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모든 것을 챙기는 만기친람(萬機親覽 : 친히 모든 정사를 보살핌)형 리더십을 보여줄지 모르겠고, 이 경우 대통령과 방사형으로 연결된 각 부처는 당·정간 소통과 협의는 도외시한 채 방사형 조직의 정점에 서 있는 대통령에 대한 보고와 결재에 올인하는 분절적 국정운영이 나타날 위험이 크다. 이렇게 되면 국정이 시스템에 의해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과 직접 연결된 일단의 측근들에 의해 반 시스템적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대통령의 통치행위는 말로 표현되므로 대통령의 만기친람 또한 말로 표현된다. 말이 잦아지고 세세하고 직접적인 지시형 어법이 자주 나타나는 것이다.
"학원비가 크게 올라 서민가계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한다. 공교육을 살려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한 중장기적 대책은 꾸준히 추진해야 하지만 당장 서민생활에 부담이 되는 학원비 등 사교육비 경감대책은 별도로 필요하다."
"정부의 개편안은 일각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부자를 위해 감세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세금 체계를 바로 잡기 위한 것이다."
"국내 식품 마약 관련법이 다른 나라에 비해 처벌규정이 약하다. 검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통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어린이용을 먼저 검사했으면 좋겠다. 결과가 나오면 회수를 서둘러 유통을 중지시키는 게 중요하다."
어법의 변화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부분은 언행과 행보의 돌발성과 즉흥성이다. 위의 학원비 관련 발언은 국무회의에서 '예정에 없이' 한 것이고 식품마약 관련 발언 또한 '예정에 없던' 식약청 방문에서 한 것이다. 종부세 관련 발언은 경우가 좀 다른 듯하나 이 또한 여당 내에서 종부세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자 강만수 장관을 따로 불러 긴급지시한 것이었다 하니 사전에 시스템에 의해 잘 준비된 발언이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얼리 버드'가 단적으로 보여주듯 아침형 인간인 대통령은 이른 아침뿐만 아니라 늦은 밤까지 크고 작은 모든 국정현안을 살피고 들여다보고 지시하고 체크한다. 정부정책 중에 대통령의 손때가 묻지 않은 것이 없고 당·정·청 협의에 대통령의 뜻이 실리지 않는 때가 없다. 참으로 모든 것을 직접 감당하는 만기친람의 리더십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렇다면 대통령비서실과 정부와 여당은 뭘 하고 있을까.
대통령의 마음에 드는 아이디어도 어쩌다 한 두 번이지 어떻게 매번 대통령보다 반발짝 앞서가는 아이디어, 반발짝 먼저 가는 행보가 가능하겠는가. 한번 뒤처지면 따라가는데도 급급한 법이니 어느 순간 다들 대통령의 눈치나 보고 지시나 기다리는 또 다른 복지부동에 매몰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명박 대통령의 별칭이기도 한 CEO 리더십은 국정운영에서 두 가지 함의를 갖는다. 첫째는 누구나 짐작하듯 경제를 잘 아는 대통령, 실물경제를 잘 알고 경제작동 원리에 정통한 대통령이라는 뜻일 터이다. 이 점과 관련해, 실물경제를 잘 안다고 국가경제를 잘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관전평과 모든 국민의 행복을 목표로 해야 할 국가경영 리더십을 회사의 수익률 제고만을 목표로 하는 기업경영 리더십으로 감당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평가들이 지난 8개월의 국정운영을 보면서 나오고 있는 정황도 모두 다 알고 있을 듯하다.
이 점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되짚어볼 철학적 논점이나 오늘의 주요관심은 아니다. 오늘의 주요관심은 만기친람과 시스템의 문제 즉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기업경영과 같은 시스템 경영으로 국가 경영을 해 나갈 것이라는 기대가 CEO 리더십이라는 별칭 속에 내재해 있었다는 대목이다.
민주화시대를 이끌어왔던 김영삼·김대중 씨의 국가경영에서 시스템적 경영보다는 양김의 카리스마와 인치적 통치를 경험한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주창한 CEO리더십이 합리적 역할분담과 성과주의에 입각한 객관적 평가로 이루어지는 시스템 경영을 통해 우리 정치를 업그레이드 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음직 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표방한 '탈여의도 정치'에 대한 지지가 적지 않았던 것도 이런 사정을 반영한 것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의 CEO리더십이 방사형 경영으로 구체화되고, 그것이 만기친람형 국정운영으로, 다시 말해 돌발적 즉흥적 행보와 언행의 일상화로, 세세한 구체 지시형 어법의 일상화로, 그리하여 반(反)시스템적 국정운영의 일상화로 구체화되는 과정은 CEO리더십 구현을 통한 한국 정치의 업그레이드와 새로운 국가경영스타일의 창출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참기 어려운 CEO리더십의 추락과 변용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들은 이쯤에서 너무 늦지 않게 대통령의 리더십과 국정운영 스타일 전반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대통령의 리더십이 의욕과잉과 조급함 때문에 만기친람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로 인해 관료사회가 또 다른 복지부동으로 돌아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무엇보다도 CEO리더십과 시스템적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더 큰 실망으로 돌아서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국정운영의 1차 분기점은 뭐니뭐니해도 지도자의 리더십 스타일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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