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국제신용평가기관인 피치사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하면서 그 이유로 '은행 건전성 악화'를 꼽았다. 또 다른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 푸어스(S&P)도 이날 "최근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는 했으나 한국 은행권의 자금 수요는 여전히 최대 관심사"라며 "은행의 단기적 자금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3분기 은행 건전성 크게 악화
지난 3분기 대다수 시중은행들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크게 하락했다. 국민은행은 BIS 비율이 2분기 12.45%에서 3분기 9.76%로 하락 폭이 가장 컸다. 신한은행은 2분기 12.5%에서 3분기 11.9%, 외환은행은 11.56%에서 10.64%, 기업은행은 10.49%에서 10.15%로 하락했다. BIS 비율은 국제결제은행이 정한 위험자산 대비 자기자본 비율로 높을수록 경영상황이 좋은 것이다. 금융당국의 지도기준은 8%이나 통상 10%가 넘어야 우량은행으로 분류된다. 외환위기 당시 동화은행, 동남은행, 충청은행 등이 BIS비율이 8%가 넘지 않아 퇴출 당하기도 했다.
연체율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1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9월말 국내은행 부실채권비율은 0.81%로, 전분기에 비해 0.11%포인트 상승했다. 금액기준으로는 부실채권잔액이 10조3000억원으로, 전분기의 8조3000억 원에 비해 2조 원 늘었다.
국민은행의 3분기 부실채권비율은 0.78%로 2분기에 비해 0.12%포인트 증가했고, 신한은행은 0.87%로 0.09%포인트 늘었다. 하나은행은 2분기 0.77%였으나, 3분기엔 0.95%로 0.18%포인트 상승했다. 정책적으로 중소기업 지원에 나선 기업은행이 0.76%에서 1.22%로 0.46%포인트 상승했다.
은행들과 금융감독당국은 은행들의 건전성 지표가 악화된 것은 맞지만 아직은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일부 은행들이 BIS비율이 한자리 수로 떨어졌지만 8% 아래로 떨어진 것은 아니고, 부실채권 비율도 우려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은행채 발행, 장기적으론 빚…고금리 경쟁도
은행들이 이처럼 낮아진 BIS비율을 높이기 위해선 은행채 발행 등을 통한 자본확충이 필요하다. 국민은행은 오는 13일까지 8000억 원 규모로 만기 5년6개월짜리 후순위채권을 발행할 계획이다. 신한, 우리, 하나, 외환은행도 은행채 발행 계획을 갖고 있다.
은행채 발행으로 당장 자본 확충은 가능하지만 결국 장기적으로 보면 빚이다. 게다가 시중은행들이 일제히 은행채 발행에 몰리면서 금리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높다. 최근 은행들이 예금 확보를 위해 고금리 특판 예금 판매로 '출혈 경쟁'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 일이 은행채 발행에서도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 결과적으로 은행들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또 하나는 대출 축소, 자금 회수 등을 통해 위험 자산 비중을 줄여 BIS 비율을 높일 수 있다. 은행들 입장에서는 증자보다 훨씬 손쉬운 방법이다. 실제 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 증가액은 7월 5조5000억 원, 8월 1조8000억 원, 9월 1조9000억 원, 10월 2조6000억 원 등 크게 감소했다.
하지만 은행들의 돈줄을 틀어쥐고 있을 경우, 기업과 가계가 자금난으로 부도위기에 몰리게 되고, 이같은 실물경기 침체는 다시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된다.
건설 PF 중 20%만 단계적 회수 기대…41개 건설사 부채비율 429%
문제는 앞으로 은행들의 사정이 나아질 변수는 별로 보이지 않고 나빠질 변수들이 도드라져 보인다는 것. 특히 부동산 시장이 경착륙할 경우 가계부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이 금융 부실의 촉매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 PF의 문제는 특히 심각하다. 굿모닝신한증권이 10일 낸 '디레버리징의 신용이슈' 보고서에 따르면, "건설 PF 신용의 단계적 회수를 기대할 수 있는 사업장의 비율이 20%도 되지 않는다"며 "나머지 80%는 금융기관이 추가로 신용공여를 해야만 유지되는 사실상의 고정화 상태에 접어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건설PF의 60% 이상이 분양 전이고, 분양된 사업장도 대략 절반의 분양률이 50%를 하회한다"며 "건설PF의 정상적인 순환이 끊어졌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국내 41개 건설사(BBB-이상)의 PF우발채무를 포함한 수정부채비율을 429%로 추정했다. 재무제표에 나타난 부채비율인 189%의 2.5배나 되는 수치다.
더욱이 부동산PF 부실화 우려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만이 아니라 은행들까지 확산되고 있다. 보고서는 "은행별로 차이가 있지만 평균적으로 PF대출 중 브릿지론 비중이 1/3을 넘는다"고 밝혔다. PF 대출은 사업 인허가 전 토지구입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 이뤄지는 브릿지론과 인허가 획득 후 실시되는 본 PF로 나뉜다. 브릿지론은 주로 제2금융권에서 취급하다가, 은행들이 2006년말부터 건설사 대출을 늘리면서 브릿지론도 급증했다.
또 하나 드러나지 않은 은행들의 부실 중 하나가 환헷지 상품인 키코(KIKO)로 인한 손실이다. 키코는 환율 상승에 따라 외채 상환 부담이 연동해 증가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누구도 그 손실 규모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환율이 1300원일 때 중소기업의 피해액은 약 5조 원으로 추산된다.
660조 원에 달하는 가계대출도 '뇌관' 중 하나다. 2005-2006년 급증했던 주택담보대출의 원금 상환이 대부분 2009년부터 시작된다. 대출자들의 부담이 급증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주식 등 자산 가치가 떨어지고 있고 실물경기 침체로 연말에 기업 구조조정 등이 본격화 되면 대량실업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하는 개인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국민은행의 BIS비율 급락은 지주회사 전환에 따른 것이 반영된 것임을 감안하더라도 다른 은행들도 전반적으로 악화됐다"며 "이처럼 시중은행들의 건전성이 크게 악화된 이면에는 지난 3-4년간 과잉유동성을 바탕으로 주택담보대출, 건설사 대출 급증 등 무모한 규모 확장 경영이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은행들의 '덩치 키우기 경쟁'에서 취득했던 자산의 퀄리티가 악화되면서 BIS비율 하락 등이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은행들의 건전성은 이미 악화됐을 뿐 아니라 부동산PF, 키코, 가계대출 등 기업과 가계의 부실을 은행들이 얼마나 많이 떠안게 될지 불투명하다. 신용평가회사들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평가하면서 은행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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