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코스피지수는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대폭락하며 1000선마저 하향 이탈해버렸다. 코스닥지수는 280선마저 내주며 사상 최저가를 연일 다시 쓰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이제 1500원선을 눈 앞에 두고 있다. 한국은행의 금리인하에 유일하게 반응하던 국고채 금리도 결국 상승추세로 돌아섰다.
코스피 3년 만에 세자릿수 진입…우량주도 줄줄이 하한가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무려 110.96포인트(10.57%) 하락해 938.75로 거래를 마감했다. 이는 지난 2005년 5월 18일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등락율은 역대 세 번째로 컸다. 주가연계증권(ELS) 등 파생부문이 프로그램 매물을 내놓지도 않았음에도 심리 공황으로 거래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며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낙폭을 키웠다.
마치 극적인 반전영화를 보는 듯했다. 지난해 10월 2000선을 넘어서며 '새 시대가 열렸다'고 모두가 환호하던 코스피였다. 그달 31일에는 2064.85까지 올랐다. 하지만 단 1년 만에 다시 세자릿수로 밀려나며 반토막 나버렸다. 이 사이에 시가총액은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쳐 1129조9000억 원에서 550조 원대로 뚝 떨어져버렸다. 약 570조 원이 불과 1년 사이에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 셈이다.
폭락세가 너무 강해져 10% 이상 하락한 상태가 지속되자 코스피200선물과 코스피 모든 종목의 거래를 중단시키는 서킷브레이커가 이틀 연속 발동될 뻔했다. 하지만 장 마감 40분을 남겨놓은 시점에서는 발동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실제 발동되지는 않았다.
반면 코스닥에서는 이날 오후 1시 15분 하루 만에 또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그럼에도 이날 코스닥지수는 전날보다 32.27포인트(10.45%) 하락한 276.68로 마감, 300선을 힘 없이 내주며 사상 최저 기록을 다시 세웠다.
투자심리가 완전히 시장을 떠났다. 외국인은 2791억 원을 순매도해 증시 이탈을 이어갔다. 오전 내내 순매수 기조를 보이던 개인도 결국 장 막판 하락추세를 견디지 못하고 매도우위로 전환, 788억 원을 순매도했다.
반면 외국인과 보조를 맞추던 기관은 오후 들어 장이 급격하게 빠지자 매수우위로 반전했다. 연기금이 증시를 떠받치기 위해 대거 투입됐기 때문이다. 이날 연기금은 무려 3500억 원이 넘게 주식을 사들였고 이 때문에 기관은 3499억 원 순매수로 장을 마감했다.
구성종목을 가리지 않고 대부분 하락했다. 이날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3분기 실적을 기록한 삼성전자 주가는 40만7500원에 마감, 이제 30만 원대로 내려앉을 지경에 처했다.
이날 코스피200 구성종목 중 상승한 종목은 단 네 종목에 불과하다. 보합권으로 버틴 종목도 다섯 종목에 그쳤다. 나머지 191종목이 모두 하락했다. 두산, 대림산업, 일동제약, 하이닉스, 현대건설, 한화, 동부하이텍 등 숱한 우량주들이 모조리 하한가로 곤두박질쳤다.
이날 하한가로 밀려난 종목은 코스피 401개, 코스닥 547개로 총 948종목에 달한다. 이는 코스피 시장 983개 종목 중 41%, 코스닥 1018 종목의 53%에 달한다. 하한가로만 안 밀려나도 성공인 장세였다.
주식시장뿐만 아니라 환율도 몸살을 앓았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4.00원(0.99%) 오른 1422.0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그나마 장 막판 당국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매수세가 유입된 덕에 상승폭을 줄인 것이다.
하지만 금리는 불안정한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조치가 전혀 시장에 먹혀들지 않는 모습이다. CD금리 등은 물론이고 한동안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하락 움직임을 보였던 국고채 금리마저 일제히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날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날보다 0.02%포인트 올라 4.86%를 기록했다. CD금리 91일물은 6.17%까지 올랐고 콜금리도 5%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BBB-등급 회사채 금리는 무려 0.06%포인트 올라 11.23%를 기록했다.
금융부실→실물부실→금융부실 악순환 시작되나
정부가 시장의 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해 급한 불끄기에 나섰지만 아무런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건설종합대책만 수차례에 걸쳐 내놓고 은행채 매입, 다방면의 유동성 공급 등을 연달아 발표하고 있지만 약발은 단 하루도 가지 않는 게 현실이다.
넋이 나가버린 투자자들은 투자자금의 절반 이상 손실을 봤음에도 증권사에 묻어둔 돈을 회수해가고 있다. '지금이라도 나가야 한다'는 심리가 손실 실현을 이끄는 셈이다. 증권투자사이트 팍스넷 등 관련 사이트에는 '살아남으려면 지금이라도 손발을 잘라라'는 투의 글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의 심리가 극도로 불안해진 셈이다. 한 증권사 강남지점 관계자는 "이제는 증권사를 탓하지도 않는다. 전화를 통해 '보유주식을 무조건 매도해 달라'는 주문만 하고 끊는다"라고 말했다.
개인투자자들의 동요가 극심한 이유 중 하나는 보유주식이 워낙 크게 떨어진 데다 상당수 투자자가 레버리지 효과를 노리고 빚을 끌어다 주식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국회 정무위 신학용 의원(민주당)이 이날 금융감독원에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달 기준으로 여신업체와 저축은행의 주식매입자금대출 금액은 각각 지난해 214억 원과 2961억 원에서 올해 952억 원, 3185억 원으로 급증했다. 특히 증권사의 신용공여는 지난해 말 32억 원에서 올해 무려 262억 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주가 급락으로 증거금이 부족해짐에 따라 이들 자금 중 일부는 곧바로 반대매매로 청산되고 있다. 증권사를 통한 반대매매는 올해 들어 총 2조5955억 원에 달하며 여신업체에서도 620억 원에 이른다.
문제는 지금의 사태가 앞으로 더 심각해질 가능성마저 제기된다는 데 있다. 실물 부문에서도 고장음이 들리기 때문이다.
당장 이날 한국은행은 경기전망이 당초 예상보다 부정적이라며 연간 경제성장률도 기존 전망(4.6%)보다 낮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3분기 국내총생산(GDP)에서 이미 한국경제의 성장세가 전문가들의 당초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둔화되고 있음이 입증됐다. 한은에 따르면 3분기 GDP는 전년에 비해 3.9% 성장하는 데 그쳐 지난 2005년 2분기(3.5%) 이후 가장 낮았다.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이미 마이너스 성장했다. 교역조건에 따른 실제 구매력을 보여주는 GDI는 3분기에 전분기 대비 3.0% 감소해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1998년 1분기(-8.7%) 이후 최악의 상황을 보였다. 국민의 지갑이 이미 얇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실적발표 시즌이 진행 중인 현재도 삼성전자 등 일부 기업을 제외하곤 기업 실적이 당초 예상보다 더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내 시장은 물론이고 해외시장 침체가 기업 실적으로 연결됐기 때문이다. 금융위기에 따른 전세계 경기불황이 실물을 공격하고, 이는 또 다시 금융불안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미 형성되고 있음을 입증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사실상 전망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단은 심리가 안정돼야 하고 해외부문에서 또렷한 반등 지표가 나와야만 미래를 얘기할 수 있는데 지금은 바닥권 형성도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저 '버텨라'는 말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는 게 증권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한국은행은 이날 또 다시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내놨다. 한은은 환매조건부증권(RP)을 2조 원 규모 매입해 시중에 긴급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RP 28일물 2조 원어치를 최조 5%에 사들여 시장에 단기자금을 풀겠다는 게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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