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기관은 지난 2004년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조사에서도 전체의 47.63%를 비정규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 사이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법이 제정됐지만 과학기술 정부 출연 기관의 비정규직 규모는 줄어들지 않았다. 관련법이 박사 학위 소지자의 경우 2년 고용 후 정규직화라는 사용 기간 제한 조항에서 '열외'를 시켜준 것이 이같은 비정규직 규모 '고착화'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더욱이 지난 1996년 도입된 '성과 기반 예산 시스템(PBS)' 제도와 낮은 출연금은 기관의 비정규직 사용 유인이 되고 있다. 비정규직법의 한계와 PBS 제도가 맞물려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서 과학기술 정부 출연 기관은 기타 공공기관보다 더 많은 고학력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있음이 드러난 것.
이런 중에도 정부는 '비정규직을 더 자유롭게'라는 기치 아래 관련 법 개정 등을 추진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과학기술 분야 종사자가 현 정부의 과학 정책을 보는 시선은 싸늘했다. 권영길 의원의 조사 결과 과학기술인 중 71.5%가 현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을 놓고 "대폭 수정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전체 비정규직의 74%가 연구 인력 종사자
권영길 의원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민주노총 산하 공공연구노조와 함께 과학기술 정부 출연 기관의 인력 구조 현황을 조사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국가수리과학연구소, 한국천문연구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등 교육과학기술부 기초기술연구회 소속 13개 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이들 기관은 통계청의 지난해 조사에서 나타난 공공기관의 평균 비정규직 비율 25%보다 2배 가까이 많은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전체 비정규직 가운데 74.1%가 연구 인력 종사자였다. 이는 각 기관에서 수행하는 기초 과학 연구에도 비정규직이 광범위하게 고용돼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대부분 정규직과 동일한 연구 업무에 종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4대 보험 외의 혜택에서는 차별을 받고 있었다. 특히 학연생, 연수생 등 연수 과정 노동자의 경우 4대 보험마저 적용되지 않는 기관이 대부분이었다.
연구 인력 가운데는 기간제가 807명으로 가장 많고, 연수생이 764명으로 두 번째로 많았다. 학연생이 518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석사후 연수생은 447명, 박사후 연수생은 388명, 단시간 노동자는 345명이었다.
13개 기관 중 7개 기관에서 총 인력의 50% 이상이 비정규직
13개 기관 가운데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전체 인원의 68.7%가 비정규직으로 1위를 차지했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이 64.9%로 2위, 국가수리과학연구원이 63.0%로 3위였다. 전체 인력의 60% 이상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기관은 그 외에도 한국과학기술연구원(62.8%), 극지연구소(60.1%) 등 무려 5개에 달했다.
50% 이상 60% 미만 비정규직을 쓰는 기관도 2곳이나 있었다. 한국천문연구원이 총 인력의 50.8%, 한국한의학연구원이 50.5%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있었다. 13개 기관 가운데 7개 기관이 50% 이상 비정규직을 쓰고 있는 것.
비정규직 박사후 연수생 2년 새 무려 50.4%↑…지원 인력은 '대 놓고' 외주화
특히 이들 기관의 비정규직은 비정규직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직접 고용과 간접 고용을 막론하고 모두 늘어났다. 직접 고용 비정규직은 2006년에 비해 10.2%가 증가했는데, 박사 후 연수생이 같은 시기 무려 50.4%나 늘어났다. 석사 후 연수생은 37.7%, 연수생은 12.2%나 증가했다.
간접 고용 비정규직도 대폭 늘어났다. 사무 지원, 비서 등을 담당하는 파견 노동자는 2006년에 비해 무려 22.5%가 늘었다. 시설 관리, 청소, 경비 등을 하는 도급 노동자도 15.4% 증가했다.
직접 연구가 아닌 사무 지원에서 사용되는 파견·도급이 늘어난 반면, 지원 인력에서의 기간제는 같은 기간 5.9% 감소해 이들 기관이 지원 업무를 광범위하게 외주화 시키고 있음이 확인됐다.
"박사에 대한 비정규직법 예외 조항, PBS제도와 낮은 출연금 해결해야"
이처럼 과학기술 분야에서 광범위한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것은 해당 연구의 성과 하락에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이 지난해 출연 과제 책임자 200여 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불안정한 고용으로 연구 역량 축적이 어렵다"는 하소연이 72.6%에 달했다.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의 75%가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대답했는데, 이는 싼 값에 고급 인력을 사용하려는 정부 출연 기관의 '속셈'이 이 같은 고용 구조를 만들고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또 이는 공공기관에서조차 비정규직의 차별 해소와 상시 업무 사용 금지라는 법 취지를 어기고 있는 셈이다. 특히 박사 학위 소지자에 대한 예외 조항도 이들 기관의 이 같은 고용 행태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권영길 의원은 "PBS 제도와 낮은 출연금"을 또 한 가지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연구과제 수행에 필요한 적정한 인건비가 책정되지 않다보니, 비정규직 연구원 사용을 선호하게 된다"는 얘기다.
정부 출연 기관의 특성상 당연히 해법은 정부의 문제 해결 의지에 있을 수밖에 없다. 권 의원은 "PBS 제도 개선과 함께 정부 출연금을 확대하는 과정에서의 재원 확보 및 기관별 여유 재원 가운데 일정 부분을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사용하도록 만드는 강제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학기술인 71.5% "이명박 과기 정책 문제 많다" 정부 출연 기관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조차 고용 불안 등의 '안 좋은' 노동 조건에서 일하다 보니, 출연 기관 종자 가운데 "자긍심은 높지만 노동 조건은 불만족스럽다"는 의견이 55.9%에 달했다. "자긍심도 낮고 노동 조건도 불만족스럽다"는 18.3%까지 포함하면 75% 가량이 불만을 갖고 있었다. 지난 1~2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정부 출연 기관 소속 과학기술인 186명을 상대로 실시한 '과학기술인 조사'의 결과, 과학기술계 및 출연 기관의 발전을 위해 정부가 우선 "안정적인 연구 재원을 지원해야 한다"는 대답이 41.4%로 가장 높게 나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같은 과학기술인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교육부와 과학기술부를 통합하는 등 과감한 과학계 '무시' 정책을 펴고 있다. 두 부처 통합에 대해 과학기술인의 84.4%가 '반대' 입장을 밝혔고, 학연협력 강화정책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분석이나 준비 없이 형식적인 면에 치우치고 있다"는 평가가 48.9%로 절반에 가까웠다. 종합적으로 보면, 과학기술인의 71.5%가 현 정부 과학 정책에 대해 "전략적 사고가 부족하고 산학연간 연계성도 부족해 수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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