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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은 억울할 권리도 없나요"

[인터뷰] 정당 활동 이유로 해고당한 성향아 씨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어요.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지요."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사장 김진만)은 비정규직으로 5년 동안 근무한 성향아 씨에게 지난 13일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지난 12일자로 성 씨의 계약이 만료된 지 하루만이다. 지난해 그는 고용이 보장되는 별정직 심사 대상자였지만, 심사를 받지도 못하고 해고됐다.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소송 끝에 6개월 만에 복직했지만 또 해고를 당하고 만 것. 지난 1년간 성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매년 계약일이 다가오면 불안했다"

성 씨는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 입사하기 전 12년 동안 간호사 생활을 했다. 3교대로 몸이 늘 피곤했던 그는 공단에 취직하고 나서 평온한 생활에 만족했다고 말했다.

"공단 다니면서 동우회만 3개 나갔어요. 국선도도 하고, 인라인도 타고, 산도 다니고. 마라톤 경기 같은 거 하면 꼭 챙겨서 나갔죠. 메달도 있는데. 개인 시간 없을 정도였죠. 동우회 MT 따라다니느라고. 재미있게 잘 지냈어요."

하지만, 그는 늘 불안했다고 했다.

"매년 10월 12일이 다가오면 불안했어요. 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보다 우리가 더 많이 하는 건 재계약이 안 될까봐서잖아요. 평소에 눈치도 많이 보고, 특히 계약서 쓰기 전 며칠은 정말 불안하고…. 상상하기 싫습니다."

▲ 성향아 씨는 이 문제를 두고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별정직의 꿈…적자 되보려고 했는데…"


그런 그가 오랜 근무 경력 덕에 지난해 별정직 심사 대상자 14명에 포함됐다. 사람들은 심사는 그냥 형식일 뿐 별정직으로 가는 건 거의 확실하다고 미리 축하부터 해줬다.

"매해 계약서를 다시 쓸 일이 없고, 공단에서 회의가 있으면 회의에 들어갈 수도 있고, 성과급도 같이 받고요. 정규직이랑 같은 업무를 보면서 일은 더 많이 해도 성과급을 못 받았었는데…. 별정직이 된다니까 서자에서 적자가 된 기분이었어요."

그러나 성 씨는 '적자'가 되지 못했다. 아니, '적자'가 될 심사조차 받지 못했다.

"공단 직원은 정당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인사 규정이 문제가 됐다. 그는 "하늘을 날다가 갑자기 땅으로 내팽개쳐진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는 6개월 동안 복직 투쟁을 벌여 지난 6월 공단으로 돌아 왔다. 당연히 다시 별정직 심사가 재개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회사는 "1년 재계약만 가능하다"고 했다. 계속 비정규직으로 일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공단은 재심사를 권고한 인권위에는 "인사 규정을 바꾸는대로 성 씨에 대한 별정직 전환 심사를 할 예정"이라고 통보했다. 성 씨만 이 같은 내용을 전혀 전달받지 못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성 씨와 공단의 근로 계약 만료일은 다가오고 있었다. 성 씨는 별정직 전환을 요구하며 재계약을 거부했다.

계약 해지 통보 5일 만에 진짜 해지…"정말 그럴 줄 몰랐다"

그러자 공단은 성 씨에게 "근로계약서 서명을 계속 거부하면 조치를 취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리고 계약 만료일이었던 지난 10월 12일을 마지막으로 성 씨는 공단에서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성 씨가 서명을 거부한 이유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는 "이번에 공단에서 요구하는대로 1년짜리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나면 별정직이 되기는 더 어려울 것만 같았다"고 했다. "별정직 전환을 확실하게 보장받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자고 결심했었다"고 말했다.

함께 해고됐다 같이 복직한 동료의 사례도 성 씨에게 "설마 진짜 자르기야 하겠어"라는 마음을 먹게 했다. 근무 평가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성 씨와 함께 해고됐던 김선미(가명) 씨 역시 복직 후 별정직 보장을 요구하며 계약서에 서명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회사는 일방적으로 김 씨만 재계약을 통보했다.

이에 대해 공단 인사 담당자는 "김선미 씨는 복직할 때 이미 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김 씨에 한해 1년 재계약 명령을 받았다"며 "성 씨의 경우와는 다르며, 오히려 공단이 '1년 계약이라도 하고 인사 규정이 바뀌면 그 때 얘기하자'며 성 씨에게 매달린 꼴이었으니 우리도 정말 답답했다"고 설명했다.

"비정규직이 뭘 요구하기만 하면 사회가 시끄럽다"

성 씨는 조심스럽게 "나는 이미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 해고된 뒤 복직 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공단에 밉게 보였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복직이 되어서도 회사 내 왕따 현상으로 괴로웠다"며 "사람들은 계속 자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붙이고, 이번 계약 해지 과정에서도 내 잘못으로만 보도록 분위기를 조장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내가 회사에 행사에 참석하려고 하면 따로 불러서 상사는 올 필요 없다고 말하고, 내가 가는 자리는 항상 시끄러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그게 다 공단의 요구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서"라고 말했다.

"사람이 어떤 권리가 있다면 그것을 요구하는 게 당연하지만, 현실에선 다른 것 같아요. 특히, 다른 사람이 아닌 비정규직처럼 힘없는 사람이 무언가 요구를 하면 거기엔 상항 분쟁과 다툼이 생겨요. 힘있는 사람이 권리를 주장하면 당연하지만, 나 같은 비정규직은 아닌 거죠. 우리 사회에서 800만이 나 같은 처지인데, 그나마 나는 사정이 나은 편이죠.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돼 윤택한 삶을 살 권리가 있다는 상식이 현실에서 장애물에 부딪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나는 회피하거나 물러서지 않으려고요."

성 씨의 마지막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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