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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진행 중…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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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진행 중…시간이 없다"

[대담] 과학과 예술,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오는 10월 8일부터 11일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특별한 지식 축제 'isAT 2008'이 열린다. 이 행사는 예술과 과학기술의 소통을 활성화하고자 마련된 국제 학술 대회이다.

이번 행사의 주제는 'Shift to Third Space(제3의 공간으로 변환)'이다. 여기서 말하는 '제3의 공간'은 '현실 공간(제1의 공간)'과 '가상 공간(제2의 공간)'을 잇는 또 다른 공간이다. 장소나 시간에 관계 없이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기술이 이런 새로운 공간을 창출했다는 것.

이런 행사의 공동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KAIST의 양현승 교수는 "지금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일상생활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며 '제3의 공간'의 탄생이 갖는 의미를 밝혔다. 양 교수는 "앞으로 유비쿼터스 기술은 현실 공간, 가상 공간의 경계를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10년 안에 휴대전화 단말기와 같은 '모바일 디바이스'가 몸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지금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것처럼 유비쿼터스 기술이 보편화되면 현실 공간-몸-가상 공간이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전혀 다른 공간이 나타난다는 것. 양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는 전통적인 현실 공간, 가상 공간 구분은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양현승 교수는 "더 나아가 인공지능이 더욱더 발달하면 현실 공간의 로봇과는 달리 지능을 갖춘 가상 공간의 게임 캐릭터 같은 게 등장할 것"이라며 "그렇다면 사이버스페이스에서 현실 공간의 나를 대리하는 아바타와 인공지능을 갖춘 게임 캐릭터가 공존하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현실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새로운 '제3의 공간'의 탄생이다.

공동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심광현 교수는 "이런 제3의 공간이 과학기술과 예술의 관계 더 나아가 삶의 전반을 어떻게 바꿀지 모여서 탐구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그는 "더 나아가 과학기술이 초래할 삶의 변화에 예술가, 과학자들이 어떻게 공동으로 대응할지 고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레시안>은 과학기술 시대의 심원한 변화를 예견하는 이런 학술 행사를 준비해온 양현승 교수와 심광현 교수의 대담을 마련했다. 이 대담의 사회는 과학과 예술의 관계를 오랫동안 고민해오며 다양한 실험을 해온 연세대학교 천문대 이명현 교수가 맡았다. 이 대담은 지난 4일 오후 서울 옥인동 프레시안 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 지난 4일 오후 서울 옥인동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진행된 양현승 교수(왼쪽)와 심광현 교수(오른쪽 두 번째) 대담. 사회는 이명현 교수(오른쪽)가 맡았다. ⓒ프레시안

예술과 과학의 마주침…불확실성의 영역에 공감하다

이명현 : 오는 8일부터 11일까지 '제3의 공간으로의 변환'이라는 주제로 'isAT 2008'이 열린다. 예술과 기술의 만남을 화두로 하는 두 번째 국제 행사이다. 우선 이번 행사를 개최하는 두 조직위원장과 얘기를 나누게 돼 기쁘다. 먼저 양현승 교수에게 묻고 싶다. 전자공학 쪽을 전공했는데, 어떻게 예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양현승 : 전자공학도 아주 넓은 분야이다. 나는 주로 인공지능, 로보틱스, 가상현실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물질세계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인간의 지성과 감성의 상호작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기술의 완성도를 위해서는 이런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감성 분야의 전문가인 예술가와 교류를 하게 되었다. 특히 지난 10여 년 동안 로봇 전시를 많이 했는데, 예술가들, 특히 미디어아트를 하는 이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수년간 그런 분들과 교류를 하면서 로보틱스, 가상현실 관련 학술 대회, 워크숍 등을 조직하면서 더욱더 관심이 깊어졌다.

지금은 예술 쪽에서 과학기술에 관심이 굉장히 많고 새로운 표현 재료로서 기술을 가져다 쓰는 경우가 많다. 과학자의 입장에서는 예술에 이런 기대를 가지고 있다. 기존에 알아왔던 지식 외에 다른 분야를 좀 더 잘 알게 되면 과학기술의 새로운 돌파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그러나 이렇게 교류를 하는 가장 큰 동기는 바로 '재미'이다. 교류하면서 예술가의 작품 세계도 알게 되고, 어떤 면에서 과학자보다 앞선 비전을 가진 예술가로부터 많이 자극을 받기도 한다. 이번 isAT에 초청하는 이들도 우리보다 넓은 시각을 가진 이들이기 때문에, 이번 행사가 앞으로 과학기술의 미래 발전 방향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명현 : 심광현 교수는 원래 미학을 전공했다. 그러다 수학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고. 이제 지금은 과학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심광현 : 20세기 예술사를 보면 아방가르드 작업이 많았다. 마르셸 뒤상, 맨 레이 등을 염두에 두면 이미 20세기 초반부터 예술과 과학기술의 적극적 소통이 시작되었다. 그 전통은 백남준, 존 케이지가 나왔던 1960년대 다시 활발해지다 사그라졌다. 그러니까 20세기 예술사를 요약하면 주류적인 흐름 사이에 계속 과학과 예술이 만나고 헤어졌던 것이다.

이런 역사를 염두에 두면 미학, 예술을 연구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이 두 가지의 대립, 긴장 관계를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나 같은 경우는 미학을 문화 연구 쪽으로 확장하는 작업을 1990년대에 하면서 당연히 시대의 화두인 과학기술의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고, 자연스럽게 이런 과학기술과 예술의 관계에 주목하게 됐다.

특히 최근에 이런 양측의 관계가 극적으로 전환하고 있다. 예전에는 사운드, 이미지, 텍스트 이런 게 제각각 떨어져서 서로 연결이 안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사운드, 이미지, 텍스트가 모두 디지털로 통합되고 있는 추세다. 이런 디지털 중심의 표현이 대세가 되는 상황에서 예술가는 물질공간과 가상공간을 연결시키는 새로운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의 한 편에서는 과학과 미학의 고민의 접점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미학, 예술은 전통적으로 불확실성과 같은 애매모호한 인식의 영역에 초점을 맞춰 왔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과학이 바로 이런 불확실성에 주목을 하기 시작했다. 미학, 예술과 마주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전통적으로 과학기술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물질공간과 예술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가상공간이 만나고, 더 나아가 과학과 미학이 공통적으로 불확실성의 문제에 주목하는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관심 영역이 과학기술로 확장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과학기술의 성과로부터 많은 자극을 받기도 했고….

린츠의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성공적인 모델
▲ 양현승 KAIST 교수. ⓒ프레시안

이명현 : 과학과 예술이 융합되는 그런 시기가 도래했다는 것에 대한 합의가 과학계, 예술계 내부에서도 있나?

양현승 : 우리나라는 2000년대 들어와서 이런 얘기를 많이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한국은 말은 많은데, 국제적으로 내세울 만한 본격적인 흐름은 없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열리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 같은 행사는 벌써 30주년이나 되었다.

1978년부터 매년 열리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에 2000년대 초부터 4년 연속 갔었다. 그 때 현장에서 한국 사람을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예술과 (과학)기술의 관계를 놓고 세계의 리더들이 모이는 자리로 유명하다. 그런데 정작 이런 곳에 한국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미국에서 열리는 '시그라프(SIGGRAPH)'라는 행사에서는 한국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시그라프는 컴퓨터 그래픽 중심의 아무래도 상업성이 더 강조되는 행사이다. 이것만 놓고 봐도 한국에서 과학기술과 예술의 만남, 이런 게 얘기가 많이 되는 것만큼 내실은 없는 것 같다.

심광현 :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굉장히 큰 의미를 갖는 행사이다. 처음에는 비엔날레 같은 이벤트 형식으로 시작했다가 2~3년이 지난 후에는 린츠 시가 적극적으로 이런 행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린츠는 원래 철강 산업으로 유명했는데, 지금은 이 아르스 일렉트로니카가 린츠의 상징이 되었다.

이 아르스 일렉트로니카가 매개가 돼 도시 전체가 거대한 예술, 학술 공간으로 변모했다. 린츠 안의 연구 기관, 교육 기관, 박물관 등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과학기술과 예술의 만남이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 그런 성과가 매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를 통해서 발표되고.

30년간의 이런 성과를 인정 받아 린츠는 2009년에 유럽연합이 정한 '유럽 문화의 수도'로 지정된다. 한 때 베니스 비엔날레가 유럽 문화의 상징이었다면, 이제는 바로 린츠의 아르스 일렉트로니카가 바로 유럽 문화의 상징이 된 것이다. 한국도 이런 세계의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

양현승 : 한국에서는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여러 대학 중에서 가장 조직적으로 과학기술과 예술의 만남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이런 관심을 보면서, 과학기술과 예술의 관계를 놓고 고민하는 세계적인 리더를 한국으로 초청하는 행사를 갖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07년부터 시작한 isAT은 바로 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제프리 쇼 등 전세계 대가가 한 자리에
▲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프레시안

이명현 : 자연스럽게 isAT 얘기로 넘어갔다. 이번에 두 번째로 개최되는 isAT 2008 행사를 소개해 달라.

양현승 : 작년에는 국내외에서 각 10명씩 리더를 초청해서 학술 행사 중심으로 진행했다. 올해에는 KAIST,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대, 중앙대, 이화여대 서울예술대, 한국영상학회 등 국내 여러 대학과 관련 기관이 참여해 학술 행사 외에도 공연, 전시를 병행할 예정이다. 앞으로 이 isAT을 예술과 과학기술을 화두로 삼는 한국의 대표적인 행사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이번 심포지엄의 주제는 'Shift to Third Space(제3의 공간으로의 변환)'이다. 최근의 정보 기술이 극대화하면서 온 공간이 지능화하는 등 의사소통의 방식이 획기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실(real) 공간과 가상 공간 사이의 구분도 힘들어지고 있다. 이른바 '제3의 공간(Third Space)'의 등장이다.

이번 isAT에서는 이런 변화 속에서 예술과 과학기술의 관계가 어떻게 바뀌는지 또 사회는 어떤 영향을 받을지를 따져보기로 했다. 특히 이번 isAT에서는 가까운 미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이 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 테크놀로지에 초점을 맞춰서 여러 가지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명현 : 참여하는 이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양현승 : 기조연설을 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제프리 쇼(Jeffrey SHAW), 영국의 로이 애스콧(Roy Ascott), 미국의 린 허쉬만 레슨(Lynn HERSHMAN LEESON)은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뉴미디어 아티스트이다. 이들은 이번 행사에서 21세기 예술, 과학기술, 사회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할지 통찰력 있는 시각을 선보일 예정이다.

레슨은 기조연설 자체가 이번 행사의 주제와 맞물려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즉 레슨이 직접 행사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그의 '아바타'가 가상공간에서 기조연설을 하게 된다. 이번 행사의 주제인 현실 공간과 가상 공간이 만나서 어떻게 제3의 공간이 창조되는지를 기조연설 과정에서 직접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세계적인 컴퓨터 그래픽 아티스트로 꼽히는 일본의 요히치로 가와구치도 기조연설을 한다. 생명 현상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그의 예술 세계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일본에서도 굉장히 존경을 받는 이라서 NHK에서 그의 삶을 특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기도 했다.

이밖에 일본의 가상현실 연구를 이끌고 있는 미치타카 히로세, 미국의 게임 아트의 거장 도널드 마리넬리(Donald MARINELLI), 미디어 아트 분야의 세계적인 리더인 일본의 마사키 후지하타 등이 방문한다. 더 많이 초청하려고 했지만, 사실 이미 언급된 이들만으로도 포화 상태이다.

대개 국제 학회라고 하면 대가 한 사람 정도가 와서 기조연설을 하는데, 이번에는 그런 이들 8명이 와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니까,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국내에서도 예술과 과학기술과 관련해서 선구적인 고민을 해온 분들이 대거 참석할 예정이고.

젊은 미디어 아티스들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꿈꾼다
▲ 연세대학교 천문대 교수. ⓒ프레시안

이명현 : 행사 첫날(8일) 열리는 오픈 워크숍(open workshop)도 눈에 띈다.

심광현 : 그 동안은 예술가들이 어떤 전시회에 산발적으로 참여했다 그냥 가는 게 다였다. 이번 워크숍에는 유럽, 일본, 한국 등 국내외 30대(代)의 미디어 아티스트 12명이 모여 그 동안 해온 것을 보여주고 서로 코멘트를 한다. 특히 도널드 마리넬리와 제프리 쇼가 참여해 직접 코멘트를 할 예정이다.

이번 워크숍은 참여한 아티스트들이 앞으로 창작 방향을 고민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또 이들 간에 네트워크가 형성돼 앞으로 젊은 미디어 아티스트 간의 교류를 촉진하는 역할도 할 것이다. 이런 워크숍이 활성화가 되면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처럼 국제적인 작가들의 isAT를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과 가상의 융합…인간과 기계는 제3의 공간에서 조우

이명현 : 다시 이번 행사의 주제 얘기를 해보자. 키워드가 'Shift to Third Space(제3의 공간으로 변환)'이다. 이 키워드가 갖는 의미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양현승 : '제3의 공간'은 아주 상징적인 개념이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공간이 지능을 갖는 것을 말한다. 사실 유비쿼터스 컴퓨팅이라고 하는 것은 공간이 지능을 갖는 것이다. 모든 공간에 센서가 붙어서 공간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이해하고, 사람에게 미리 알아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마치 사람의 신경망의 뇌세포 같은 게 전 공간에 흩어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작게는 방 하나가 크게는 지구 전체가 망으로 엮이면서 모든 공간이 지능을 갖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사람의 몸 자체가 이 망에 포섭되게 된다.

이미 계속 소형화하고 있는 휴대전화 단말기와 같은 모바일 디바이스가 한 10년 안에는 몸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사람 몸 자체가 망에 연결되는 것이다. 지능화된 공간, 이 공간에 연결되는 인간. 바로 이렇게 공간과 주체가 연결되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인프라스트럭처가 바로 우리가 말하는 제3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심광현 : 그런 의미에서 지금 상용화되고 있는 기술은 P2P(person to person)에서 P2M(person to machine)으로 움직이고 있다. 여기서 M은 지능을 가진 '머신'이다. 그리고 결국은 M2M(machine to machine) 단계로 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이런 거대한 전환의 시점에 서 있다.

양현승 : 또 다른 면도 있다. 앞으로 사이버스페이스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은 게임 캐릭터들은 가상 공간에서 미리 정해 놓은 대로 행동한다. 그러나 이 게임 캐릭터들이 지능을 갖게 되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인간의 분신인 아바타와 게임 캐릭터가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공존하는 그런 상황을 상상할 수 있다.

이렇게 현실 공간과 가상 공간이 말 그대로 융합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예술의 역할은 어떻게 변화할까? 예술은 항상 과학기술의 발전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레이저 아트, 미디어 아트, 비디오 아트 등 기술이 발전을 할 때마다 예술은 그에 따라 반응해 왔다. 이제 새로운 과학기술의 변화에 예술이 어떻게 반응할지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예술가의 직관이 과학 기술의 미래를 예견해왔다"
▲ 심광현 교수는 "이번 행사는 유비쿼터스 기술이 가능하게 한 이런 제3의 공간이 과학기술과 예술의 관계 더 나아가 삶의 전반을 어떻게 바꿀지 모여서 탐구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프레시안

이명현 : 방금 '제3의 공간'이라는 개념의 의미를 놓고 과학자 입장에서 정리를 들었다. 예술이 과학기술을 따라가야 한다는 이런 생각을 예술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심광현 : 예술가에게 중요한 두 가지 자원은 '감각(sensitive)'과 '직관(visionary)'이다. 특히 이 직관은 과학자들이 따라잡기 어렵다. 예를 들어 로이 에스콧은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에 전 세계가 연결되는 온라인 망을 예측했다. 또 이미 1980년대에 무의식에 대한 과학적 탐구의 필요성을 주장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뇌 과학의 필요성을 이미 직관으로 20여 년 전에 예견을 한 것이다.

과학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지금도 이런 예술가의 직관은 여전히 힘을 발휘하리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예술가의 직관이 계속해서 힘을 발휘하려면 예술가들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 이번에 기조연설을 하는 로이 에스콧처럼 과학기술의 변화를 예민하게 포착한 선구적인 이들이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 예술가는 분과주의의 틀에 갇혀 있다.

이런 사정은 과학자들 역시 다르지 않다. 지금은 개방적 예술가, 폐쇄적 예술가, 개방적 과학자, 폐쇄적 과학자 이런 네 가지 부류가 존재한다. 우선 개방적인 예술가와 과학자가 만나야 한다. 미국은 이미 이런 전통이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MIT의 미디어랩 같은 경우는 이미 1985년에 만들어졌다. 유럽 쪽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예에서 보듯이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지속적으로 이런 흐름이 이어져오고 있다.

로봇을 인간의 후손으로 볼 것인가…새롭게 정립할 과학기술 윤리학

양현승 : 사실 과학과 예술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했는지는 당대에는 포착하기 쉽지 않다.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그 전모를 알 수 있다. 심 교수의 지적처럼 예술가의 감각, 직관이 과학에 큰 영향을 준 예는 많이 있다. 방금 언급한 로이 에스콧의 역할이 바로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과학기술이 정말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서, 예술 쪽에서 과학기술 쪽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기가 참 어렵다. 지금 예술은 과학기술을 따라가기에 급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즉 예술이 직관의 힘으로 예전처럼 새로운 통찰을 줄 수 없는 상황, 이것이 바로 지금의 현실이다.

심광현 :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지금 인류는 과학기술의 모습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지점으로 달려가고 있다. 어느 순간이 되면 과학기술이 스스로를 조직하는 그런 단계에 도달할 것이다. 그런 상황이 도래했을 때, 그 과학기술이 인류와 자연의 공생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미리 설계하는 게 지금 논의가 되어야 한다.

만약에 그런 게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든다면 지금 과학기술의 발전 방향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판단을 할 시간이 불과 3~4년밖에 안 남았다는 것이다. 그런 판단이 가능하기 위해서라도 예술가와 과학자의 공동 작업이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

이명현 : 방금 지적한 대로 앞으로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과학기술이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과학기술을 인류가 계속 통제하는 게 가능할까? 특히 과학자, 예술가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자율성'을 강조하는 속성을 염두에 두면 방금 심 교수가 언급한 사회의 통제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양현승 : 지금 제기된 것은 아주 근본적인 문제이다. 과학기술은 이미 한 쪽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멈출 수 없다. 지금 '인간 복제'가 문제가 되고 있지만, 언젠가는 인간 복제는 이뤄질 것이다. 그런 흐름을 멈출 수 없다. 지금은 그런 과학기술에 제동을 걸 것인가, 이런 게 아니라 그런 걸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런 걸 논의해야 할 때이다.

예를 들어 로봇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로봇은 인간을 대신할 것인가, 아니면 로봇도 인간의 또 다른 후손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인류는 이런 질문에 답을 해야 할 시기를 맞고 있다.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토론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인문학에서는 부정적인 답을 내놓을 것이고, 과학자는 긍정적인 답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확실한 것은 그런 논란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런 방향으로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확신하건대 막는다고 막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의 혼란을 얼마나 줄일 것인가, 그리고 그런 혼란을 인류가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 앞으로 이런 게 예술의 큰 사회적 역할이 될 것이다.

심광현 : 이런 변화의 시기에 필요한 것은 제3의 시각이다. 과학기술이 인간을 포섭하는 것도, 또 인간이 과학기술을 포섭하는 것도 아닌, 제3의 시각이 필요하다. 바로 인간의 몸을 '제3의 공간'으로서 바라보는 시각이 그 한 예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러다이트 운동을 하는 것으로는 절대로 과학기술을 막을 수 없다.

오히려 과학기술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자연관, 인간관에 대한 합의가 시급히 필요하다. 이른바 '과학기술 윤리학(Technoethics)'이 새롭게 요구되는 것이다. 이런 과학기술 윤리학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 시대의 시민에게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바로 이게 예술가와 과학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촛불집회는 유비쿼터스의 직접적 실현"
▲ 양현승 교수는 "지금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일상생활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며 '제3의 공간'의 탄생이 갖는 의미를 밝혔다. 양 교수는 "앞으로 유비쿼터스 기술은 현실 공간, 가상 공간의 경계를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레시안

이명현 : 결국은 어떤 실천을 할 것인가, 이런 물음으로 돌아왔다. 가장 대표적인 실천으로는 교육, 운동을 들 수 있을 텐데…. 그런 의미에서 촛불 집회 얘기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다. 촛불 집회는 정치적인 면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문화운동으로서의 모습도 컸다. 이번 행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유비쿼터스 기술이 그야말로 현장에서 이뤄진 거니까.

심광현 : 이번 촛불 집회는 특히 의미가 크다. 2000년대 들어서 '시티즌'은 사라지고 '네티즌'만 남았다는 식의 비판이 있지 않았나? 그런데 촛불 집회는 이런 비판이 아무런 근거 없음을 보여줬다. 가상 공간에서 들썩이던 움직임이 현실 공간으로 다시 이어졌다. 그런데 그렇게 현실 공간에 등장한 이들은 바로 유비쿼터스 기술로 무장을 하고 나타났다.

이번 행사의 키워드인 '제3의 공간'이 바로 한국의 촛불 집회에서 직접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더구나 이 촛불 집회를 촉발하게 된 계기가 뭔가? 전통적인 정치 이슈가 아니라 바로 과학기술로 인해서 발생한 광우병 위험이었다. 바로 몸의 문제에 대중들이 예민하게 반응하게 시작한 것이다. 바로 제3의 공간에서….

촛불 집회는 과학기술이 가능하게 한 공간에서 바로 그 과학기술 문제를 해결하는 앞으로의 모습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앞으로 이런 흐름이 생산적인 방향으로 계속될 수 있도록 예술가, 과학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특히 교육 과정에 대한 고민이 시급하다.

과학과 예술의 적극적 교류 모색
▲ 이명현 교수는 결론적으로 "열린 과학자의 예술가의 소통이 필요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런 노력이 대중과 교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레시안

이명현 : 전문가를 조직하는 얘기를 좀 더 해보자. KAIST에서 최근 인문학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KAIST의 구성원은 이런 예술과 과학기술의 만남, 이런 데 적극적인가?

양현승 : 물론 여전히 다수는 자기 연구 분야에 우선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 다만 과학기술 내 분과별 융합이 필요하다는 데는 모두가 다 동의하고 있고, 최근에는 그런 융합 연구소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예술과 과학기술의 소통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더욱더 확산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심광현 : 예술 쪽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과학기술자와 비교하면 예술가는 이런 문제에 더 관심이 없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구성원 역시 아직은 각자 자기 분야의 일을 하기가 바쁘다. 다만 조금씩 변하고 있긴 하다. 우선 한국예술종합학교만 놓고 보면, 내부적으로 두 가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우선 올해부터 포스텍과 교류를 시작했다. 우리가 '예술 산책'이라는 과목을 그 쪽에 개설하고 15명의 교수가 내려가서 강의를 한다. 포스텍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과학 산책'이라는 과목을 개설해 분야별로 15명의 과학자가 온다. 내년부터는 아예 포스텍 기술경영대학원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대학원이 공동 학위 제도를 운영할 예정이다.

이런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 과정의 재구성이 진행되리라고 생각한다.

열린 과학자와 예술가의 소통이 필요…제도권 교육으로 수렴돼야

이명현 : 그런 작업이 방향성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미국은 '예술과 과학기술'이 굉장히 상업적인 성격을 띠고 나가는 반면, 린츠는 도시 전체를 공공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 식으로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양현승 : 일본의 경우는 1990년대에 교육, 연구가 활발했다. 그러다 일본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교육, 연구가 많이 위축되었다. 대신 게임, 애니메이션처럼 당장 돈과 연결되는 콘텐츠 쪽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방금 지적한 대로 미국 쪽도 아무래도 콘텐츠 쪽이 좀 더 강하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유럽이 가장 앞서가는 것 같다. 예술과 과학기술의 소통, 이런 걸 선도하고 있으니까. 여러번 언급됐던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그 대표적인 예일 테고. 한국도 앞으로 이 분야에서 어떤 주제를 앞세워 선도해 나갈 것인지, 이런 걸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기관보다 앞서 나가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비교적 밀도 있는 활동을 전개해 나가는 것 같아 고무적이다. 또 앞으로 isAT가 횟수를 거듭하면 한국이 예술과 과학기술의 소통과 관련된 여러 가지 교육, 연구를 선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심광현 : 우선 한국은 어떤 나라보다 IT 인프라스트럭처가 잘 돼 있다. 이런 게 앞으로 과학기술과 예술의 소통을 염두에 둔 다양한 시도를 할 때 큰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풍류' 이런 걸 이런 소통의 촉매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풍류'라고 하는 미학적 전통이 있다. 자연과의 공감을 전제로 자연 속에서 공생을 하는 것일 텐데, 이런 풍류의 미학과 유비쿼터스 기술을 어떻게 연결시킬까, 이런 게 지금 나의 화두다. 이런 화두를 통해서 과학기술 시대의 대안적 삶의 양식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명현 : 앞으로도 열린 과학자와 예술가의 소통이 필요하고, 이런 소통을 위한 노력이 시민에게 호응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시도가 계속돼야 할 것 같다. 이번 isAT도 그런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또 가까운 미래 안에 그런 결과물이 교육 과정과 같은 제도권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같이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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