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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냥이여, 이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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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냥이여, 이리여!"

[홍성태의 '세상 읽기'] '쌀 직불금' 파동을 보며

황금빛으로 벼가 익어가는 들판은 참으로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들판은 그 자체로 굉장한 '관광 상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본래의 논둑길이 남아 있는 들판은 더욱 더 훌륭한 '관광 상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멋진 자원을 지키기 위해, 한국전력이 멋대로 박아 놓은 전봇대를 뽑아 없애고, 한국농촌공사가 멋대로 강행하고 있는 농수로의 시멘트화를 막아야 한다. 황금빛 들판을 바라보노라면, 저 황금빛 들판이 피와 땀의 소산이라는 것을 나름대로 알면서도, '국민학교' 시절에 서숙자 선생님께 배운 정겨운 노래가 마음 속에 떠오른다.

논둑 밭둑 지나서 옥수수밭 지나서
오골길을 지나서 오막살이 초가집
박넝쿨이 엉켰네 조롱박이 달렸네


그러나 시커먼 승용차를 타고 황금빛 들판을 가로질러 시퍼런 골프장으로 '나이스 샷'을 외치러 가는 '강부자' 사장님들과 사모님들은 황금빛 들판을 보면서 "역시 투기는 농지가 제일이지"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강부자'를 인생의 참스승으로 모시며 어떻게든 그 안에 들어가고자 애쓰는 정치인들과 공직자들도 당연히 '강부자'를 따라서 '역시 투기는 농지가 제일이지'라고 마음 속으로 외칠 것이다.

그들에게 우리의 농업은 하루빨리 없어져야 할 사양산업이고, 300만 명을 넘는 농민은 국가 경쟁력의 적이므로 하루빨리 10만 명 정도로 줄어들어야 하고, 농촌과 농지는 사양 산업과 사양 인력의 터전일 뿐이니 하루빨리 공장과 모텔과 아파트와 골프장으로 개조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당연히 엄청나게 땅값이 오를 테니 하루빨리 자기들이 다 사 놓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식량은 우리의 생존에 직결된 가장 귀중한 자원이기 때문에 살농 정책은 자살 정책이나 같다. 이 때문에 '강부자'와 그 추종자들도 살농 정책을 무턱대고 강행할 수는 없다. 온갖 미사여구와 논리를 동원해서 살농 정책이 아니라 중농 정책을 펼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면서 농업을 죽이고 농민을 줄이고 농지를 빼앗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 시화호와 새만금으로 대표되는 간척 사업도 벌이고, 농협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그러나 간척 사업을 벌이는 이유는 사실 토건과 투기를 위해서이고, 농협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이유도 농협이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농업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농민은 갈수록 죽어나는데, 한국농촌공사는 농지를 내걸고 더욱 더 많은 간척 사업을 벌이고, 농협은 돈을 주체하지 못해서 늘 고임금과 부패의 추문에 휩싸여 있다.
▲ "'강부자'로 대표되는 투기의 달인들이야말로, 나쁜 의미에서, 승냥이요 이리가 아닌가?" ⓒ뉴시스

농민의 고통은 이미 너무나 크다. 소주 대신 농약을 마신다는 어어부밴드의 노랫말이 우리 농민에게는 결코 낯설지 않다. 이 와중에 '쌀 직불금'의 불법 수령 문제가 밝혀졌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더니, '쌀 직불금'의 불법 수령이야말로 그 짝이 아닌가?

이런 짓을 한 가장 큰 이유는 농지에 대한 투기를 은폐하기 위해서이니 하나의 잘못이 또 다른 잘못을 낳은 셈이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잘못은 잘못을 낳는다. 그 결과 농업이 망하고 나라가 망한다. 투기가 망국병이고 투기꾼이 '공공의 적'인 이유를 여기서도 잘 알 수 있다. 이 망국병과 '공공의 적'을 언제까지 좌시할 것인가?

조선은 상업과 공업을 육성하지 못해서 망했을 뿐만 아니라 농업과 농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서 망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내걸고는 정치인과 공직자들은 농민을 뜯어먹기에 급급했을 뿐이다. 200여 년 전에 다산 정약용은 '승냥이여, 이리여'라는 제목의 시에서 이렇게 탄식했다(<다산시선>, 송재소 역주, 창작과 비평, 1981).

(…)
우리의 논밭을 바라보아라
얼마나 크나큰 슬픔이더냐
(…)
우리의 논밭을 바라보아라
얼마나 크나큰 참상이더냐


'강부자'로 대표되는 투기의 달인들이 200여 년 전 다산의 탄식에 생생한 현실감을 부여하고 있지 않은가? '강부자'로 대표되는 투기의 달인들이야말로, 나쁜 의미에서, 승냥이요 이리가 아닌가? '직불금' 문제를 제기하는 소작인은 '왕따'를 당하거나 땅을 빼앗기고 말았다니, 승냥이와 이리의 행태가 정말 악랄하지 않은가?

농민의 살을 뜯어먹고 뼈를 발라먹은 승냥이와 이리는 호사의 극치를 누렸다. 앞에서 인용한 다산의 시는 이렇게 끝난다.

부모여, 사또여
고기 먹고 쌀밥 먹고
사랑방에 기생 두어
연꽃같이 곱구나


승냥이와 이리는 사랑방에 연꽃같이 고운 기생을 두고 "못난 놈들은 죽어야 돼, 못난 놈들을 돕다가는 나라가 망해"라고 외치며 가렴주구를 찬양했다. '강부자'로 대표되는 투기의 달인들도 똑같다. 그들에게 투기는 결코 죄가 아니며 오히려 능력의 표상이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등을 치고 누리는 불로소득이 능력의 표상일 수는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나라에서는 그렇다. '강부자'가 지배하는 나라에서 '쌀 직불금' 파동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더러운 문제인지 모른다.

이 더러운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권의 공방은 더욱 더 더럽다. 농민들은 애써 기른 배를 뭉개고 배추를 갈아엎고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부의 잘못이라며 또 다시 '설거지 정부론'을 주장하고 있다. 아니, 번번이 설거지 타령만 할 거라면 왜 애써서 정권은 잡았는가? 집에서 그냥 설거지나 하고 있을 것이지.

이봉화 보건복지가족부 차관이 노무현 정부 차관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부터 총애해서 이명박 정부의 차관까지 된 것이 아닌가? 노무현 정부의 잘못은 그것대로 낱낱이 밝히고 철저히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명박 정부의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의 등장과 함께 '강부자'의 '쌀 직불금' 불법 수령이 급증하지 않았는가?

이명박 정부는 극구 '설거지 정부'라고 주장하지만 국민들은 '강부자 정부'라고 외치고 있다. 내각과 수석의 구성부터 이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 이명박 정부가 '강부자 정부'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강부자'의 투기를 옹호하는 종합부동산세 인하 정책을 즉각적으로 폐기하고, '쌀 직불금' 불법 수령자 명단을 전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다산조차 기가 막혀 하지 않을 수 없는 이 만연한 투기와 불법의 상태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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