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영화에 나올 법한 일이 현실에서 벌어졌다. 오히려 어지간한 영화 시나리오보다 스케일이 크다. 굴지의 재벌과 조직폭력배, MBA 출신 금융전문가가 연루됐다.
하지만, 사건을 촉발한 재료인 재벌 회장의 거액 개인 자산에 대해서는 석연치 않은 대목이 많다. 삼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거액 자산은 차명계좌로 관리 됐으며 세무 당국에 신고 되지 않았다. 심지어 사건이 일부 드러난 뒤, 재벌 그룹 측이 내놓은 해명까지 삼성과 닮았다. 사건 개요는 이렇다.
CJ 이재현 자금, 전직 조폭에 맡겼다…"사채업, 사설 경마로 돈 불려달라"
미국 유명 대학 MBA 출신인 이 모 씨는 지난 2002년 CJ그룹에 입사했다. 촉망받는 엘리트였던 그는 지난 2005년 그룹 자금팀장을 맡으면서,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개인 자금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CJ 이 회장의 개인 자금은 차명계좌에 분산돼 관리돼 왔다. 그 가운데 이 씨가 관리한 자금은 약 400억 원.
이런 이 씨가 지난 2006년 연예기획사 대표를 지낸 안 모 씨를 통해 전직 조직폭력배 박 모 씨를 소개받았다. '대전사거리파'라는 폭력조직 출신인 박 씨는 이 씨가 재벌 회장의 개인 자금을 관리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 씨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박 씨는 이 씨에게 사채업, 사설 경마 등에 투자하도록 꾀었다. 조폭이 개입돼 있는 이들 업종의 높은 투자 이익률에 몸이 달았던 이 씨는 자신이 관리하던 CJ 이 회장의 자금 가운데 약 180억 원을 떼어내 박 씨에게 맡겼다.
CJ 자금팀장, 돈 떼먹은 조폭 살해하려다 거꾸로 협박당해
하지만 박 씨는 이 씨에게 받은 돈을 불리기는커녕, 80억 원을 떼먹었다.
그러자 이 씨는 지난해 5월께 폭력배 정 모 씨, 윤 모 씨에게 박 씨를 살해해 달라고 청부했다. 같은 달, 폭력배 정 씨는 동료 2명과 함께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오토바이 '퍽치기'를 위장해 둔기로 박 씨의 머리를 때려 살해하려다 실패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났다. 폭력배 윤 씨가 나섰다. 윤 씨는 동료 1명과 함께 박 씨를 납치해 전북 익산의 한 아파트에 감금했다. 하지만 박 씨를 죽이지는 않았다.
여기서부터 상황이 뒤집혔다. 아파트에 감금된 박 씨는 자신을 살해하려던 정 씨와 윤 씨 등을 회유했다.
"CJ 회장의 자금을 관리하는 이 씨를 협박해서 더 큰 돈을 뜯어내자"는 것.
차명계좌 속 CJ 자금, 경찰 수사 뒤에야 세금 신고…삼성 의혹과 닮은꼴
이 씨가 관리하는 자금이 외부에 떳떳하게 드러낼 수 있는 돈이 아니라는 점, 이 씨가 살인을 교사했다는 점 등을 약점으로 잡기로 했다.
실제로 이 씨가 관리한 차명계좌 속에 담긴 이재현 회장의 자금에 대해서는 세금이 제대로 부과되지 않았다. 경찰이 관련 수사에 착수한 최근에야, 이 회장 측이 세무당국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CJ 측은 이 돈이 회삿돈을 유용해 조성한 불법 비자금은 아니며, 선대 회장에게서 물려받은 돈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 비자금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삼성 측이 취한 입장과 닮았다. 삼성 역시 당시 논란이 된 차명자금에 대해 회삿돈을 빼돌린 게 아니라 이병철 전 회장에게 물려받은 돈이라고 밝혔었다.
경찰, CJ 뭉칫돈 출처 조사
이런 약점을 잡은 조폭들은 이 씨를 협박했고, 실제로 11억 원 이상을 뜯어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경찰이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를 시작했다. 결국 이 사건에 연루된 조폭 5명이 검거돼 구속됐다. 그리고 이 씨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 씨에 대한 영장은 법원이 기각했다. 경찰은 보강 수사를 진행한 뒤, 영장을 다시 신청할 방침이다.
사건의 발단이 된 이재현 회장의 자산에 대해서도 경찰이 출처를 조사하고 있다. 문제가 된 자금은 이 회장의 개인 자산일 뿐이며 회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게 CJ 측의 해명이다. 하지만 회장의 개인 자산을 차명으로 관리한 것 자체가 이미 문제다. 그리고 선대 회장에게 물려받았다는 해명을 인정한다고 해도, 상속세를 제대로 내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물론, 더 강한 의문은 따로 있다. "수백억 원대 뭉칫돈이 회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이 조성될 수 있는 자금인가"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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