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시대를 맞아 교과서란 교과서엔 전부 칼날이 겨눠질 모양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대대적으로 수정 권고하자마자, 보수 진영이 이번에는 경제 교과서를 문제 삼고 나섰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일 "현재 사용되는 경제 교과서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평가절하하고 정부 역할을 과대평가하는 오류가 빈번하다"며 문제제기했다. 지난 3월 대한상의가 처음으로 '좌편향 역사 교과서' 얘기를 들고 나오며 결국 대대적인 수정이라는 결론으로 종결된 데 이어 또 시작되는 교과서 논란이다.
전경련 "시장 경제가 어떤 대안보다 우월함을 가르쳐야"
전경련은 이날 '경제인식 제고를 위한 학교 경제교육 개선 방안' 보고서를 통해 "경제 교과서가 현실 시장경제에 대한 객관적 설명보다는 주관적 평가와 가치관에 기초한 사고 형성을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은 "시장과 기업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제고하는 방향으로 경제 교과서의 내용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정 요구인 셈이다.
전경련은 "시장은 불완전하고 실패도 발생할 수 있으나, 다른 어떤 대안보다 성장, 부(富), 자원 배분 문제를 더 효율적으로 해결하고 평등도 더 잘 달성한다는 점을 설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장경제가 여러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라고 가르쳐야 한다는 얘기다.
전경련은 이어 "경쟁은 자원의 효율적 배분 및 각 경제주체의 합리적 행동을 유도하며, 기업은 본연의 목적인 이윤 추구를 통해 일자리 창출 등 사회적 기여를 한다"는 내용이 보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경영계가 먼저 목소리를 높이고 정부가 이를 '마지못해' 수용하는 모양새로 교과서에 손을 댄 '역사 교과서 논란' 과정과 첫 단추가 흡사하다.
'좌편향 역사 교과서' 수정 권고에 집필진 '공동 대응'
교과부는 앞서 지난달 30일 약 6개월간의 논란 끝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6종 가운데 55곳에 강제로 '수정 권고'를 내리고 102곳에 발행사가 자율적으로 수정·보완할 것을 지시했다. "집필진이 자율적으로 고쳐라"는 것이지만 사실상 정부의 입맛에 맞게 교과서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
교과부가 수정 권고한 부분은 △8·15 광복과 연합군의 승리를 부정적으로 기술한 내용 △미·소 군정을 서로 성격이 다른 사료를 비교한 부분 △분단의 한 책임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있다고 기술한 내용 등이다.
또 교과부는 △이승만 정부의 정통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부분과 △남북관계를 평화 통일이라는 기준으로 서술한 부분 등에 대해서도 집필진에게 자율적으로 수정을 권고했다.
교과부는 "대한민국 헌법 정신에 입각한 대한민국의 정통성 저해 여부와 내용이 고교 학생 수준에 적합한지 여부를 수정 권고의 기준으로 삼았다"고 설명했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교과부가 협의를 거쳤다고 밝힌 '역사교과전문가협의회'가 구성조차 어려움을 겪었고, 10여 일만에 수정 작업을 완료해 사실상 학계와 교육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려웠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특히 다양한 교과서를 인정하기 위해 도입한 검인정제도의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정 교과서도 아닌데 정부가 교과서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끝내 역사 교과서 집필진은 "애초부터 교과서 좌편향 논란이 실제와 다르게 부풀려졌기 때문에 수정안에는 알맹이가 없다"며 공동 대응 의사를 밝히고 있다. 두산출판사를 제외한 5개의 출판사 집필진이 교과부의 수정 권고에 공동으로 맞서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역사 교과서 수정 논란이 여전히 뜨거운 시점에서 전경련이 또 경제 교과서 문제를 들고 나섬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교과서 길들이기 논란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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