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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노는 게 투쟁이 됐던, 참 이상한 시대에 대한 회고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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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노는 게 투쟁이 됐던, 참 이상한 시대에 대한 회고담

[뷰포인트] 영화 <고고70> 리뷰

영화 <고고70>은 유신헌법이 막 발표된 72년 말에서 시작한다. 최신 '양키 음악'을 가장 발빠르게 접할 수 있었던 미군부대 근처, 혹은 기지촌 동네에서 밴드를 하던 대구의 일군의 젊은이들이 '데블즈'라는 소울밴드를 결성하고 서울의 밤을 휘젓게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 눈으로 보기에는) 촌스러운 복장과 헤어스타일을 하고 70년대를 마냥 낭만적으로, 혹은 마냥 희화화해서 향수하고 있지만은 않다. 상규(조승우)가 이끄는 밴드 데블즈가 마침내 성공의 정점에 서는 과정이 영화의 한 축이라면, 그 영광이 유신헌법 시대 권력의 통제로 어떻게 망가지는가, 그로 인해 한국의 대중문화가 어떻게 뿌리까지 뽑히고 암흑을 맞게 되는가의 역사적 맥락을 다루는 것이 이 야심찬 영화가 진정 다루고자 하는 또 하나의 이야기축이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한 판 잘 놀아보는 게 심지어 '목숨 내놓는' 투쟁이 돼버리는" 참 이상하고 암울했던 시대에 대한 낭만적인, 그러나 뼈아픈 회고인 셈이다.
고고70
전면에 '음악영화'임을 내세우고 연주 장면이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는 영화답게, 이 영화는 '귀호강'이라 할 수밖에 없는 사운드를 들려주고, 그 사운드가 가진 파워와 에너지를 그대로 스크린에 그려낸다. 영화와 뮤지컬 양쪽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조승우는 말할 것도 없고, 실제 밴드 멤버(과거 '노브레인' 및 현재 '문샤이너'의 멤버인 차승우) 혹은 뮤지컬 배우(홍광호, 최민철 등 뮤지컬계의 스타들)를 영입해 만든 사운드는 배우들이 그저 입을 벙싯거리고 기타치는 흉내나 내는 립싱크 수준이 아니라 진짜 노래, 진짜 연주의 맛을 고스란히 전달해준다. 소위 '날라리 딴따라'가 갖고 있는 특유의 에너지와 파워가 영화에 고스란히 살아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가진 진정한 미덕은, 촌스러운 정치 과잉으로 흐르지 않고 오히려 정치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도 근간에 나온 한국영화들 중 '진정으로 정치적인' 영화라는 점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데블스'의 성공과 슬럼프와 해체의 과정은 우리가 '락밴드'라 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전개를 그대로 밟아나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 중 일부는 대단히 안이한 방식으로 어물쩍 넘어가고 있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특별한 빛을 부여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상처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들이 대체로 시대의 무게에 짓눌리며 지나치게 경직되거나 먹물 티를 내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명 '딴따라'의 시선을 견지하면서도, 여느 영화들이 쉽게 도달하지 못하는 지점에 가뿐히 도달한다. 보다 미시적인 차원, 즉 정치와 가장 거리가 멀 것 같은 일상과 놀이의 차원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억압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데에 성공하고 있는 동시에, 이를 놀이정신으로 위장한 먹물근성으로 우회하거나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딴따라의 놀이정신'으로 정면돌파를 해버리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옛 TV 화면에서 그저 우스꽝스러운 회고의 프레임 안에만 갇혀 있던 장발 단속과 같은 역사가, 이 영화 안에선 코미디의 요소로 쓰이면서도 보는 사람에게 새삼 '역사의 폭력성'을 효과적으로 환기시킨다. 중정에 끌려갔다 나온 밴드멤버들이 소위 '단정한 머리'로 그들 생애 최고의 공연을 하는 마지막 장면이 그토록 감동적인 것은, 지금의 미적 관점으론 분명 훨씬 세련된 그 짧은 머리가 영화 속에서는 그들이 당한 폭력과 억압을 그대로 드러내는 일종의 '상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늘 한번 제대로 놀아보자!"라고 상규가 외칠 때, 이 외침은 적어도 그들의 입장에서는 '죽도록 투쟁하자'는 구호가 그리 다를 바가 없는 실존적인 저항의 외침이 된다. 이 장면은 마치 성경에서 머리 잘리고 눈까지 뽑힌 삼손이 생애 마지막 괴력을 발휘하며 죽음으로 향하는 장면을 대할 때와 같은 장엄한 감동을 준다.
고고70
언론에 대한 '검열'을 위한 단계가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는 '포르노 규제'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사회 전반에 대한 억압은 '놀이문화 규제'에서 시작한다. 이유는 풍기문란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며 근검절약으로 조국 근대화를 달성하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라고 설파하던 근엄한 분들에게야 밤새 춤추고 노는 젊은 청춘들이 한심한 철딱서니로만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그걸 풍기문란이라며 금지했던 바로 그 분들이 술판에 젊은 여자가수를 불러들여 술시중과 밤시중을 들게 하는 아이러니, 혹은 머리를 기르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입영통지서를 찢어버리고 밤새 춤추며 놀고자 하는 욕망까지도 투쟁으로 만들어 버리는 폭력의 시대, 바로 그것이 70년대 억압과 금지의 시대의 본질이다. 이 영화는 그것을 놓치지 않는다. <고고 70>은 철저히 대중음악, 그것도 한국에서 한창 화사하게 꽃봉오리를 만들다 그대로 뿌리가 뽑혀버린 한국 록의 궤적을 통해, 그리고 '뽀대나게 음악하고 놀고 싶었던' 청춘들을 통해 일상을 억압하는 거대권력을 드러낸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뒤 약간의 씁쓸함을 느낀 사람들이 있다면, 그 중 일부는 어쩌면 영화 속 바로 그 시대에 그렇게 젊음을 불살랐던 청춘들이 이후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된 뒤 그런 억압을 스스로 자식세대에 고스란히 되풀이했다는 사실을 떠올려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청소년들의 두발자유화 운동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기 시작한 해는 불과 2000년이었다.) 그 흔적은 나와 내 조카뻘 되는 아이들의 몸에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이들일수록 더욱, 이 영화를 박제된 과거의 낭만적 추억담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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