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현재 위기, 과연 대공항으로 치달은 것인가 영화계 내부의 노력으로 돌파할 수 있는 일시적 위기인가.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가 한창 열리고 있는 가운데 아시아영화연구소와 부산 영화과 교수협의회는 작년에 처음 시작해 올해 두 번째로 부산국제영화컨퍼런스를 준비하여 '전환기, 한국 영화산업의 현황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첫 세미나를 4일 오후 그랜드 호텔에서 개최했다. 아시아영화연구소 소장이자 경성대 연극영화학과의 교수인 김진해 씨가 사회를 맡아 진행된 이번 컨퍼런스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강한섭 위원장과 부산시 김형양 문화체육관광국장이 발제를 맡았고, 경희대 이효인 교수, 동국대 영상대학원 차승재 학장, 동의대 김이석 교수, 그리고 동서대 구종상 교수가 토론자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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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경희대 이효인 교수, 동국대 영상대학원 차승재 학장, 영화진흥위원회 강한섭 위원장, 사회를 맡은 경성대 연극영화학과 김진해 교수, 부산시 김형양 문화체육관광국장, 동의대 김이석 교수, 동서대 구종상 교수 ⓒ프레시안무비 |
강한섭 위원장은 "한국영화는 현재 일시적인, 혹은 계절적인 위기가 아닌 대공황 상태"라고 진단하고 이를 돌파하기 위해 각각 시간, 공간, 인간의 전략을 제시하며 "한국영화를 재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간의 전략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속선상으로 파악해야 하며, 이를 위해 새로운 매체에만 열광할 것이 아니라 비디오와 DVD로 대표되는 붕괴해버린 부가판권 시장을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역과 한반도, 아시아, 전세계를 하나의 동일한 무대로 삼아야 하며 이를 위해 한국은 '아시아 영화의 허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프랑스의 국립영화기관인 훼미스(Femis : Fondation Européenne pour les Métiers de l'Image et du Son, 이미지와 비주얼 작업을 위한 유럽 재단)가 프랑스만이 아닌 유럽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선례를 본받아 한국영화아카데미 역시 아시아영화학교로 개편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인간 전략으로서 아시아 전체의 인재들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한편 독과점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2년 전 영화 <괴물>이 스크린을 68% 독점했던 사실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 과정에서 강한섭 위원장은 지난 2, 3기 영진위를 담당했던 이들을 "소위 진보를 자처하며 과거와는 분절된 채 오지도 않은 미래만을 그리며 현재를 내팽개쳤으며, 영화를 국가간 경쟁으로 생각하며 한국을 5대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수사를 전면에 내세운 채 스크린 독과점을 방치하고 방조한 얼치기 진보주의자, 가짜 자유주의자"라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강 위원장은 영화는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진보와 보수, 자유주의자 등 정치적인 어휘를 사용해 이전 영진위가 "공급 확대 정책만을 추진하며 블럭버스터를 양산하고 독과점을 방치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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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영화진흥위원회 강한섭 위원장, (오른쪽)경희대 이효인 교수 ⓒ프레시안무비 |
이에 대해 전 영상자료원 소장이기도 했던 이효인 교수는 "'재발명'은 모호하고 추상적인 구호가 아닌가"고 문제를 제기한 뒤 모든 산업에 일정한 주기가 있는 만큼, 지금의 상황은 85년 배창호, 장길수 감독의 영화들이 흥행했던 때로부터 2005년까지 호황기를 맞았다가 퇴조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 반박했다. 차승재 학장 역시 "구체적인 정책을 제안하지 못한 채 수사만 남발하고 있다"며 비판한 뒤, 전 영진위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발언을 요구했다. 또한 스크린 독과점이 오히려 헐리웃 블록버스터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음에도 굳이 <괴물>을 비판하는 것은 스크린 독과점을 문제삼기보다는 영화 자체에 대한 비판은 아니냐며 반박했다. 차승재 학장은 "시스템이 붕괴가 되어야 대공황인데 아직 시스템이 붕괴됐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한 뒤, 영화계 수익이 감소한 것은 물가가 급격하게 상승한 반면 극장요금은 제자리에 묶여있기 때문이라며 극장요금 인상 등을 통해 충분히 풀어나갈 수 있는 문제라고 소신을 밝혔다. 강 위원장의 발제에 대한 비판은 동서대 구종상 교수에게서 가장 강하게 나왔다. 그는 강 위원장이 영진위 위원장으로 이 자리에 참석했음을 지적하며 "새로운 영진위가 출범한지 5개월이 지났음에도 영진위의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 없이 2월에 작성된 기고문을 발제문으로 제출한 것은 지금의 위기를 짚는 데에 전혀 적절한 자료도 아니며 매우 불성실한 자세"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영진위가 부산의 영상정책에 대해 별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며 강하게 불만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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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동서대 구종상 교수, (오른쪽)부산시 김형양 문화체육관광국장 ⓒ프레시안무비 |
한편 김형양 국장은 참여정부 때부터 지금의 정부까지 부산이 아시아의 영상중심도시로 책정된 만큼 이를 기본 기조로 한 부산의 영상정책을 자세히 소개했다. 아시아 전체를 겨냥하여(Asia) 문화와 산업을 모두 육성하며(Both), 산업의 집적화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Cluster)는 이른바 'ABC 전략'을 제시하는 한편,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부산영화제가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해야 하며, 이를 위해 부산영화제 재단이 설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지난 10월 2일 착공식을 가진 영화제 전용상영관 '두레라움'의 조감도도 공개했으며, 중앙정부가 약속한 대로 현재 남양주에 있는 종합촬영소를 하루빨리 부산으로 이전할 것을 촉구했다. 부산시에서는 이를 위해 이미 부지와 예산을 모두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 김국장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동의대 김이석 교수와 동서대 구종상 교수는 공통적으로 입을 모아 수도권에만 지원이 집중된 채 지방과 격차를 보이고 있는 현상을 강하게 비판했다. 김이석 교수는 부산시의 영상정책에 대한 의지를 높이 평가하는 한편, 지방에서 영화에 매진하고 있는 영화인들의 열악한 상황을 강조했다. 중앙정부의 정책들이 하드웨어에 대한 투자에만 집중될 뿐 지방의 영화인들에 대한 지원은 도외시하고 있다느 것이다. 구종상 교수는 "부산의 영상정책은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앙정부와 영진위의 의지와 실천의 문제"라고 전제하고, 강한섭 위원장에게 부산의 영상정책에 대한 소신을 확실하게 밝혀줄 것을 요구했다. 또한 영진위가 영화진흥기금 중 250억을 다양성문화복합상영관이라는 '극장'에 투자하기로 한 것과 관련, 두레라움에는 왜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인지 질책하기도 했으며, 공공기관 이전과 특별법 등에 대해 영진위의 강한 의지와 실천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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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경성대 연극영화학과 김진해 교수, (오른쪽)동의대 김이석 교수 ⓒ프레시안무비 |
이에 대해 강 위원장은 2012년까지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등급위') 등이 이전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차근히 준비중이라고 공언했다. 다만 영진위는 문화관광부 산하의 기관인 만큼, 문광부에서 결정되지 않은 사항에 대해 함부로 말을 할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한편 객석에서는 강 위원장에게 "스크린쿼터가 반 토막이 날 때부터 충분히 예상됐던 상황 아니냐"며 영화시장을 확대하고 유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이 무엇인지 질문이 나왔다. 그러나 강 위원장은 스크린쿼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영화시장 활성화에 대해 공급확대 정책을 유지하되 투자 활성화를 하겠으며, 특히 DVD 시장과 다운로드 시장을 확장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한 과거와의 연계를 위해 10.27 영화의 날을 화합의 날로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구체적인 정책의 청사진은 곧 문화관광부와 최종 토론이 있을 예정이므로 10월 중 발표될 것이라 밝혔다. 토론이 끝난 뒤 차승재 대표는 "한국영화의 정책을 결정하는 기관의 수장인 만큼 위원장을 너무 흔들어서는 안 된다. 다만 구체적인 정책이 발표되고 나면 여기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평가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토론 당시 나왔던 극장요금 인상이 올해 안에 반드시 성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날의 토론은 한국영화의 위기가 정확히 어떤 원인을 가지고 있고 이에 대해 어떻게 전략을 세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토론이 부족한 채 마치 지금의 위기가 지난 2, 3기 영진위의 잘못으로만 전가되는 듯 해 아쉬움을 남겼다. 예를 들어 스크린 독과점과 관련해서 가장 큰 원인이라 할 수 있는 투자부터 제작, 배급, 상영까지 대기업의 수직계열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는 피상적인 문제제기에만 그쳤을 뿐 구체적인 토론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스크린 독점의 주요 원인으로 <괴물>이 지목되는 것도 의아한 대목이다. '영화정책이 이념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강한섭 위원장이 이념에만 근거해 '얼치지 진보, 자유주의자, 리베러테리언' 등 정치적인 용어들을 자주 사용하고 과거 영진위 및 소위 '진보세력'에 대해 '그들만의 이너서클'이라며 과격한 비판에만 집중함으로써 '이념 탈피'의 주장이 무색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김진해 교수는 오늘 본지와 가진 전화인터뷰에서 어제의 컨퍼런스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임을 전제한 뒤 "지난 세월 동안 한국영화가 양적, 질적으로 모두 성장한 건 사실이다. 과거의 성과를 모두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의견을 밝혔다. 다만 근래의 개봉작들 중 창의적인 내용이 없이 범작들만 쏟아진 것은 영화인들 스스로의 반성이 필요하며, 이에 대해 일종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 한국영화에서 대기업이 주로 배급을 중심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분명 성과도 있고 폐해도 있다. 이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아울러 부산영화제가 다양한 학술포럼을 통해 담론이 형성되고 활성화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컨퍼런스의 2부에서 주로 제기된 공공기관 이전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토론의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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