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체결된 한국과 미국의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왑 협정 덕에 31일 주식시장이 이틀째 올랐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은 다시 37.00원 올랐다. 전날 통화스왑 체결 소식에 크게 떨어진 나머지 낙폭과대 심리가 작용하면서 반등이 이뤄졌다고 보여진다. 어쨌든 통화스왑 체결 덕에 이틀간 금융시장이 다소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 31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9월 생산과 소비 증가율이 IMF 이후 최악의 상황을 기록하는 등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옮아와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계 은행인 UBS가 이날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을 당초 2.9%에서 1.1%로 대폭 하향 조정한 것도 이런 사정을 저변에 깔고 있다고 보여진다.
다시 금융 쪽만으로 한정해 놓고 봐도 그렇다. 이명박 정부가 밝혀온 외환보유고 2400억 불에, 통화스왑 협정을 통해 확보한 300억 불, 또 IMF가 신흥국에게 지원하기로 한 통화스왑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220억 불을 모두 더해도 헤지펀드가 마음 먹고 달려든다면 역부족이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이날 논평을 발표해 "외환시장이나 주식시장을 공격해서 무자비한 수익을 올리는 외국계 투기자본, 그중에 헤지펀드의 규모만 보더라도 2008년 9월 기준으로 약 8000개가 있고, 운용자금은 약 1조8000억 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헤지펀드가 최근 미국 월가의 은행에서 한국, 러시아, 브라질 등 신흥 국가들을 공격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앞서 <불룸버그> 통신의 아시아 경제전문 칼럼니스트인 월리엄 페섹은 "월가의 은행들에 대한 공격을 마무리한 헤지펀드와 투기세력들은 아이슬란드를 수중에 넣고 한국을 다음 목표의 맨 앞에 올려놓고 있다"면서 "베어스턴스(지난 3월 파산한 미국계 투자은행) 유령이 한국경제를 엄습하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한국이 왜 헤지펀드의 공격 목표가 될 확률이 높은가? 은행들의 과도한 단기외채, 건설사들의 부실 위험, 부동산 거품 붕괴 등 위험 요소가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덩치 키우기' 경쟁에 몰입하던 은행들은 무리하게 단기 외채를 많이 들여왔고, 주식시장에도 외국인 비중이 높아 2008년 6월 기준으로 총 외채 4197억 달러, 단기외채 1756억 달러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페섹도 "한국의 은행들은 1997년 외환위기 때 범했던 실수를 반복했다"며 은행들의 과도한 단기외채를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페섹은 또 줄도산 위기에 처한 건설사들도 외국인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성장'에 대한 신념은 투철하지만 위기 대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제팀도 한국이 안고 있는 위험 요인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회수해가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연기금을 동원해 주식시장을 방어하는 더 좋은 조건을 만들어주는 일까지 하고 있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이런 조건이 주가하락과 환율폭등 악순환의 원인이며 헤지펀드의 공격 대상으로 충분한 조건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따라서 금융위기의 진정한 대처방안은 미국과의 통화 스왑 계약에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외환보유고 부족 사태를 키워왔던 원인을 제거하려는 노력은 없이 통화스왑이라는 단기적 보완책만으로는 사태해결이 안된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문제는 정부의 금융시장 규제가 부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헤지펀드의 공격으로 이미 쓰러진 미국의 월가에서조차 새로운 금융 규제에 대한 논의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만 유독 '나홀로 규제완화'를 주장하는 것은 자칫 헤지펀드에서 쉬운 '놀이터'를 하나 제공하는 셈이 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렇지만 이명박 정부는 통화스왑 체결 이후 잠시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자 자신있게 '금융 규제 완화'를 들고 나왔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31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미 재계회의 기조연설에서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규제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며 "진입장벽을 낮추고 시장의 경쟁을 저해하는 규칙이나 규제를 제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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