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0여일을 달려온 미국 대선이 232년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키며 끝났다. 선거 결과 오바마의 민주당은 8년 만에 정권을 되찾아 급변하는 정세에 새 역사를 쓸 기회를 맞았다.
근래 보기 드문 관심을 낳은 선거니만큼 이번 대선은 숱한 화제를 낳았다. <CNN>은 4일 인터넷판 뉴스로 이번 대선의 '잊을 수 없는 10가지 순간'을 정리했다.
① 힐러리의 눈물 : 오바마에게 힐러리는 매케인보다 더 어려운 경쟁자였다. 힐러리는 오바마에 앞선 경륜과 의료보험제도 개선 가능성을 인정받아 오바마를 민주당 경선 끝까지 괴롭혔다.
점차 지지율 격차를 벌리며 앞서 가던 오바마에 최대 난관은 지난 1월 찾아왔다. 뉴햄프셔 경선을 앞두고 힐러리가 눈물을 보였기 때문이다. 지지율에서 밀려도 씩씩한 모습을 보이던 힐러리에게 한 지지자가 비결을 묻자 그는 "쉽지 않다"고 답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그의 이런 '의외의' 모습은 그 동안 가려졌던 여성성을 부각시키며 여성 유권자의 마음을 끌었다.
② 매케인 "폭격하자 이란!" : 매케인은 스스로 부시 대통령과의 거리두기에 실패했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해 4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그가 한 '폭탄' 발언이다.
당시 유권자들과 외교정책에 관한 토론을 나누던 매케인은 '이란을 공격할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 미국의 유명 팝밴드 비치 보이스의 노래 <Barbara Anne>을 'Bomb Bomb Iran(폭격하자, 폭격하자 이란)'으로 개사해 불러 빈축을 샀다. 그의 전적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길이자 '공화당의 이단아'란 평가를 무색케하는 발언이었다.
③ '갓 댐 아메리카' : 이번 선거가 낳은 최대 유행어(?)이자 인종문제가 여전히 미국이 안고 있는 불씨임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 있다. 바로 오바마의 '정신적 스승'으로 불린 제레미아 라이트 목사의 '갓 댐 아메리카(빌어먹을 미국)' 발언이다.
라이트 목사는 9.11 테러가 미국이 키운 테러리즘 때문에 발생했다고 주장하며 '갓 댐 아메리카'를 저주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이 일로 오바마는 경선에서 가장 큰 고비를 맞을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으며, 결국 라이트 목사를 비판하며 그와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④ 입 닫은 '수다쟁이 조' : 오바마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조 바이든은 잦은 실언으로 구설수에 오르던 인물이었다. 그는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말을 아껴 오바마를 측면 지원했다.
지난 10월 열린 부통령 후보 간 토론에서 바이든은 "세계 무대에서 부통령이 갖춰야 할 자제심을 갖고 있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 입단속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짤막하게 답변했다.
⑤ 여성비하 논란 일으킨 '돼지 립스틱' : 미국 정치 무대는 세계에서 가장 큰 '말의 잔치'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오바마는 이 잔치에서 한 번 말을 잘못 놀려 여성 유권자들의 지지를 잃을 뻔하기도 했다.
오바마는 지난 9월 매케인의 정책을 두고 "돼지 입에 립스틱을 바른 것"이라고 폄훼했다. 새라 페일린 공화당 부통령 후보에 설욕하는 발언이었다.
페일린 후보는 스스로를 '하키맘(지역 공동체 활동을 열심히 하는 평범한 중산층 학부모를 상징)'으로 칭하며 "하키맘과 투견의 차이점은 립스틱을 발랐냐 아니냐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오바마를 협력은 할 줄 모르는 투견으로 비유한 것이다.
오바마의 발언이 보도되자 공화당 지지자들은 여성을 폄하하는 발언이었다며 강력하게 사과를 요구했다.
⑥ 힐러리의 거짓말 : 오바마와 힐러리의 경선 경쟁은 힐러리가 거짓말을 지어내야 했을 만큼 치열했다.
경선 당시 힐러리는 자신이 영부인 시절 보스니아 공항에서 저격을 피하기 위해 몸을 낮추고 뛰어다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 일 없다는 듯 편안하게 공항을 걸어나가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가 유포되면서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이 밝혀졌다. 이 일로 힐러리는 신뢰도를 크게 잃었다.
⑦ '조(Joe)'의 선거 : 이번 선거 기간 언론에 유난히 자주 언급된 이름이 '조'다. 민주당의 부통령 후보였던 조 바이든, 퇴근길에 여섯 캔들이 맥주를 사가는 미국의 서민층을 지칭하는 '조 식스팩(Joe Sixpack)', 그리고 공화당의 '배관공 조'가 그들이다.
조 바이든은 입방정 때문에, 조 식스팩은 양당 후보가 모두 자신이 서민을 위한 대통령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배관공 조는 미국 대선 막판 뒤집기 가능성을 선보이며 일약 스타로 오른 공화당 지지자다.
배관공 조는 지난 달 오하이오주 유세장에서 자신을 평범한 배관공이었다가 조만간 회사 하나를 인수해 연수입 25만 달러를 벌어들일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오바마의 조세 정책을 비판해 화제가 됐다.
오바마는 그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고 매케인 진영은 이를 두고 "오바마의 세금 정책은 배관공 조와 같은 일반 서민에게도 불이익"이라고 홍보했다. 그러나 정작 그는 배관공 면허가 없는 무자격자며 실명도 조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⑧ 매케인의 금융 감각 : 매케인은 "미국의 경제 기반은 튼튼하다"고 유권자들에게 강조하곤 했다. 어찌 보면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로서 당연한 선거용 멘트이기도 했다.
그러나 매케인의 발언 직후 미국은 세계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를 맞았다.
⑨ 명품 옷 : 미국 대선에서도 명품 옷이 논란이 됐다. 마치 지난 해 한국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부인 김윤옥 여사의 명품 시계가 논란이 된 것과 비슷하다.
미국 언론들은 일제히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페일린이 옷과 장신구를 구입하기 위해 15만 달러를 썼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이는 그의 중산층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줬다.
페일린은 또 지난 달 뉴욕의 한 행사에 큰 딸을 동반하고 참가한 후 참가비용을 주정부에 청구해 공공 예산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미국 언론의 이와 같은 집요한 후보검증은 한 때 공화당의 구원투수로 여겨졌던 페일린을 공화당의 골칫덩이로 만들어버렸다.
⑩ 흑색선전에 뿔난 힐튼 : 선거 유세 막판까지 지지율 격차가 좁혀지지 않자 결국 초조한 매케인 진영은 네거티브 전략을 사용했다.
매케인 측은 오바마가 미국의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패리스 힐튼과 같은 유명인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난성 광고를 내보냈다. 광고에서는 힐튼과 스피어스의 모습이 나온 후 오바마가 등장하면서 "그는 이 세상 누구나 아는 유명 인사가 됐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가 지도자가 될 준비는 됐나요?"라는 문구가 나온다. 힐튼과 스피어스는 모두 문란한 사생활로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할리우드 스타다.
네거티브 전략에 정작 뿔이 난 사람은 오바마가 아니라 힐튼이었다. 억만장자 상속녀인 힐튼은 비키니 차림으로 동영상에 출연해 자신의 불쾌한 심정을 드러냈다. 동영상에서 그는 수영복을 입은 채로 벤치에 누워 나이 많은 사람(매케인)처럼 말을 하며 "나는 구시대 인물이 아니고 그런 사람 같은 변화를 약속하지도 않는다"고 매케인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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