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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갑남을녀의 소소한 모험담, <멋진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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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갑남을녀의 소소한 모험담, <멋진 하루>

[뷰포인트] 전도연, 하정우 주연의 <멋진 하루> 리뷰

헤어진 후 일 년만에 다시 만난 남녀라면 아직 상대가 나한테 미련이 남아있나, 혹시 새로운 연애를 하고 있나, 새로운 연애상대는 나보다 더 멋지거나 예쁜 사람이 아닐까 따위의 속물적인 호기심과 거기서 기반한 심리싸움도 할 법하다. 혹은 과거의 일을 끄집어내 누가 더 잘못했니 잘했니, 누가 오해를 했니 아니니 싸우거나. 그러나 병운(하정우)과 희수(전도연)는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 하다. 희수는 일 년 전 꾸고 갚지 않은 돈 350만원을 반드시 받아가겠다고 버티고 있고, 병운은 자신이 아는 여자들을 찾아가 야금야금 돈을 꿔서 그녀의 돈을 갚겠다 한다. 아니, 어쩌면 사전 연락 한 번 없이 무턱대고 그를 찾아가서 돈을 받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겠다고 우기는 희수나, 굳이 돈을 받아가라며 희수를 대동하고 다른 여자들을 찾아다니는 병운의 행동 자체가 이 심리게임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기 위한 명분 혹은 수단인지도 모른다.
멋진 하루
그러므로 병운에게 연신 귀엽다고 감탄사를 내뱉으며 돈을 꿔주는 50대 여사장이나 호화스런 맨션에서 희수에게 굳이 '알현'을 요구하며 까칠하게 대하는 밤의 직종을 가진 아가씨나, 병운과 초등학교 짝꿍이었다는 마트의 비정규직 이혼녀 친구를 보는 희수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병운은 무사태평에 속 좋은 소리만 한다. <멋진 하루>는 다짜고짜 경마장으로 찾아가 돈 갚으라 말하는 희수의 모습으로 시작해 하룻동안 두 사람이 서울 시내 곳곳을 헤매며 병운이 희수를 대동해 돈을 꾸러 다니는 여정을 따라간다. 두 사람이 과거에 어떤 사이였는지, 두 사람 사이에 그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헤어져 있던 일 년간 각자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밝혀지는 것도 그 여정을 통해서다. 영화는 대단하게 극적이지도, 대단한 선남선녀도 아닌 인물들의 어떤 하루를 마치 다큐멘터리를 찍듯 세심하고 그려나간다. 하지만 평범한 인물의 지지부진한 디테일을 다루는 영화들 다수와 달리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는 따뜻한 온기를 가진 영화다. 이 영화는 두 사람이 하룻동안 서울 시내 곳곳을 다니는 작은 모험영화이자, 영화의 첫머리에서는 별로 믿음직해 보이지 않는 병운이 실은 어떤 사람인지 찬찬히 밝혀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하정우가 연기하는 병운은 워낙 넉살좋고 능글맞으며 잘 비비는 데다, 다양한 나이와 직업의 무수한 여자들과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수상쩍은(!) 캐릭터다. 게다가 헤어진 일 년간 결혼도 이혼도 사업실패도 했단다. 얼핏 보기엔 분명 이전에 하정우가 <비스티 보이스>에서 맡았던 재현과 충분히 겹쳐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병운은 재현과 완전히 다른 캐릭터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하정우는 그런 병운의 성격을 매우 매력적으로 그려낸다. 희수가 병운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는 것도 바로 그가 가진 성격의 밝고 낙천적인 에너지 탓일 것이다. 내내 단호하고 까칠한 표정이었던 희수는 병운의 지인의 딸을 찾기 위해 들어선 여중 교정에서 처음으로 웃음을 보인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이 일 년간 살아온 얘기를 툭, 하고 털어놓는다.
멋진 하루
내내 티격태격하던 두 남녀의 작은 모험을 지켜보면서, 요란스럽고 호들갑스러운 웃음은 아니더라도 어느 순간 깨닫고 보니 몸을 모두 녹여준 온기 같은 걸 느꼈다면, 그건 전적으로 병운이라는 인물이 가진 매력과 에너지 때문이다. 희수는 말하자면 병운이라는 인물의 성격 탐험에 매우 적절한 가이드인 셈이다. 아쉬운 건 서울 시내 곳곳을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마치 제3의 주인공처럼 등장하는데도 정작 서울의 표정은 그다지 잘 살아있지 않다는 것. 그럼에도 이 영화가 매력적인 것은 두 캐릭터와 이를 자연스럽게 연기해낸 배우들, 그리고 섣부른 개입없이 이들의 하루를 담담하게 따라가는 카메라, 그리고 시퀀스 하나가 마무리 될 때마다 깔리던 소박한 재즈풍의 곡들 덕이다. 평범한 갑을남녀의 소소한 모험을 나름대로 '멋진' 하루로 영화 속에 그려냈다. 9월 25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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