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대신 교수 자르는 수상한 학생회
최근 경기도 소재 A대학에서는 단과대학 학생회가 나서서 교수를 처벌해달라고 대학 측에 진정서를 낸 일이 있었다. 해당 교수가 신입생 교양 수업 시간에 '학교 비하 발언'을 했다는 것. 학교는 '특별감사위원회'를 구성해 해당 교수를 놓고 특별 감사를 진행 중이다. 대학 측은 "진정서를 접수했으니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속사정을 살펴보면 미심쩍은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해당 교수는 평소 재단, 대학 측으로부터 밉보였다는 게 익명을 요구한 여러 대학 관계자의 전언이다. 더구나 이 학생회는 전적이 있다. 2006년에도 학생의 민원으로 두 명의 교수가 해임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 물론 이 두 교수 모두 학교 측과 평소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다.
이런 정황을 짐작케 하는 증거도 있다. 이 진정서를 내는 데 앞장선 한 단과대학 학생회장이 인터넷 게시판에 해당 교수의 해임을 예고하는 글을 올린 것. 그는 한 게시판에 "저 XX 적어도 경고 1회(2회 받으면 잘림)이고 현재 총학생회와 저는 1학기 중으로 저 XX 잘라버리려고 벼르고 있다"며 "대학에 발 못 붙이게 할 테니 조금만 참아주라"는 글을 올렸다.
한편, 이런 흐름을 놓고 재학생, 졸업생은 강하게 대학, 학생회를 비판하고 있다. 지난 9월 1일 이 대학의 일부 졸업생은 성명을 내 "누가 보더라도 훈계로 들을 수밖에 없는 발언을 놓고 누구보다도 애정과 열정을 갖고 있는 해당 교수를 상대로 특별 감사까지 하겠다는 학교 당국의 처신을 강하게 비판한다"고 지적했다.
재학생도 대학, 학생회에 비판적이다. 해당 교수의 강의를 들었던 학생을 대상으로 한 무기명 설문조사에서 학생의 75%가 '해당 교수가 2학기에도 강의를 다시 맡아줄 것'을 요구했다. 이런 여론의 압박에 못 이겨 학생회는 슬그머니 진정서를 철회했지만 대학 측은 여전히 특별 감사를 진행 중이다.
"말 잘 들으면 해외 연수 보내주지"
학생회가 이렇게 앞장서서 재단, 학교와 한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학생회가 대학으로부터 제공받는 장학금, 해외 연수가 그 이유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실제로 이 대학에서 운영하는 해외 연수 프로그램 대상자 100명 중 학생회 간부가 40명을 차지한다. 이 학교 대학원을 다니는 정모(28) 씨는 "실제로 한두 해 전 일부 학생들이 학생회 간부에게 해외 연수 프로그램 수혜가 집중되는 걸 문제제기 했지만 크게 쟁점화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이를 놓고 대학 측은 "(장학금, 해외 연수 등의) 수혜를 받은 학생이 어느 정도 학교의 눈치를 볼 수도 있다"고 사실상 대학 측도 이런 보상을 미끼로 학생회, 학생을 장악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대학 측은 "대학이 학생한테 여러 가지 복지 혜택을 주는 게 문제될 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대학 측이 제공하는 무료 해외 연수 프로그램은 학교 측이 학생회를 장악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다. 지난 2005년 부산의 B대학도 대학, 학생회가 매번 무리 없이 등록금 인상 합의에 성공하는 것을 놓고 해외 연수 프로그램이 배경에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이 대학은 지난 2002년부터 '교수 및 학생 간부 해외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회 간부를 수천만 원의 예산을 들여 몇 년 째 공짜 해외 연수를 보내줬다.
상지대 학생회 "구 이사회가 교수 자리 보장했다"
한 해 1000만 원 가까이 하는 등록금도 중요한 당근이다. 서울 C대학의 단과대학 학생회 간부였던 김모(27) 씨는 "학생회 활동을 하면 기본적으로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기 때문에 이것을 빌미로 학교 측에서 압력을 받기도 한다"며 "특히 단과대는 운영 자금이 부족해 장학금을 모아 운영 자금으로 쓰기도 하기 때문에 장학금이 더 중요하다"고 증언했다.
지난해 D대학에서는 총학생회가 하계 간부 수련회비로 1억 원을 받고 등록금 인상에 합의해준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당시 교수협의회에서는 학교 운영비가 1000만 원만 넘어도 총장의 결재가 필요하다며 담당 교직원이 아닌 학교 측과의 연계를 조사해 달라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었다.
학교 측의 회유를 받은 총학생회가 사건 전말을 공개하면서 이와 같은 커넥션이 공개된 사례도 있다.
지난 7월 강원도 원주의 상지대에서는 신구 이사회 간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비리로 물러난 전 이사장 측이 총학생회를 매수해 복귀 지지 선언을 꾀한 사실이 드러났다. 전 이사장 측은 현 총학생회 간부에게 교수 보장, 금전 거래를 제의한 것으로 알려져 큰 충격을 줬다. 이 사건의 전말은 학생회 측이 관련 일지와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밝혀졌다.
지방 대학 학생회는 조폭의 놀이터?
이뿐만이 아니다. 총학생회가 학내 행사 사업자 선정, 졸업 앨범 업체와의 돈 거래를 통해 이익을 챙겨온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김 씨는 "학생회 전체회의에서 총학생회의 예산 심의가 있지만 기업 후원금 등은 예산안에 포함되지 않거나 일부만 포함돼 있어 내부에서도 기업과 총학생회의 거래 내용을 포착하기가 어렵다"고 증언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 지방 대학에서는 지역의 조직 폭력단이 학생회를 장악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선거 과정에서 금전, 인력 지원을 해주고 그것을 빌미로 학교 행사, 직원 채용, 자판기 운영권 등에 압력을 행사해온 것. 여기에는 일부 금품을 수수한 대학 직원까지 연계해 대학이 범죄의 온상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몰락하는 학생회, 대안이 없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온 데는 바로 학생의 무관심 탓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학생운동이 급격히 퇴조하면서 학생회가 공동화하자 무주공산이 된 학생회를 재단, 대학 심지어 조폭이 검증 안 된 일부 학생을 내세워 장악하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지방 대학은 물론 서울·경기 소재 대학까지 확산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갈수록 늘어나는 수상한 학생회, 대책은 없을까? 김 씨는 "198~90년대 학생운동이 학생회를 각 정파의 근거지로 활용하면서 정작 학생회는 학내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렸다"며 "앞으로 자치회 등 기존의 학생회와는 다른 새로운 틀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이런 학생회 문제는 계속 늘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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