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의 통화스와프로 금융위기의 고비를 넘겼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첩첩산중이다. 금융 다음은 실물경제다. 아직 몸도 풀지 않은 실물경제 위축이 본격화하면 민생이 파탄 나고 민심이 흉흉해진다.
막아야 한다. 최악의 상황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그러려면 유인해야 한다. 투자를 유인해 고용을 늘리고 경제지표의 낙폭을 줄여야 한다. 당장 전경련이 5조원 신규투자가 가능하다고 화답하지 않았는가. '선 지방발전-후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을 하루아침에 뒤집는 이유가 이것이다.
모른다고 볼 수 없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정부가 모른다고 볼 수 없다. 그건 상식이다.
이완구 충남지사가 말했다. "정부 조치는 국민통합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경고가 현실이 될 가능성은 농후하다. 실물경제 위축이 지방에 더 큰 충격파를 미친다는 건 공지의 사실이다. 이런 엄연한 현실 앞에서 지방으로 갈 투자요인을 막아버렸으니 지방 경제가 어떻게 되겠는가. 지역 민심은 또 어떻게 되겠는가. 물어볼 필요가 없다.
정부와 여당에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줄 수 있다. 정부·여당의 지역적 기반은 약회되는 반면에 이회창·박근혜의 정치적 입지는 강화될 공산이 크다.
박근혜 전 대표는 4.·9총선 후 대구 지역경제 발전에 골몰하고 있다. 직접 대구를 찾아 지역경제 활성화 토론을 갖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표의 이런 행보가 정부의 수도권 규제 완화와 극명하게 대비되면 영남이 쏠린다. 박근혜 전 대표쪽으로 더 기울어진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누릴 반사이익은 더 크다. 수도권 규제 완화에 직격탄을 맞는 곳이 충청권이란 점을 감안하면 그렇다. 정부의 수도권 규제 완화책이 발표되기 몇 달 전부터 '충청홀대론'이 나왔던 점을 상기하면 그렇다. 충청 민심이 사나워질수록 이회창 총재의 입지는 넓어진다. 대전·충남에 국한돼 있는 '지배력'을 충북으로까지 확장하면서 '제2의 김종필'의 위상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러면 이명박 대통령과 이명박계가 곤란한 상황에 봉착한다. 한나라당 안에서는 '박근혜 벽'에 막히고 한나라당 밖에서는 '이회창 도랑'에 빠진다.
먼 훗날의 얘기가 아니다. 얼마 남지 않았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후 맥을 놓았던 열린우리당의 모습을 재연할 수 있다.
수도권을 석권할지 모르니까, 그리고 박근혜계가 딴 살림 차릴 게 아니니까 '기본'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수도권 규제 완화는 '응급책'이다. 당장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투여하는 진통제 같은 것이다. 실물경제 낙폭이 크게 나타난다면 수도권 규제 완화는 '언 발에 오줌누기'에 그치게 되고, 수도권 표심의 감흥은 사그러진다.
박근혜계와의 동거도 그렇다.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박근혜 전 대표의 영남 장악력이 확고해진다면, 그래서 당내 발언권이 세진다면 꼭 그만큼을 양보해야 한다. 권력의 반을 박근혜 전 대표에 내주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게 해서 박근혜 전 대표와 박근혜계의 협조를 얻기만 한다면 그래도 다행이다. 정반대로 박근혜 전 대표가 대선을 위해 몸풀기를 시작하고,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과 차별화 수순에 돌입하면 그마저도 기대할 수 없게 되고 한나라당의 내홍은 구조화한다.
모를 리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명박계가 이같은 이치를 모를 리 없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우려한다. 어제 발표된 수도권 규제 완화에 못잖은, 아니 그보다 더 큰 부작용을 우려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이명박계가 정치적 빈사상태에 빠지기 전에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지방선거 전에 지방을 달랠 수 있는 '당근'을 꺼낼 것이라고 예상하는 게 상식적이다.
그 '당근'이 뭘까? 이미 발표된 공기업 지방 이전이나 이미 확정된 지방 발전계획은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따라 '약발'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럼 뭘까? 별도로 내놔야 하는 '당근'이 뭘까?
힌트가 있다. 김태호 경남지사의 말이다. 그가 그랬다. 정부가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하자 "남해안의 각종 규제를 먼저 풀라"고 요구했다.
이 힌트에 기대면 답이 보인다. 역시 규제 완화다. 수도권과 같은 수준에서 지방 규제를 푸는 것이다. 환경을 위해 또는 농업발전을 위해 조여놨던 지방 규제를 푸는 것이다.
이러면 난개발이 성행한다. 제한된 지역에서가 아니라 전 국토에서 마구잡이로 난개발이 이뤄지게 된다.
방방곡곡이 삽질로 몸살을 앓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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