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은 이거룡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이다. 그는 부산 낙동강변 요가학교 교장 선생님도 맡고 있다. 한국에서 인도철학을 공부한 뒤 진정한 스승을 찾아 인도로 홀연히 떠난 그는 10년 동안 인도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30년간 흐트러진 머리와 수염을 고수해왔다는 그에게서 진정한 수행자의 느낌이 배어나왔다.
'빨리빨리'가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 여겨지는 우리 사회에서 그가 들려주는 인도의 '자전거 늦게 타기 경주'는 일견 상식의 반전을 뜻했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수년 전 김밥 장사로 번 수억 원을 모두 대학에 기부해 화제가 됐던 한국의 한 할머니는 한 번의 위대한 포기로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낸 수행자의 반열에 오를 만하다.
얘기는 계속되었다. '벤처 거지' '느림의 미학' 등 보통의 인도 사람이 살아가는 얘기를 들으며 그의 말마따나 '떨림을 통한 공명'의 순간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불교 발상지인 인도에 불교가 발을 붙이지 못한 이유
이거룡 교수는 인도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후 풍토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1년 내내 40도를 넘나드는 더위가 그들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
불교가 인도가 아닌 바깥 세계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도 바로 이 기후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기원전 6세기 인도 지방에서 석가모니에 의해 불교라는 종교가 처음 생겨났지만 현재 인도에서 불교 신자는 전체 인구의 1%도 안 되는 0.8% 수준이다.
사상이 태어난 기후 풍토가 그 이유다. 석가모니는 갠지스 강 동북부에서 태어나 생활했는데 이 곳의 기후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늘 덥기만 한 남부 지역과는 달리 3~50도의 다채로운 기후를 보인다.
이 교수는 "변화무쌍한 불교식 사유 방식이 산도 없는 평지에 모든 게 영원하기만 남부 사람들의 사고를 대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힌두교의 아트만(Atmant : 我)의 영원하다는 인식이 더 많은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 거라는 추측이다.
인도, 진정한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사회
다소 정적이고 수동적으로 보이는 사회 모습은 노·장자를 포함한 동양사상 전반을 꿰뚫는 공통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이 교수는 이 같은 수동성이 다른 것을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둠으로써 다양성과 포용성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그는 한국에서 '다르다'와 '틀리다'가 혼동되는 건 다르다는 것이 오류가 있는 것처럼 인식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다양성이 '시간'에서 구현될 때 그것은 '느림의 미학'으로 보여진다. '빠르다'는 단일한 속성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균일하지 않게 해 여유를 찾는다는 것이다. 이런 느림의 미학은 인도철학의 거창한 이론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인도인의 삶 속에서 그대로 구현되고 있다.
이거룡 교수가 인도의 대학에 입학원서를 넣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기 위해 인도를 찾아갔을 때다. 학교 측에서 '조만간에' 결과를 알려주겠다는 애매한 말을 남겼다. 그는 3~4주를 예상했다. 그러나 그에게 결과가 통보된 건 그로부터 8개월 뒤. 이후 그가 인도에 가서 왜 이리 늦었냐고 따지자 "왜 서류를 내고서 안달이냐"며 오히려 꾸중을 들었다. 1겁, 86억4천만 년이라는 '겁나게 긴' 시간을 생각하는 그들에게 1년, 하물며 몇 달은 아무 것도 아닌 정도의 시간이이라며 시간 관념과 개념의 차이가 있는 것이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이 교수가 입학 후 신청한 학생증은 언제쯤 나왔을까?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 날 비로소 '기념으로 가져가라'며 학생증이 발급됐다. 졸업장도 15년이 지나서야 받게 됐다고 한다. 이사 등으로 반송이 됐다는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이 교수는 지난 2005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대학을 찾아가 혹시 졸업증을 받을 수 있나고 물었다. 이 교수는 "담당 직원이 15년 동안 보관돼 누렇게 변한 졸업장 원본을 캐비넷에서 주섬주섬 꺼내줬을 때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느림의 진수는 자전거 타기 대회. 자전거 경주에 나타난 주자가 슬리퍼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나오자 도대체 어떻게 경주를 하려는 것인지 의아했는데 출발 총성 후에 뒤늦게 알게 된 것은 '누가 가장 빨리 가냐'가 아니라 '누가 가장 느리게 갈 수 있냐'를 겨루는 대회였다는 것이다.
그는 인도철학의 4시기 중 우리가 살고 있는 다르마(dharma)라는 시기는 '진리가 외발로 서 있는 시기'라고 설명하며 법과 진리, 의무가 쇠퇴하는 한 징후는 바로 '모든 게 점점 빨라질 때'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게으를 수 있는 자유'조차 상실된 지 오래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한 번의 위대한 포기를 위해 일생을 산다"
느림과 더불어 이 교수가 천착하는 것은 바로 '체념'과 '초월'. 이 교수가 처음 인도에 유학갔을 때 그는 6개월 동안 '초월자'를 찾아헤맸다. 그러나 초월의 세계는 어디에도 없고 거지와 체념과 가난만 있는 인도의 모습에 실먕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초월'의 모습을 본 것은 엉뚱하게도 범상치 않은 거지에게서다. 그는 그를 '특별한 거지' '벤처 거지'라고 불렀다. 그 거지는 마대를 깔고 앉아 하늘을 쳐다보며 두 손 내밀고 있었는데 절대 돈을 달라는 말도 하지 않고 구걸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감사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 거지를 6개월, 1년을 지켜본 이 교수는 바로 저 사람이 성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시시콜콜한 세속을 버리고. '체념'과 '초월'의 경계에 서서 움직임이 별로 없고 편안하고 고요한 모습. 국어 사전을 찾아보면 체념의 첫 번째 뜻은 놀랍게도 '진리를 깨닫는 마음'이라고 쓰여있다.
이 교수는 포기할 때 초월의 에너지가 생긴다는 역설을 얘기했다. 그러나 체념과 포기가 의미를 지니려면 가능한 것에 대한 포기여야 한다. 불교의 무소유도 아무 것도 안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가질 수 있지만 갖지 않는 것이다.
무언가를 욕망할 때 에너지가 일어나고 이것을 충분히 할 수 있을 정도로 욕망을 키워나갈 때 에너지는 극대화된다. 이 커진 욕망을 어떻게 갈무리하느냐가 핵심이다. 김밥을 팔아 번 돈 4억을 어느 순간 대학에 기부한 할머니처럼 돈을 많이 번 다음 쓰지 말고 그것을 한 순간에 버릴 때 위로 떠오를 수 있는 급격한 에너지가 나온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처럼 두 시간 동안의 낯설지만 끌리는 인도로 떠나는 여행은 앞으로 5번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10월 22일에는 '업과 윤회사상', 11월 12일에는 '깨달음에 이르는 세 가지 요가', 11월 26일에는 '인도 종교예술의 이해', 12월 10일에는 '종교 없는 종교, 힌두교를 모르는 힌두교인들'의 주제로 강의가 열린다.
현재 개별 강좌 신청이 가능하며 당일 현장 접수도 가능하다. (☞ 온라인에서 신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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