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는 이 같은 결론을 내리며 "집시법에 따라 신고되지 않은 집회라 할지라도 경찰이 이를 해산함에 있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이 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또 최루탄 대신 경찰이 '애용'하는 살수차와 소화기 사용에 대해서도 제동을 걸었다. 인권위는 이날 인권위원 11명 전원이 참여한 가운데 6시간 동안 마라톤 심의 끝에 이 같은 최종 입장을 정리했다.
이에 따라 유모차 부대에 대한 수사 및 '촛불자동차연합' 회원 25명의 운전면허를 취소하는 등 전 방위적인 '촛불 복수'에 나서고 있는 경찰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릴지 주목된다.
"불법 시위 해산할 때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 있다"
인권위는 불법 집회에 대한 강제 해산, 폭력 시위자의 연행 및 체포 등의 경찰의 권한을 행사할 때도 최소한의 원칙이 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가 언급한 최소한의 원칙은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안전을 우선으로 방어 위주의 경비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화기와 살수차 사용에 대한 제동은 그런 맥락에 있다. 인권위는 시위대에게 소화기를 분사하는 행위와 관련해 "연막 효과를 발생시켜 경찰의 폭행을 은폐할 수 있다"며 "소화용으로만 사용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또 살수차 사용에 대해서 "인체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요소인 최고 압력이나 최근 거리 등 구체적 기준에 대해 부령 이상의 법적 규정을 마련할 것을 경찰청장에게 권고한다"고 밝혔다.
그밖에도 경찰이 집시법 위반으로 연행된 이들에게 반성문 형식의 자술서 작성을 강요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전·의경의 근무복에 명찰 등을 부착할 것도 권고했다.
특히 인권위는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국민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많다"며 집시법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인권위는 "현재 야간집회의 금지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진행 중이지만 인권위가 의견서를 제출할지 여부를 앞으로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국제엠네스티 이은 인권위의 '경고'에 어청수 "선진국 사례를 봐라"
인권위의 이날 결론은 진보·보수 단체 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팽팽하게 맞서 왔던 촛불 집회 논란에 한 획을 긋는 일이었다.
진보 진영은 공권력이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억눌렀다고 주장해 왔고, 반면 보수 진영은 정당한 공무집행이라며 오히려 더 강경하게 대처하지 못한 공권력을 비난해 왔다. 인권위에 제기된 촛불 시위 관련 진정이 100여 건이 넘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인권위는 지난 7월 11일부터 조사와 토론 등을 벌이며 오랜 고심 끝에 발표한 최종 심의 결과에서 시위대의 손을 들어줬다. 이는 얼마 전 "촛불 집회 과정에서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발표한 국제앰네스티의 결론과도 일치한다.
하지만 정부는 국제앰네스티의 조사 결과에도 반박 성명을 내며 강하게 반발했던 만큼 인권위의 이 같은 권고를 받아들일 가능성을 그리 크지 않다. 당장 경찰은 불만을 토로했다. 인권위 권고가 강제성이 없는 만큼 "수용할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낼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어청수 청장은 이날 인권위가 이 같은 결론을 내릴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진 뒤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불법행위에 대한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 대처" 입장을 재차 강조하며 "외국 선진국 사례는 비교 안 하면서 자꾸 왜 그러는지…"라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잇따른 '경고'를 경찰이 또 다시 외면할지 여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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