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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의 대서특필, 의욕은 왕성한데 구멍이 숭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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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동아'의 대서특필, 의욕은 왕성한데 구멍이 숭숭

[김종배의 it] '盧 탓'인가 '盧 때리기'인가

특종은 아니다. '동아일보'만 보도한 게 아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도 보도했다.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지난 주 국정감사에서 이미 상당부분이 공개된 내용이다.

그런데도 대서특필했다. 1면과 2면, 3면을 할애해 대서특필했다. 감사원이 쌀직불금 감사결과를 비공개로 처리하고 직불금 수령자 명단을 삭제하는 데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이렇게 보도했다.

이해할 수 있다. 특종만 대대적으로 보도하란 법은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편집권은 언론사에 있다. 그들의 가치 판단에 따라 머릿기사가 달라지고 보도 비중이 결정된다. 요건만 된다면 '동아일보'가 1면 머릿기사로 배치하든 여러 면을 털어 보도하든 문제 삼을 수 없다. 요건만 된다면 그렇다.

어떨까? '동아일보'는 대서특필에 걸맞는 요건을 확보했을까?
▲ ⓒ동아일보

우선 '동아일보'의 보도 개요부터 살피자. 이런 것이다.

청와대가 "나중에 새 정권에 공격할 거리를 주지 않으려(고)" 대통령 임기 후 문제가 될 정책현안 8, 9건을 취합해 지난해 3월 초 감사원에 실태감사를 지시했고, 이에 따라 감사원이 3월 21일 예비조사를 거쳐 4월 16일부터 5월 15일까지 쌀직불금 문제에 대한 감사를 실시했으며, 6월 15일 감사결과를 이호철 당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에게 보고한 데 이어 닷새 뒤인 6월 20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며, 그로부터 한 달여 뒤인 7월 26일 감사결과 비공개를 결정했고 (8월 1일) 비경작 직불금 수령자 17만여 명의 명단을 삭제했다는 것이다.

일목요연하다. '노무현 청와대'의 행적이 시간순대로 잘 배열돼 있다. 하지만 이것뿐이다. '동아일보'가 제시한 건 선후관계일 뿐이다. 인과관계는 어디에서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간과 시간 사이에 구멍이 크게 뚫려있다.

'동아일보'는 "대통령 임기 후 각 부처에서 문제가 될 현안 정책들을 취합"해 감사원에 실태감사를 지시했다고 했다. 이에 앞서 농림부는 2006년 말 청와대에 쌀직불금 불법수령은 없다고 보고했다고 했다.

이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동아일보'의 보도대로라면 청와대는 가만히 놔둬도 될 벌집을 자진해서 쑤셨다. 농림부조차 덮고 쉬쉬하는 일을 구태여 꺼내 실태를 낱낱이 살폈고, 결과적으로 "새 정권에 공격할 거리를" 제공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청와대가 감사를 지시하지만 않았어도, 그래서 감사를 하지만 않았어도, 불법수령자 명단만 작성되지 않았어도 그냥 묻혔을지 모를 일을 자진해서 들췄다. 자승자박을 연출한 것이다.

하나 더 있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대노했다. 지난해 6월 20일 감사원 감사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박홍수 당시 농림부 장관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자 "임기 말이라고 개기느냐"고 연거푸 3차례 같은 말로 질타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한 달여 뒤 감사원은 감사결과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불법수령자 명단도 삭제해 버렸다.

'동아일보' 보도엔 인과성은 고사하고 상관성도 없는 두 가지 사실이 맞서있다. '대노'와 '은폐'라는 양극단의 행위가 마주보고 있다. 감사원이 비공개 결정을 내린 데는 "청와대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는 '동아일보'의 한 구절을 덧대면 더더욱 그렇다. '동아일보' 보도와 관측이 사실이라면 청와대는 조변석개 행태를 보인 셈이다.

이해할 수 있을까? '동아일보'에 묘사된 청와대의 이런 행적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근거가 어디에도 없다. '동아일보'가 제시한 게 없다.

차라리 박영선 민주당 의원의 주장이 더 솔깃하다. 최소한 청와대 행적을 이해하는 데 줄기를 세워준다.

박영선 의원이 밝혔다. 지난 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대책회의가 있었던 6월 20일 이후, 같은 달 22일에 농림부가 쌀 직불금 점검단 TF를 구성했고, 8월에는 1차 개선안을 마련했으며, 9월에는 제도개선 공청회를 열었고, 11월에 법률 개정안을 마련해 12월 4일 입법예고를 했다"고 밝혔다.

박영선 의원의 주장은 법제처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법제처가 지난 3월 각 부처별 입법계획을 취합한 '2008년도 법률안 국회 제출계획'에는 쌀소득보전법 개정안이 포함돼 있었다.

박영선 의원의 주장과 법제처의 조사결과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대노 이후'를 일관되게 설명해준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쉬쉬하려던 박홍수 당시 농림부 장관을 질책한 사실과 그 직후 농림부가 부랴부랴 제도개선에 나선 점이 상통한다. '동아일보'가 제기한 사건의 발단 즉 "대통령 임기 후 각 부처에서 문제가 될 현안들"을 사전에 정리하고자 했던 의도와 농림부의 제도개선 행적도 맥을 같이 한다. "새 정권에 공격할 거리를 주지 않으려(고)" 감사와 제도개선에 나선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물론 박영선 의원의 주장과 법제처의 조사결과가 모든 걸 설명하지는 않는다. 감사원이 17만여 명의 비경작 수령자 명단을 삭제한 행위는 박 의원의 주장이나 법제처의 조사결과로도 설명할 수 없다.

현재로선 이 부분을 밝힐 근거가 없다. 단지 막연하게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청와대가 명단은 숨기고 제도개선책만으로 '퉁 치려' 했을지 모른다고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설득력이 낮다. 제도개선 사유를 밝히지 않은 채 제도개선을 추진하는 건 누가 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제도개선 사유를 밝히려면 감사원의 감사결과와 명단은 필수다.

한나라당은 다르게 추측한다. 청와대가 대선을 고려해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감사결과와 명단이 공개되면 노무현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하고 결국 대선에 악재가 될 테니까 뭍으려 했다고 추측한다. 하지만 이 또한 그리 합리적이지는 않다.

작금의 상황이 웅변한다. 쌀직불금을 수령한 정치인은 대개가 한나라당 인사다. 민주당 인사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공개된 실태가 17만여 명의 명단을 관통하는 추이라면, 이런 추이가 대선 전에 공개됐다면 꼭 노무현 정부와 민주당만 타격을 입었을까? 그렇게 볼 수가 없다.

그만하자. 추측이 너무 어설프다. 직접증거는 고사하고 논리적 완결성도 띠지 못한 막연한 추측에 불과하다. 현재로선 더 파고 더 헤짚는 수밖에 없다. 특정 정파를 비판 또는 두둔하려는 의도를 경계하면서 객관적 실체를 있는 그대로 규명하는 게 최선이다.

정치적 의도와 의욕만 앞세우면 '오버'하기 십상이다. 근거를 채 갖추지도 못한, '합리적 의심' 축에도 끼지 못하는 어설픈 음모론만 나열하기 십상이다. 그러니 추측은 삼가자.

* 이 글은 뉴스블로그 '미디어토씨(www.mediatossi.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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