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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건설 불사' 위해 은행 볼모로 잡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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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MB정부, '건설 불사' 위해 은행 볼모로 잡나"

전성인 교수 "자통법 시행, 개미들만 골병들 것"

이명박 정부가 연일 은행을 압박하고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은 3일 라디오 주례연설에서 "중소기업들이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던 은행의 '꺾기'가 여전하다는 하소연, 거기에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돈을 풀고 있다고 하지만 말 뿐이지, 창구는 꽁꽁 얼어붙어있다고 불평도 하고 있는 것을 들었다"며 은행들의 영업 행태를 비난했다. '꺾기'는 대출과정에서 예·적금 가입을 강요하는 것을 말한다.

이 대통령이 진두지휘해 은행 압박

이 대통령의 '은행 지탄' 발언이 나오자마자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3일 간부회의에서 "은행이 실물경제를 지원 강화해줘야 한다"며 은행들이 기업 대출을 늘릴 것을 주문했다.
▲ 이명박 대통령의 '은행 질타' 발언은 지난 3일 발언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금융권의 고임금"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제기했었다. 은행들의 고질적 문제와는 별개로, 이 대통령의 이런 '은행 옥죄기'는 건설업에 대한 무한한 배려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사진은 라디오 주례연설을 녹음하고 있는 이 대통령. ⓒ청와대

또 4일 금융감독원은 이날부터 7일까지 국민, 신한, 우리, 하나은행 등 시중은행 9곳을 대상으로 중소기업 대출실태에 대한 현장점검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중소기업 지원 실적이 적은 은행에 대한 집중 조사를 벌이는 한편 '꺾기' 등 은행들의 위법사항이 발견되면 엄중 문책할 계획이다. 은행들에 대한 구체적인 압박에 들어간 셈이다.

물론 시중 은행들이 외환위기 이후 철저한 수익 위주의 경영으로 은행의 '공공성'을 외면해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신용카드 남발, 과도한 주택담보대출, 각종 펀드상품 판매 등을 통해 수익을 챙기는데 집중하면서 지난해 국민 2조7738억 원, 신한 2조3963억 원, 우리 2조311억 원, 하나 1조2980억 원의 순이익을 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기업에 돈을 조달해주는 산업의 '혈맥'으로서 금융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해왔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명박 정부의 '은행 질타'는 어느 정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이 '경제위기', 특히 '신용의 위기' 상황이라는데 있다. 금융시장에서 만인이 만인을 믿지 못해 유동성 위기가 초래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은행들에게 무조건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라고 압력을 넣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은행들의 신용을 갉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은 3일 <프레시안>과 전화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의 은행들에 대한 압력 행사에 대해 "그러다가 위험을 관리해야하는 은행들이 부실화되면 어쩌라는 얘기냐"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이같은 압박이 최근 이명박 정부가 부실 건설사마저 모두 껴안고 가겠다는 방침과 연관된 것이 아닌지 우려를 표명했다. "금융기관들의 건전성 감독에 신경을 써야할 금융위원회가 건설사 부도를 걱정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은행 압박 발언 이후 금융위, 금감원이 실력 행사에 나선 것을 지적한 것이다.

은행들에 대한 대출 압력의 위험성은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도 지적한 대목이다. 이 의원은 지난달 29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부실한 기업에다 돈 대주라고 압력을 가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면서 "이게 지나치면 은행 신용이 위험해진다. 외국으로부터 돈 빌리는 게 더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방만 경영 주역, 책임 추궁은 커녕 '낙하산 인사'로 부활

공공성을 망각한 은행들의 경영 방식에 대해 정부가 책임 추궁을 해야할 대목은 사실 이 지점이 아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달 30일 논평을 내고 지난 2002년부터 시작된 은행들의 '덩치 키우기' 경쟁이 이번 유동성 위기의 근본원인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은행들은 무리한 외화대출 늘리기와 주택담보대출을 해왔고, 그 결과가 누적돼 나타난 현상이 현 유동성 위기라는 것. 또 무모한 시중은행의 덩치 경쟁은 최근 건설업 거품을 키우는 데도 일조했다. 시중은행의 기업여신 중 건설업과 부동산·임대업에 대한 여신잔액은 지난 2005년 45조2000억 원에서 지난해 88조5000억 원으로 거의 두 배가 늘어났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은행들의 이런 무모한 경영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 추궁이 없다. 오히려 '메가뱅크 논쟁'이나 자통법 시행 등 은행들에게 '덩치 키우기'에 몰입해야할 이유만 던져줬다. 그리고 이런 방만경영의 책임 문제는 전혀 부각시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런 '덩치 키우기' 경쟁을 주도해 외양적으로는 눈부신 성장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때 가장 큰 손실을 가져온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은 이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이유로 새롭게 금융지주회사로 출범한 KB금융지주회사의 회장으로 취임했다. 황 회장은 취임 직후 인수합병(M&A)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혀 '제2의 금융대란'이 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일기도 했다.

'MB식 관치금융', 금융시장의 원칙과 기강 훼손

현 글로벌 금융위기는 '시장 실패'의 결과라는 점에서 정부가 나서야할 상황이다. '관치금융'으로 회귀하는 것은 일정 부분 감수해야할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연 이명박 정부의 '관치'를 믿고 따를 수 있을지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지난주 이명박 정부가 개가를 올렸던 한미간 300억불 통화스왑 체결만으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닌 듯하다.

한미간 통화스왑 체결에 대해 전성인 교수는 "미국과 한국 정부에게는 유일한 선택이었다"며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7000억 불 공적자금 투입 등 정책을 마련해두고 있는데 한국이 유동성에 문제가 있다고 외화 조달을 위해 미국 국채를 팔면 미국도 곤란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통화스왑이 없었던 것보다는 훨씬 낫지만 지금처럼 이명박 정부가 자화자찬할 일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마치 국가부도를 내놓고 뉴욕 가서 외채협상을 잘했다고 자랑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라고 비판했다.

전 교수는 "외화 유동성 문제가 일부 풀리기는 했지만 오는 연말 만기가 돌아오는 외채가 800억 달러로 알려져 있는데 이 만기 연장이 어떻게 되는지 봐야 유동성 문제가 어느 정도 풀렸다고 할 수 있다"며 "단순히 만기가 연장되는 수준이 아니라 6개월, 1년 정도 장기로 연장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최근 시장에서는 주로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몇몇 기업들이 흔들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고, 그런 기업들에 공격적으로 대출을 해준 은행들의 부실 우려도 커지고 있다"며 "문제는 이런 은행들의 경영을 담당했던 인사들을 이명박 정부 들어 금융계 곳곳에 '낙하산 인사'로 내려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관치를 하더라도 효율적이면 모르겠지만 비효율적인데다가 방법상 정당하지도 않았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금융시장 질서가 엉망이 되고 감독당국을 무서워하지 않고 '줄만 잘 대면 된다'는 관행이 되살아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금융시장의 원칙과 기강을 훼손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통법, 투자자 피해 더 커질 수도"

이명박 정부는 현 금융위기 국면에서 불구하고 금융규제완화를 계획대로 추진해 이미 인사를 통해 엉망으로 만든 금융시장의 질서를 더 어지럽힐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금산분리 완화를 주요 골자로 하는 은행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에서 비금융주력자의 은행 주식 보유 한도를 4%에서 10%로 상향 조정한 것만으로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할 수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문제는 사모펀드를 통해 재벌들이 마음만 먹으면 은행 지분의 100%를 소유할 수도 있다는 점. 사모펀드의 경우 산업자본의 지분 참여가 30% 미만이거나, 대기업 계열사 지분이 사모펀드 출자총액의 50%미만이면 산업자본에 해당되지 않는 금융주력자로 인정받게 된다. 금융주력자의 경우 금감위의 승인만 있으면 은행 지분을 무제한 소유할 수 있다.

전성인 교수는 "이번 금융위기 사태를 통해 확인된 사실은 은행은 일반 회사와 달리 공공성을 가진 회사라는 점"이라며 "미국의 7000억 불 구제금융법안, 한국의 외화대출에 대한 지급보증안 등은 이런 사실을 보여주는 사태"라고 말했다.

그는 "금산분리 완화의 의미는 이런 구분이 모호해지는 것"이라며 "삼성전자가 은행을 소유하고 있을 경우 이 은행에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여한다는 것은 정부가 삼성전자를 도와주는 셈이 된다"고 금산분리 완화의 위험성을 현 경제위기 상황과 연관지어 설명했다.

"만약 삼성이 (미국 금융위기 사태에서 유동성 위기를 겪은) AIG를 갖고 있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겠는가? 정부가 과연 지금처럼 쉽게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 있겠나. 우리나라는 현 상태로도 이런 문제를 이미 갖고 있다. 삼성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삼성생명이 금융위기 국면에서 흔들린다면 정부가 지원해야 되나. 정부의 지원금이 삼성생명으로만 가고 다른 제조업으로 흘러가지 않을 보장이 있나. 미국처럼 금융감독이 발달한 나라에서도 지금 AIG에 세 번째 공적자금을 넣고 있다. 금융기관을 감독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데 금융기관이 산업자본과 얽혀 있다면 더 실상을 파악하기 어렵다. 미국이 금산분리 원칙에 있어선 우리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는 게 바로 이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조금이라도 배우는 게 있다면 금산분리를 섣불리 흔들어서는 큰일 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프레시안

이번 미국 금융위기 사태에서도 결과적으로 '대마불사' 현상을 보였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에는 손 놓고 있던 미국 정부가 AIG에는 신속하게 공적자금을 투입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리먼 브라더스가 덩치가 좀더 컸다면 정부가 수수방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오는 이유도 정부의 일관성 없는 구제책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전 교수는 지금 논의돼야할 지점은 금산분리 완화가 아니라 이미 보험사, 증권사 등 재벌과 한몸이 된 금융기관과 재벌의 분리 문제라고 지적했다.

"AIG 사태에서 보여지듯이 금융기관이 너무 크면 망하게 할 수 없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삼성생명은 망하게 놔둘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크다. 따라서 오히려 감독을 강화하고 삼성그룹으로부터 삼성생명을 떼어내야 한다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정부가 금융위기 상황과는 상관없이 예정대로 내년 2월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힌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도 마찬가지다. 자통법은 은행과 보험을 제외한 증권사, 자산운용사, 선물회사, 종금회사, 신탁회사 등 자본시장 관련업을 하나의 업종으로 통합해 미국의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와 같은 대형 투자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제도다. 미국 금융위기에서 증명된 것처럼 금융회사의 건전성이나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규제를 완화할 경우 금융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자통법이 시행되면 다양한 상품이 개발됨에 따라 금융소비자들에게 더 유리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전 교수는 "투자자들의 피해가 늘어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지금도 펀드 판매와 관련해 불완전 판매 얘기가 많이 나온다. 미국이 파생금융상품에 녹아난 가장 큰 이유가 그 실상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를 섞어놓은 복잡한 금융상품들이 개발된다는 것이 금융소비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개별 소비자들이 이런 금융상품의 구조를 다 파악하기도 힘들고, 금융회사 직원들이 '이거 좋은 것입니다' 권유하면 멋모르고 가입해 피해를 볼 게 불보듯 뻔하다. 개미들만 더 골병들 가능성이 높다."

전 교수는 특히 자통법의 쟁점 중 하나인 증권사의 지급결제기능 허용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리먼 브라더스가 만약 지급결제기능을 갖고 있었다면 정부가 파산을 시키지 못하고 그 부실을 떠안았을 것이다. 따라서 증권사에 지급결제기능을 준다는 얘기는 증권사를 파산위험으로부터 무조건 보호하는 보호막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급결제기능을 가진 증권사를 파산시킨다면 엄청난 혼란을 감수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자통법을 통해 증권사에 지급결제기능을 허용하는 것만이 아니라 4일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표해 보험사에도 지급결제기능을 주겠다고 하고 있다. 이런 정부 방침은 금융업계 내부에서도 반발이 나오고 있다.

은행연합회는 4일 성명을 통해 "보험업의 속성상 은행에 비해 고수익을 추구하므로 은행보다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보험사가 지급결제 시스템에 직접 참여할 경우 지급결제 리스크가 크게 상승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미국 AIG 사태를 들어 "만일 AIG가 직접 지급결제시스템에 참여하고 있었다면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해 금융시장의 지급결제가 마비될 뻔했다"고 주장했다. 은행연합회는 또 이런 위험성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보험사가 지급결제 기능을 허용한 사례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를 통해 확인된 또 하나의 사실은 금융기관 파산이 국민 경제에 미치는 엄청난 파급력이다. 전 교수는 이런 측면에서라도 이명박 정부는 '리먼 사태의 교훈'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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