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속노동조합(이하 금속노조)은 지난 2월 18일부터 5월 2일까지 약 석 달간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등과 함께 조사팀을 구성해 산하 60개 사업장의 작업현장을 방문, '화학물질 취급 실태조사'를 벌였다. 대상 사업장은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STX조선, 동우기계 등 대기업 사업장과 중소 영세사업장 등이었다. 그 결과 이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노동자들은 사업장의 화학물질 위험으로부터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속노조는 "사업주들이 화학물질 안전 취급에 대한 법을 준수하지 않았고, 더구나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노동부는 적당히 사업주의 편을 들어 제대로 감독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금속노조는 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차별적으로 위법행위를 일삼는 사업주와 지도감독을 방기한 채 봐주기로 일관하는 노동부의 직무유기를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기자회견 후 노동부의 책임을 묻고자 감사원에 노동부를 고발했다.
"위험 화학물질에 대한 안전 교육은 전무…배기장치조차 없더라"
금속노조에 따르면 이들이 조사한 전국 60개 사업장에서 인체에 미치는 유해성이나 독성 정보에 대한 교육을 진행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또 사업주들은 용기에 위험물질 표시조차 제대로 부착하지 않았다. 이밖에도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화학물질이 취급되는 공간에 국소배기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아 독성 물질이 공기 중에 기화돼도 노동자들은 이를 그대로 마셔야만 했다.
금속노조는 "사업주들은 취급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노동자에게 제공하지 않았고, 위험 물질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지 않았다"며 "화학물질 노출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국소배기장치를 설치하고, 적정 제어풍속을 유지하고 있는 비율은 50% 미만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발암물질 취급부서임에도 국소배기장치 조차 설치하지 않은 경우가 다수 발견되는 등 60개 사업장 전체적으로 수백 건씩 무차별적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양산에 있는 LG전자부품 여성 노동자들이 솔벤트를 취급하다 집단 불임을 겪는 일이 일어나면서 1996년 제정된 것으로서 이를 위반했을 때에는 사안에 따라 300만 원 이하에서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위험물질에 대해 직원들을 교육해야 하고, 위험물질에 대해서는 별도로 표시해야 하며, 국소배기장치 설치하고, 그 장치가 적정 풍속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 등은 모두 이 법에 명시된 사업주의 의무다.
"노동부, 200여 곳 위법 사업장에 고작 벌금 9만 원 부과"
검찰과 노동부는 지난 6월 전국적으로 산재 취약 사업장에 대한 합동 점검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노동부는 취약 사업장의 환경을 개선하기 보다는 사업주에게 면죄부를 줬을 뿐이라는 것이 금속노조의 주장이다.
일례로,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인 이원공정의 경우 노동부는 "세척공정 주변에 안전보건표시를 붙이지 않았다"며 단 1건의 위반사항을 지적하고 9만 원의 과태료만 부과했다. 그러나 금속노조는 같은 공장에서 200여 건의 위법 사항을 발견했다.
금속노조가 "노동부의 직무유기"를 지적하고 나선 까닭이다.
금속노조는 "노동자는 쾌적한 환경에서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헌법에 보장돼 있는데, 이런 노동자의 권리는 사업주와 노동부의 책임 회피로 인해 짓밟혀 왔다"며 "화학물질을 노동자가 안전하게 취급·관리하기 위한 제도와 정책을 바로 세워가고자 지난 12년 동안 자행된 노동부 직무유기를 감사원에 고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고발대상자는 1996년부터 현재까지 노동 업무를 전반을 총괄한 전·현직 노동부 장관, 안전보건 업무를 총괄했던 노동부 전·현직 산업안전보건국장 등이다. 이들은 기자회견 후 고발장을 감사원에 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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