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여성 두 명이 잇따라 자살했습니다. 지난달 31일엔 30대 여성이, 지난 1일엔 20대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모두 서울 장안동 성매매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었습니다.
눈길을 끈 대목이 있습니다. 20대 여성이 스스로 목을 맨 장소였습니다. 안마시술소였습니다. 그곳의 욕조에서 목을 맸습니다. 종이티슈 상자에 "(경찰이) 좀 기다려주지 왜 이렇게 단속을 서두르냐"는 글을 써놓고 세상을 등졌습니다.
경찰이 대대적인 단속을 하고 있는데도, 석 달 넘게 '성전(性戰)'을 벌이고 있는데도 그 전쟁터 한복판에 성매매 여성이 남아 있었습니다. 안마시술소 안에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닙니다. 경찰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성매매 업소 61곳 가운데 35곳이 관할세무서에 폐업신고를 했고 3곳이 휴업신고를 했습니다. 거꾸로 보면 아직도 일부 업소는 성매매 영업을 계속 하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경찰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석 달 넘게 '성전'을 벌이고도 왜 여태 뿌리 뽑지 못했냐고 힐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안마시술소는 현행법상 자유업종으로 등록됩니다. 따라서 안마시술소 자체를, 안마 영업 자체를 불법화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됩니다. 그러면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이 무너집니다.
경찰이 단속할 수 있는 것은 안마시술소에서 안마를 빙자해 성매매를 하는 행위입니다. 성매매 행위가 이뤄지는 현장을, 성매매가 이뤄진 증거를 포착하지 않고서는 처벌을 할 수 없습니다. 십분까지는 아니더라도 반분 정도는 경찰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전'이 지구전이 될 수밖에 없음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궁금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궁금합니다.
'성전'이 계속된 지난 몇 달 동안 성매매 여성들은 어떻게 지내왔을까요? 앞으로는 또 어떻게 지낼까요? 두 명의 성매매 여성 자살은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걸까요?
단면을 보여주는 수치가 있습니다. 서울 동대문경찰서가 '성전'을 시작한 후 입건된 사람들 숫자입니다. 10월 말 기준으로 업주가 22명, 성매매 여성이 113명입니다. 업주보다 성매매 여성이 더 많습니다. 형사처벌 대상자 가운데 압도적 다수가 성매매 여성입니다.
금방 말이 튀어나옵니다. 업주가 성매매 여성을 고용하지 않느냐고, 그런데도 어떻게 몸통보다 깃털을 더 많이 입건했느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옵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습니다.
한 업주가 고용하는 성매매 여성은 적게는 십수명, 많게는 수십명에 이릅니다. 이 점을 기준 삼으면 입건된 성매매 여성이 업주보다 다섯 배 많은 건 정상적인 수치일지 모릅니다.
입건조치도 뭐라 할 수 없습니다. 성매매특별법이 성매매 피해여성에 면책특권을 부여하고 있지만 그 대상이 제한됩니다. '업주 등 타인으로부터 폭력이나 협박 등 모든 형태의 강요에 의해 성매매에 나섰을 경우'로 한정됩니다. '모든 형태의 강요'에 선불금 족쇄가 해당되는지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경찰은 그렇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성매매 여성은 단속 대상이고 처벌 대상입니다. 경찰이 그렇게 보고 그렇게 조치하고 있습니다.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법이 그렇다고 하면 일단 따라야겠지요. 하지만 상기할 게 있습니다. 법률이 처벌만 강제하는 게 아닙니다. 보호와 지원도 촉구합니다. 성매매특별법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성매매 피해자 및 성을 파는 행위를 한 자의 보호와 자립의 지원을 목적으로 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성매매특별법의 이런 제정 취지를 살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장안동에서 '성전'을 벌이는 경찰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리고 여성부의 위탁을 받아 성매매 여성 지원사업을 관장하는 행정관청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동대문구청에 물었습니다. '성전' 이후 성매매에서 탈출한 여성이 있는지, 그런 여성을 지원한 사례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없다고 했습니다. 아직까지 단 한 건도 없다고 했습니다. 동대문구청이 관할하는 성매매 여성 보호시설이 두 곳 있지만 그곳에 '성전'을 계기로 입소한 성매매 여성은 한 명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행정관청의 무신경'을 질타할 법도 하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사정이 그렇게 녹록치 않습니다.
동대문구청이 경찰에 홍보안내책자도 보내고 협조요청공문도 띄웠습니다. 성매매 여성이 안마시술소에서 벗어나 자활·자립을 할 수 있도록 수사과정에서 세심히 유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성매매 여성 지원단체와 보호시설 관계자 등과 대책회의를 갖기도 했습니다. 경찰서에 상담원을 상주시켜 성매매 여성들의 상담을 전담케 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부적절하다'로 내려졌습니다. 성매매 여성이 경찰서로 끌려올 때 통상 업주 또는 '마담'과 함께 오는데 어떤 성매매 여성이 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상담을 받으려 하겠느냐는 문제의식 때문이었습니다. 강제연행에 따라 흥분상태에 빠진 성매매 여성을 상대로 섣불리 상담을 시도하다가 반발만 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시간을 두고 성매매 여성이 제 발로 찾아오게 하는 게 가장 유효한 방법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이해 못할 결정이 아닙니다. 성매매 여성은 미성년자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제적 방법을 동원해 성매매 현장에서 떼어낼 수 없습니다. 더구나 성매매 여성 지원의 궁극적 목표가 자활과 자립이란 점을 감안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매매 여성들의 자발적 의지입니다.
결국 시선은 경찰에 맞춰질 수밖에 없습니다.
입건해야 압박하고, 압박해야 자백을 끌어내고, 자백을 끌어내야 업주를 옭아맬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수사기법의 문제 때문에 일단 입건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세심하게 그리고 소상하게 정부의 지원정책을 설명하고 자활의 길을 안내하는 상담기법도 동원해야 합니다.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게 성매매 여성이 지원기관과 단체를 찾아가도록 길을 닦아야 합니다.
경찰은 이렇게 하고 있을까요? 열 명의 업주를 놓치더라도 한 명의 성매매 여성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요? 성매매특별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요?
두 명의 성매매 여성 자살 소식을 접하면서 경찰에 묻고 싶은 게 바로 이것입니다.
ps. 경찰의 대답을 듣고 싶었지만 듣지 못했습니다. 동대문경찰서에서 언론창구 역할을 하는 모 과장은 휴가를 떠났습니다. 부하 직원들은 이 과장이 휴가에서 돌아와 지시를 내려와 답변을 해줄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 이 글은 뉴스블로그 '미디어토씨(www.mediatossi.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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