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표의 말은 맞다. 하지만 흔쾌하지가 않다. 속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진정성보다 계산법이 먼저 다가오기 때문이다.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박근혜 전 대표가 지역이 반발하는 사안을 흘릴 수 없다. 그러면 다친다. 이명박 정부의 '지방 홀대' 책임이 자신에게도 씌워진다. 각을 세우면 넓어진다. 지역의 이익과 생존을 대변하는 정치인이 되고 정치기반이 강화된다.
모르지 않는다. 이게 정치라는 것을, 정치인의 생리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대권을 노리는 유력정치인의 기초활동이 집토끼 단속이란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곱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적 이해관계가 직결되는 사안에만 올인하는 그의 모습이 편협해 보인다.
이런 일이 있었다. 9월 25일의 일이다. 국회 보건복지위가 회의를 열었다. 멜라민 파문에 대한 정부의 늑장대처를 추궁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같은 날 한나라당은 의원총회를 열었다. 종합부동산세 개편안에 대한 당론을 정하기 위해서였다.
박근혜 전 대표는 참석하지 않았다. 두 회의가 열릴 때 박근혜 전 대표는 대구에 있었다. 대구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들과 간담회를 갖기 위해서, 대구 국제육상대회에서 축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판이한 행보였다. 박근혜 전 대표 스스로 다짐했던 것과 상반되는 행보였다.
박근혜 전 대표는 9월 15일 자신의 미니홈피에 글을 올렸다. '나의 책임'이란 제목의 글이었다. 이 글에서 밝혔다. "내가 복지위를 선택한 이유는 가장 중요한 우리의 기초적인 삶에 대한 문제를 찾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랬던 박근혜 전 대표가 지역을 챙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기초적인 삶의 문제"를 외면했다.
아니라고 할지 모른다. 이틀 뒤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긴 했다. 9월 27일 글을 올렸다. 멜라민 파동과 관련해 "보다 확실한 식품검역체계를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하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국가에서 철저하게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말하긴 했지만 의미는 없었다. 면피용 글에 지나지 않았다. 내용도 하나마나한 공자님 말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또 다시 반문할지 모른다. 회의 한 번 불참한 걸 갖고 꼬투리 잡느냐고, 평소 상임위 활동에 열중했다고 반박할지 모른다.
그럴지도 모른다. 상임위 활동을 소홀히 했다고 단정할 근거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마찬가지다. 국가적 대사에 대해 묵언으로 일관해온 건 엄연한 사실이다. 쇠고기 문제가 터졌을 때 '양다리 걸치기' 식 발언을 한 것이 국민이 기억하는 거의 유일한 발언이다.
국민이, 그리고 한나라당이 박근혜 전 대표에게 요구하는 건 참여다. 제3자적 자세로 '훈계'나 '평론'을 하라는 게 아니다. 당의 중진으로서 국정 전반에 대해 책임감 있는 참여를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박근혜 전 대표가 당직을 맡지 않았다는 이유로, 박근혜 전 대표가 나서면 이명박 대통령에 누가 된다는 명분을 들어 때론 '잠수'를 하고 때론 외곽만 돈다. 당이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를 만들어 참석을 종용하는데도 하지 않는다.
이해를 하려해도 이해할 수 없다. 노무현의 덫에 갇혀 힘 한번 쓰지 못하고 무너졌던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같은 꼴이 되지 않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과 거리두기를 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려 해도 그럴 수가 없다. 거리두기를 할 뿐 아직 차별화를 꾀할 때가 아니기에 침묵과 방관으로 일관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려 해도 그럴 수가 없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관계, 한나라당 안에서의 박근혜의 위치만 고려하면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대권을 노리는 박근혜 전 대표이기에 국민은 판단하고 평가할 근거를 얻고자 한다. 집권여당의 중진으로서, 포스트 이명박의 선두주자로서 박근혜 전 대표가 'MB국정'에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MB공과'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지고 어느 정도 면책되는지를 알고자 한다.
이게 없다. 박근혜 전 대표는 바로 이것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국민 서비스를 외면한 채 보신 또는 입지 넓히기에만 골몰하고 있다.
언젠가는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힘이 빠졌다고 판단할 때 본격적으로 차별화에 나설 것이다. 'MB국정'에 대해 꼬치꼬치 토를 달고 평을 달 것이다.
하지만 부질없다. 이런 행보는 나쁘게 보면 '뒤통수치기'이고 아무리 좋게 봤자 '뒷북치기'일 뿐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밝혔다. 국정감사를 끝낸 소회를 미니홈피에 올리면서 이렇게 밝혔다. "매년 좀 더 국민을 대변하고 국가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각오로 임하지만 항상 지나고 나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아쉬운지 모르지만 국민은 감질 난다. 짜증이 난다. 그래서 묻고 또 묻는다.
'박근혜, 당신은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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