된다면 지방정부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따라서 '선 분권, 후 책임'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중앙정부, 수도권, 그리고 '강부자'는 지방의 문제를 책임지지 않는다. 지방 스스로가 책임져야 한다.

'도'를 폐지하면 지역주의가 없어질까?

폐광지역 연합시민단체가 서로 모여서 함께 지역의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 이들 지역이 하나의 자치단체로 통합되면 이러한 아름다운 협의의 모습이 사라질까 걱정이다. 정치권은 '도'를 폐지하고 시군을 통합하면 '도'의 개념이 희미해지기 때문에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라는 하는 등의 지역주의는 없어질 것이라고 한다. 이는 지역주의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것이다. 지역주의는 단순히 지역적, 공간적 개념이 아니고 역사적, 문화적인 배경에 의해서 지역주민들의 마음에 내면화된 것이다. 지역주의는 공간적 구조의 재배치를 통해서 없어지기 만무하다. 백보 양보해서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다고 하자.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지역주민들의 자기 고향(시, 군)에 대한 애정이 3-4개 자치단체를 통합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통합 자치단체에서 또 다른 소(小) 지역주의로 전개될 수 있다. 오랜 세월동안 하나의 정체성을 갖고 지내온 지역주민들이 서로 다른 지역주민들과 하나 되지 못하고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하여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지방선거를 연상하면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선거과정에서 지역에 따라 후보자들이 지역주민들을 이간할 것이고, 지역을 중심부와 주변부로 분리하고 차별화 할 것이다. 또 지역주민들은 지역내의 혐오시설 및 선호시설을 둘러싸고 대립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을 비용으로 환산하면 그야말로 수조원에 달한다는 것을 왜 정부와 정치권은 모른 체 하는가.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지방행정체제가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주장하는 현제의 문제점은 몇 가지의 대안을 통해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데 왜 문제해결의 확신도 없는 지방행정체제개편안을 제시하는 것인지 정치권과 정부의 의도가 의문스럽다.

정치권과 정부가 약속이나 하듯이 이 문제를 들고 나서는 것은 시도를 없애고 '행정청'을 통합시 위에 설치하여 중앙집권화를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있지 않은지, 또, 경제 살리기라는 명분하에 지역주민들의 이해관계나 민주적인 절차들을 무시하고 지방자치를 형해화(形骸化)하려는 속셈은 없는지 주시하여야 할 것이다.

또 이제는 지방자치제도를 통한 결실의 시기이다. 최근 지방자치제도의 문제점, 단체장, 지방의회의원들의 비리 등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걱정이 앞선다. 오히려 지방자치의 장점과 열매는 부각되지 않고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되고 있는 것은 왜일까. 문제가 조금 있다고 해서 없애고 과거로 가자는 식의 주장은 '과거회귀적인 사고'이다. 현재의 지방자치의 문제는 보완하면 된다.

그리고 지방자치를 경제적 효율성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결국 지방자치를 하지 말자는 극단적인 '과거로의 회귀'에 도착할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의 중요한 가치인 민주성, 민주적인 절차, 지역주민의 이해관계 보장 등은 간과될 수 없다.

아무튼 지방자치의 본질인 민주성과 경제성을 함께 균형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점진적인 대안을 통하여 지방자치제도의 결실을 중앙정부, 지방정부, 지역주민들이 함께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강연회를 마치고, 늦은 밤 버스를 타고 서울 귀경길에 칠흑 같은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대형트럭위에 실린 아름드리 소나무 한 그루가 어디론지 실려 가고 있었다. 옆에 있는 아내가 저런 소나무들은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대답 대신 씁쓸한 웃음을 보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디로 가는지 알겠다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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