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불법 파견 건에 대해 정반대의 엇갈린 판결을 내려 온 하급심의 혼란을 대법원이 말끔하게 정리한 것이다. 이날 판결은 코스콤 비정규직 등 현재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는 각종 사업장의 소송 결과에도 막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1심·2심과 달리 "불법파견에도 파견법 적용 가능"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대법원장 이용훈, 주심 대법관 김지형)는 18일 옛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파견법)이 허용하고 있는 26개 업무 이외의 업무에 파견된 노동자도 2년 넘게 일했다면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는 용역업체 소속으로 도시가스 소매업체인 (주)예스코에서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일했던 이모 씨(30)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 따른 것이다. 대법원은 이날 원고 패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이 씨 등은 총 5년 7개월 동안 이 업체에서 일을 했지만 소속은 계속 바뀌어 왔다. 지난 2005년 11월 30일 이 업체가 이들에게 해고 통보를 했고 이들은 서울지방노동위와 중노위에 차례로 구제 신청을 했으나 모두 기각 당했다. 끝내 이들은 중노위 위원장을 상대로 '부당해고 및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을 낸 것이다.
이 씨 등의 주장은 "파견 근무 기간 2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사용 사업주 즉 원청이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하는 파견법을 우리에게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1심과 2심 재판부는 불법 파견은 인정하면서도 파견 허용 업무가 아닌 곳에서 파견 근로자를 사용한 만큼 파견법을 적용할 수 없다며 이들의 요구를 거절했었다.
"불법 파견이라고 파견법 적용 안 된다는 주장은 입법 취지와 위배"
하지만 대법원은 "파견의 상용화와 장기화를 방지하고 그에 따른 파견 근로자의 고용 안정을 도모한다"는 파견법의 입법 취지에 무게를 두고 하급심과 다른 판단을 내렸다. 비록 파견법에 명시된 업무가 아니라 할지라도 실제 파견의 형태로 일해 왔다면 똑같이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1심과 2심의 결론대로라면, 파견법을 위반한 사업주가 오히려 직접 고용 성립의 부담을 지지 않는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처음으로 대법원이 불법파견에 대한 고용의제 적용에 대해 판단을 내린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 동안 비슷한 경우의 사건에 대해서 대법원이 "위장도급이니 원청이 사용자"라는 판결을 내린 적은 있지만, 불법파견에도 파견법을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는 가리지 않았었다.
노동계 "'상식' 확인한 판결…도급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더 중요"
노동계는 "당연한 상식을 대법원이 너무 늦게 확인한 것"이라며 반겼다. 민주노총은 "간접 고용 형태를 이용해 고용관계상의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로 의미가 있다"며 "최근 현대미포조선에서도 위장도급의 경우 직접 근로관계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는 등 중간착취를 위해 불법파견을 남용하는 사용자에 대한 대법원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고 환영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더 중요한 문제는 도급계약으로 고용관계를 회피하는 것을 엄격하게 막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용자가 외형을 바꿔 파견이 아닌 도급의 형태를 띨 경우에는 현행법상 합법이 돼 이 같은 대법원의 판단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간접고용에서 도급계약은 아주 엄격한 요건 아래서만 인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지난해 7월 새로 바뀌어 시행된 파견법에는 이미 직접 고용된 것으로 보는 '고용 의제' 조항 대신 한 단계 낮은 '고용 의무'가 들어가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고용 의무를 사용자가 고의로 이행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민주노총은 "현행 파견법도 파견 노동자가 고용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사용자를 상대로 '고용 의무 이행 청구' 등 사법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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