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씨 기용이 한나라당 이미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따로 짚을 필요가 없다. 법원에서 조세포탈 혐의를 인정해 징역 2년형을 선고했던 사람을 기용하는 것이니 스스로 주창했던 정치개혁을 후퇴시키는 선택으로 비쳐질 게 자명하다.
궁금한 건 따로 있다. 이런 뻔한 사실을 모를 리 없는 한나라당이 왜 김현철 씨을 껴안으려 하느냐는 점이다. 물을 끼얹어도 부족할 판에 왜 섶을 지고 불길로 뛰어들려고 작정하느냐는 것이다.
잘 볼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이 아니다. 김현철 씨 기용하려고 하는 쪽은 한나라당 전체가 아니라 일부다. 당내 일각, 더 정확히 말하면 당 지도부를 점하고 있는 이명박계가 그렇게 밀어붙이려 한다.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을 도운 YS에 은혜를 갚아야 한다"며 김현철 씨에게 부소장 명함을 파주려 한다.
좀 생뚱맞긴 하다. 과거의 동지를 단칼에 베어버린 이명박계가 '보은'을 주장하며 정서에 호소하는 모습이 참으로 낯설다. 언제부터 우리 정치가 의리를 중시했는가 의아하기도 하다.
그래도 버릴 수 없다. 이 '보은론' 만큼 이명박계의 속내를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다시 반 년 전으로 돌아가면 안다. 한나라당이 김현철 씨를 문전박대한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것이 이명박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복기하면 알 수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김무성 후보의 선거사무실을 찾아가 성토했다. 한나라당에서 내쫓겨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무성 후보를 찾아 한나라당의 '배은망덕'을 비판하며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고 욕을 했다. 그 뒤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김무성 후보를 비롯한 박근혜계 후보들은 총선에서 바람을 일으켰고 이명박계 후보들은 줄줄이 미역국을 마셨다. 박근혜 전 대표의 입지는 강화됐고 한나라당 내 비주류의 파워는 증진됐다.
그 때의 뼈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이명박계로선 보험을 들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건 몰라도 '정치적 훼방꾼'이 '분탕질'을 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김현철 씨를 기용함으로써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마음을 돌리고 그 덕에 부산을 대구에서 떼어놓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꼭 그게 아니더라도 된다. 뒷덜미 잡히는 일만 방지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보은론'은 온정의 눈길이 아니라 공학적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배은망덕'을 성토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입을 막고 그의 '자중'을 끌어내기 위한 거래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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