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주한미군기지 이전 사업에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사용하는 것을 사실상 용인했다는 사실이 23일 확인됐다. 이로써 방위비 분담금 전용 논란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방위비 분담금 1조1193억 원 적립"
국방부는 이날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현안 업무보고 자료'를 통해 "방위비 분담금(SMA)을 이전 대상 구(舊) 기지에 사용하는 것보다 신축하는 기지에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는데 (한미가) 공감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2000년 연합토지관리계획(LPP) 협상 초기부터 방위비 분담금의 연합토지관리계획 사용에 대해 한미가 공감했다"며 이같이 설명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이같은 '공감'에 대한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진 않았다.
또한 미국 측이 방위비 분담금을 1조1193억 원을 사용하지 않고 미국의 지역 은행에 예치했다는 사실도 이날 국정감사에서 밝혀졌다. '8000억원 이상'으로만 알려졌던 액수가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미국은 이 돈을 기지 이전에 쓰기 위해 모아 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 2007년 국회가 7차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을 비준하면서 미군기지 이전에 방위비 분담금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채택한 부대의견과도 배치되는 것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국방부, 문서도 없이 허무맹랑한 주장"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 및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등 시민단체들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방부는 이미 2000년에 한미 간의 공감이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문서화 되지 않은 단순한 당국자들 간의 의사 표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오히려 이후 개정된 LPP 협정에서는 이런 내용이 보고조차 되지 않은 채 국회에서 비준동의 됐다"며 "국방부의 주장은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는 허무맹랑한 주장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2004년 12월 국회에서 비준동의한 LPP 개정협정에는 '요구자 부담 원칙'에 따라 미국 측이 요구한 기지 이전에 대해서는 미국 측이 비용을 부담케 돼 있다. 이에 따라 당초 용산기지는 이전 비용을 우리 정부가, 미2사단 기지 이전은 미국 측이 부담키로 했었다.
비용 부담은 2008년 7월 기준으로 총 13조3000억 원이 들 것으로 추산되는데, 공식적인 미국 측 부담액은 7조5000억 원이다.
하지만 한미간의 '공감'대로라면 미국 측 부담금에는 한국 정부가 제공하는 방위비 분담금이 대거 포함되어 실제 한국 정부의 부담은 크게 늘어난다. 이는 시민단체들이 그간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온 것으로, 2005년 3월 리언 J. 라포트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은 미국이 기지 이전 비용의 6%만 부담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미군기지 이전 진통 계속
미국 측이 우리 정부의 동의를 받아 거액의 방위비 분담금을 기지 이전에 쏟아 부을 경우 방위비 분담금 추가 부담 요구를 해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물가인상과 환율 급등으로 인해 이전 비용 자체가 대폭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 이날 국방부는 미군 현역 및 군무원의 인건비를 제외한 주둔비용(NPSC)과 관련해 "미측은 주한미군 NPSC의 50% 수준까지 우리 측이 분담해주길 희망하고 있다"며 "현재 우리측의 평가 결과 47% 수준을 분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우리 정부는 미군의 방위비 분담금 세부항목에 대한 심사나 감사권이 없어, 미군이 어디에 돈을 쓰고 있는지 파악하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국방부는 이날 국회에 "현금 위주의 군사건설 지원을 현물위주 지원체제로 전환하고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보고했으나, 이정희 의원 등은 "방위비 분담금의 기지이전사업 전용에 대한 국회와 국민의 비판 여론을 피해 보려는 술책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이 의원 등은 "국방부가 국회와 국민을 바보로 아는 모양이지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유치한 행동에 속을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라며 "한미 양국 정부의 방위비 분담금 부당 전용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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