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다. 정부가 9월 발표한 종부세 완화안과 거의 일치한다. 종부세 틀은 유지하더라도 부과기준은 완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헌법재판소가 그렇게 결정했다. 종부세가 입법권을 남용한 것도, 미실현 이득에 과세한 것도, 이중과세도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세대별 합산 과세는 위헌, 1주택 장기보유자에 대한 과세는 헌법불합치라고 했다.
예상했던 그대로다. 정치권과 언론이 얼추 내다본 그대로다. 그래서 의아하지 않다. 궁금하지도 않다. 헌재 결정 이후 국회의 모습이, 정부의 모습이 어떨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자중지란의 요소가 사라졌다. 종부세 부과기준을 놓고 정부와 한나라당이, 한나라당 지도부와 평의원이 보인 이견과 갈등이 사라지게 됐다. 이제 일치단결된 모습으로 종부세 완화안을 밀어붙일 일만 남았다.
단순히 밀어붙이는 게 아니다. 끝장을 볼 가능성이 크다.
종부세 완화안은 상징이었다. 정부의 감세정책을 상징하는 요소였다. 좌로 상속·증여세 완화안을, 우로 소득·법인세 완화안을 거느린 꼭지점이었다. 이 꼭지점이 헌재 결정으로 탄력을 받게 됐으니 다른 감세안에도 모터를 달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정말로 의아하다. 민주당의 태도가 정말로 의아하다.
민주당이 대변인 구두 논평을 내놨다. 헌재 결정이 내려지기도 전에 "헌재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논평을 내놨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헌재 발언'에 총공세를 펴면서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는 민주당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헌재 결정 기일 연기까지 요청했던 민주당이 후진기어를 넣은 것이다. "이제 국민이 헌재를 심판할 차례"라는 논평을 내놓은 민노당과는 다르게 고개를 숙인 것이다.
다르게 볼 여지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민주당이 용빼는 재주를 갖고 있지 않는 한 사법적 판단을 정면에서 거부할 힘도 논리도 없다. 원칙적으로 존중하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그냥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 민주당 대변인 구두 논평을 원칙적인 입장 표명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이해하려니 더욱 의아하다. 헌재 결정이 나온 후 민주당의 다른 대변인이 나서 "매우 유감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예측한 대로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강만수 장관의 '헌재 발언' 배경에 대한 의혹을 아직 풀고 있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 논평이다. 헌재 결정에 전폭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힌 논평이다.
그런데도 일찌감치 '존중' 논평을 내놔 스스로 가둬버렸다. '헌재 발언'에 의혹을 제기하는 자신들의 주장에 스스로 김을 빼버렸다.
어떻게 할까? 민주당은 앞으로 어떻게 할까?
일반적 예상이 하나 있다. 법과 정치를 별개로 놓고 정치적 공세를 강화하는 길이다. 강만수 장관 사퇴 요구를 더욱 강하게 펴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그런 정치 투쟁은 전제가 무너진 결론을 붙잡고 씨름하는 것과 같다.
강만수 장관의 '헌재 발언'이 문제가 된 것은 헌재 결정에 정부의 입김 또는 읍소가 반영됐을 가능성을 전제한 것이다. 무너질 수밖에 없다.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는 그 순간 강만수 장관의 '헌재 발언'의 심각성은 사라지고 기껏해야 말실수로 치부된다. 사생결단의 각오로 싸울 성질의 사안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약화될 수밖에 없다. 헌재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이 결과적으로 강만수 장관 사퇴 요구 명분을 약화시킨다. '헌재 발언'을 강만수 장관 사퇴의 결정적 이유로 내걸었던 지난 행적이 '생트집'으로 치부되면서 사퇴 주장의 근거를 약화시킨다.
민주당은 헤맬 수밖에 없다. 거점을 잃고 계기를 잃고 동력을 잃은 채 낙동강 물에 정처없이 흔들리는 오리알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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