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쟁부문인 뉴커런츠 부문에 출품된 영화 중 인도네시아의 에드윈 감독이 연출한 <날고 싶은 눈 먼 돼지>는 아시아영화를 담당하고 있는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가 그간 여러 경로로 발표한 추천작 중 언제나 포함됐던 작품이다. 샌드위치를 폭죽과 함께 먹는 기벽을 가진 소녀와 그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영화는 전통적인 내러티브 전개 방식을 따르는 영화는 아니지만, 강한 상징성을 부여한 이미지들을 나열하며 이야기를 구성해나간다. 에드윈 감독은 부산을 방문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사실 그는 2004년 6분짜리 단편 <아주 느린 아침식사>로 부산에 초청된 적이 있다. 게다가 그는 2005년에 부산이 의욕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아시아영화아카데미를 수료했기 때문에 부산영화제 측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었으며, 그 역시 부산영화제의 분위기가 어떤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GV를 진행하면서, 자신의 인생에 가장 좋은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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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윈 감독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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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는 원래 관객들이 영화에 매우 열정적으로 반응하는 영화제다. 나의 첫 장편영화를 부산에서 상영하게 된 것, 그리고 관객들이 내 영화에도 그렇게 열정적으로 반응해 준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경험 중 하나이다. 나는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말을 걸고 관객은 그것을 보며 나에게 반응을 전해준다. 이런 의사소통의 기회를 통해 오히려 내가 그 주제에 대해 더 많이 배웠다. 부산에서 이런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건 너무나 놀랍고 멋진 경험이다." 첫 장편으로 인도네시아 내에서 화교들이 당하는 인종차별이라는 소재를 다룬 것은 그 자신이 화교이기 때문이다. 부모님 두 분 역시 모두 중국인이라 밝힌 그는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건이 자신이 어릴 적부터 직접 보고 겪은 일들이라고 말한다. 인종차별 외에도 다른 정치적인, 혹은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니다'라는 단호한 말로 답변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단순히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부정의 언어가 아니다. "내가 모든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정치는 우리의 일상 모든 것과 연결돼 있다. 좋든 싫든 우리는 그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심지어 태어나서부터 국가로부터 출생증명서와 같은 서류를 받는다. 모든 것이 사회적 제도와 연결돼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에드윈 감독은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의 정치'에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심을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영화로 연결시킬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그는 차기작으로든 먼 미래에든 영화로 꼭 다뤄보고 싶은 정치적 주제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해본 것이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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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고 싶은 눈 먼 돼지 ⓒpiff.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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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설명에 의하면, 인도네시아의 영화산업은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최초의 인도네시아 영화는 1949년에 만들어진 흑백영화로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다룬 전쟁영화였다. 이후 계속 성장해 7, 80년대에 붐을 이루어 드라마, 호러, 액션, 슈퍼히어로 영화 등 다양한 영화들이 만들어졌고 많은 감독들이 모스크바의 러시아국립영화학교에서 영화를 배워오기도 했다. 그러다 80년대에 TV가 보급되자 영화 인력들이 상당수 TV로 옮겨가게 됐고 영화산업은 멈추게 됐다. 92년부터 98년경까지는 아무도 영화를 만들지 않고 있다가 98년 이후부터 산업이 다시 시작됐고, 영화를 보고자 하는 관객이 늘어남에 따라 2007년과 2008년에는 박스오피스에서도 크게 성공한 영화들이 나오게 됐다. 지금은 큰 영화사들이 일년에 50여 편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중 대다수는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상업영들이며 드라마나 이슬람에 대한 영화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내 영화처럼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독립영화는 그리 많지 않다. 독립영화의 정신을 갖고 만든 영화들은 일년에 2, 3편 정도나 나올까. 정부의 도움이나 지원은 없으며, 독립영화 감독들은 자신의 돈을 털어넣거나 큰 영화사들에 자금의 일부, 혹은 장비 대여를 부탁하여 도움을 받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든다." 그는 영화감독으로서의 소신이나 철학을 묻는 질문에는 답변하기 난감해 했다. 다만 그는 '정직한 감독'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에게 영화는 삶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기억상실증에 걸려 모든 기억을 잃는다 해도 친구들과 가족들과 어떻게 살아왔는지 영화를 보면 알게 될 것이라는 게 에드윈 감독의 말이다. 하지만 이제 갓 서른의 나이를 맞은 감독이 영화를 이야기하며 현재나 미래가 아닌 '과거의 기억'의 관점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다. 혹시 희망을 찾기보다 그저 과거의 상처에만 천착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염세주의자는 아니다. 내 영화가 상처와 희생자 등을 다루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차별과 그로 인한 상처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혼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거대한 혼란을 껴안고 살아간다. 이 영화는 바로 그것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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