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 전 의원의 정치활동재개 논란이 한창이다. 좀 이르다 싶은 이 시점에 그의 정치재개가 논의될 만큼 여권의 위기가 깊다는 뜻일까?
낙선 후 홀연히 미국으로 떠날 때도 무성한 뒷말을 남긴 그였지만 정치재개를 앞두고 벌써부터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는 걸 보면서 그의 정치재개가 또 다른 형극의 길이 될 것 같은 막연한 짐작에 마음이 편치 않다. 정치재개를 권하는 측근에게 "공항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욕먹기 시작할 텐데 개인적으로 유쾌한 일은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하니 그도 정치재개가 험난한 길이 될 것임을 예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어쩌랴,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길이라면 그것도 그의 숙명인 것을.
창업과 수성을 구분하는 논리가 기업경영 관점에서는 얼마나 유용한지 모르겠으나 정치적 관점에서는 종종 무책임하고 몰역사적인 공격논리로 악용되어 왔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정치에서 창업이란 지도자의 가치와 비전을 대중으로부터 승인받는 과정이다. 따라서 대중이 허용한 일정 기간 동안 대중이 선택한 가치와 비전을 힘써 구현하는 이른바 수성의 과정 또한 창업의 정치적 역사적 연장선위에 확고히 서 있어야 마땅할 것이다. 창업과 수성은 다르다는 현학적 논리를 앞세워 창업한 사람들이 수성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작위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적어도 정치영역에 관한 한 현실적이지도 도덕적이지도 않다는 뜻이다.
창업 후 스스로 물러나 천수를 누린 장량의 지혜를 모든 사람들에게 기대할 수는 없다는 정치현실까지 감안한다면, 창업에 책임이 큰 사람들일수록 수성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공성진 최고위원의 말은 동서고금의 정치사를 통해 거듭 확인되어온 사실이다. 정도전과 함께 창업의 1등 공신이었던 이방원을 "어설프게" 수성에서 배제하려 했던 것이 두 차례의 왕자의 난과 정도전의 암살이라는 비극으로 귀결된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하겠다. 그러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방원이 먼저 죽임을 당했으리라.
창업해 놓고 수성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밖에서 구경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창업해 놓은 곳에 들어가 살얼음 밟듯 수성하는 것보다 백번 힘들고 갑갑한 일일 것이다. 창업자에 관계없이 수성을 위한 기술적 기능을 제공하는 잘 훈련된 관료집단의 존재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관료들에게 영혼이 없다고 시비할 일이 아니다. 한 정권의 영혼을 살아있게 만들고 열정과 의기로 충천하게 만드는 것은 온전히 창업자들의 몫이라는 말이다.
정권 출범 초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사들이 대거 정치권에 진출하는 모습을 보면서 "거미 알 흩어지듯 화려한 비상을 한다"고 표현한 바 있다. 그 6개월 후의 모습은 흩어진 거미들의 귀환이 아니라 심한 내상을 입은 채 은거한 이재오 전 의원의 "징발"이다. 창업자들이 수성의 과제를 방치한 결과다.
이재오 전 의원의 정치재개에 대한 평가는 우선은 그가 어떤 시점을 선택할 것인지, 어떤 자리로 복귀할 것인지, 복귀과정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더 나아가 복귀와 동시에 발생할 정치유동성, 예컨대, 박근혜 의원 측과의 갈등재연, 야권의 정치공세, 국민들의 비판여론 등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보면서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평가의 궁극적 준거는 그가 초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대의명분에 끝까지 충실한가라는 점으로 모아지게 될 것이다.
이재오는 "왜 2007년 시점에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했는지"를, "이명박 정부가 '지금 여기에서' 감당해야 할 책임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주장'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의 '주장'이 시대의 흐름을 올바르게 반영하고 있는지와는 별도로, 그는 해설이 아니라 주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자신의 주장대로 정권을 이끌어 갈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한명이다. 그의 주장의 올바름과는 별도로 그가 자신의 주장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권한을 갖고 책임 있게' 행동하는 것 자체는 정당하다는 뜻이다.
부재기위 불모기정(不在其位 不謨其政 · 그 직위에 있지 않거든 그 자리의 정사를 논하지 말라), 이재오 전 의원이 던진 이 화두를 과연 뉘라서 책임 있게 받을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의 선택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