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한국인의 비일상적 행동과 정치적 시간을 설명할 때, 가장 유용한 것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기다'가 아닐까 싶다. 특히 그 중에서도 '알아서 기다'는 정말이지 중요한 고리이다. 한국 사회에서 '기다'는 단순히 행위를 설명하는 표현이 아니라 비일상의 안팎 모두를 설명하는 정치의 핵심 기호이다.
방문화의 도래가 공동체 우선의 문법이 개인 우선의 문법으로 전환되던 1990년대 중·후반에 작렬했듯이, 알아서 기는 정치는 '목적' 지향의 사회에서 '수단' 지향의 사회로 급격하게 방향을 전환하고 있는 2000년대 후반에 만개하고 있다. 바야흐로 알아서 기는 재주를 뽐내기에 여념이 없으신 분들의 광폭한 포복 행렬이 장관이다.
알아서 기기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드러날 때쯤, '방'이 그랬듯이 그것은 한층 퇴폐적이고 음란해질 것이다. 가장 현란하게 낮게 그리고 더 웅크리고를 몸소 실천하는 선도적 수행으로 알아서 기는 정국의 초반 레이스를 이끌고 있는 신묘한 재주꾼들에 주목해봤다.
MBC 엄기영 사장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감히, 뉴스 역사의 산증인 가운데 하나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엄기영 전 문화방송(MBC) <뉴스데스크> 앵커(현 MBC 사장)가 남긴 불세출의 한 문장이다. 그 한 문장에는 유람선이 가라앉고, 백화점이 무너지고, 다리가 끊어졌던 우리들의 일그러진 시대가 함축되어 있었다.
한 때, 엄기영은 그 일그러진 시대를 전달하는 다소 격앙됐지만 믿음이 가는 전달자였다. 그런 그가 MBC 사장이 됐을 때, 남몰래 흐뭇한 감정을 가졌다. '회사의 미래를 위해, 회사 구성원들과 함께 MBC의 르네상스를 위해'라고 외쳤던 그의 구호가 특히 괜찮아 보였다. 무릇 선배라 함은 어른이라 일컬어지려면 그 정도 호연지기와 낭만은 보여줘야 한다.
특히, 언론사 경력이 국회의원 배지와 바로 바꿔지는 시대에 "정치권에 입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평생 언론인으로 남겠다는 그의 소박함이 무엇보다 괜찮게 보였었다.
그런데 웬걸,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MBC 엄기영 사장은 만든 이가 사과할 것이 없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회 송출이라는 전문가(?)적 방법으로 <PD수첩>에 대한 사과 방송이라는 싹수없는 짓거리를 자행 하더니, <PD수첩>의 책임자였던 조능희 CP와 송일준 PD의 보직을 해임하고 평 PD로 발령하더니, 끝끝내 시사교양국장마저 전격 교체해버렸다.
엄기영 사장의 행보는, 알아서 기는 행위는 굴종하는 기술의 'ABC'를 잘 보여준다. '2MB가 날 덮어놓고 때리려 한다. 저항을 해야 할까? 저항은 무슨, 자존감은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일단, 급하게 허리부터 굽힌다. 살짝 눈치를 살피다가 덥석 무릎까지 꿇는다. 그래도 안 되면 두 손까지 모아 싹싹 용서를 빈다. 그리하면 나의 신체는 무탈하고 자리는 보존된다.
물론, MBC 전체가 비굴을 택한 것은 아니다. 모든 역사가 그러하듯 MBC에도 정반합은 살아있다. <PD수첩>에서 잘린 이춘근, 김보슬 PD가 서서 살겠다며, MBC에서 꼿꼿하게 버티고 있다. 그리고 그 버팀을 MBC 노조가 온 몸과 마음으로 지켜내고 있다. 촛불에서 'MBC! MBC!' 외쳤던 것이 단순한 '구호의 추억'으로 정리될 게 아니라면, 엄기영의 MBC가 아니라 권력과 교전하고 있는 우리의 '마봉춘'을 다시 한 번 지켜줘야 한다.
방송 5사의 '단체로 기는 놀이'…막판에 시청률 택한 SBS
오늘 밤 10시가 되면, 졸지에 국민들은 '대통령과 대화'를 해야 한다. KBS, MBC, OBS 등 지상파 3개 채널과 YTN, mbn 등 보도전문 케이블 채널 2개에서 생중계를 한다니 대화를 피해갈 방법은 거의 없어 보인다. 아예 TV를 끄거나 그래도 울화통이 나서 견딜 수 없다면 TV가 중계되지 않는 한적한 야외로 나가서 울분의 소주 '병나발'이라도 들이켜야 한다.
미디어 정치가 본격화 된 이후에 대통령이 직접 국민과 대화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형식의 TV 프로그램은 오래되고 상투적인 아이템이다. 형식적 제스처라 함은 그것이 사전에 철저히 연출된 프로그램이란 뜻이고, 상투적 아이템이라 함은 상투성을 뛰어 넘는 드라마, 리얼리티 쑈에 비해 시청률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뜻일 게다.
현재 시각, 한국은 전 세계 미디어 시장의 선도적 리트머스지이다. 6,70년대 처럼 'TV에 나오는 사람은 TV에서 진짜로 살고 있데'하는 문명 낯섦의 괴담은 이미 오래 전에 개그로 문명화화한 첨단 사회란 말이다. '국민과의 대화'라는 낡은 아이템을 국민이 주가 되야 한다며 '대통령과의 대화'로 바꿔 내도 그것이 잘 짜인 '쑈'의 리바이벌이라는 비평을 누구나 할 수 있는 사회란 말이다.
국민과의 대화를 처음 시도했던 김대중 정부 시절 지상파 3사가 그것을 동시 생중계했다가 호된 비판에 휩싸였다. 한 마디로 정리됐다. '전파 낭비'. 그래서 노무현 정부는 국민과의 대화를 한 번에 한 방송사가 중계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늘 자기 얘기만 강하게 늘어놓는 노무현 특유의 화법 때문에 짜증들을 냈었지만, 그래도 대화보다 좋은 민주주의는 없기에, 한 방송사 정도 그것을 중계하는 것은 합리적이었다. 대통령의 떠듦이 듣기 싫은 사람은 다른 걸 보면 그만 이었다. 대화한 모름지기 거기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대화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아주 타당한 권리부터 살피는 것에서.
근데 이건 너무 '극단'적이다. 대화의 가장 큰 그리고 유일한 적은 '극단'이다. 입장의 차이는 대화를 어렵게 하지만, 대화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지는 않는다. 극단을 피하는 것이 최적의 대화술이다. 내가 대화하고 싶은 사람에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만 할 테니 단, 빠짐없이 모두 경청하라는 강압을 대화로 여기는 이는 없다.
그런데 청와대는 물증은 없다지만 강한 심증을 남기며, "주관사인 KBS하고만 생중계를 계획했으나 다른 방송사에서 생중계를 요청해와 어쩔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 절정의 시청률이 보장된 <식객>과 한참 뜨고 있는 <에덴의 동쪽>을 포기하며 SBS와 MBC는 왜 변별력 없는 '대화'를 중계한다고 했을까? 요즘 유행하는 말로 '누구 때문에 그랬을까?'(이 글을 쓰고 난 뒤인 9일 SBS는 <식객>을 방영하기로 결정했다. 편집자)
이건 말도 안 된다. 히틀러가 이랬을까 싶다. 나치즘의 전성기를 선전했던 괴벨스가 울고 갈 판국이다. 만약, 청와대의 말이 사실이라면, '차라리 국민을 바꾸겠다'는 준동을 하고 있는 정부가 제안한 기만적인 대화 제스처에 MBC, OBS, YTN, mbn이 알아서 기었다는 말 밖에 안 된다. 단체로 이렇게 알아서 기는 장관을 연출하니, 이것도 이쯤 되면 기네스북 감이다.
국민은 '봉사'가 아니다
월드컵, 올림픽과 같이 거의 전 국민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이벤트도 '몰빵 편성'은 부적절 하다는 것이 미디어를 향한 공공성의 요구였다. 방송이 이유가 사회의 총체성을 위하여 실존하는 것이라면, 방송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이 곧 국민의 알권리 때문이라면, 방송이 이렇게 정권만을 위한 '봉사'에 나서서는 곤란하다. 결정적으로 거듭 강조하건데, 국민은 '봉사'가 아니다. 눈 트인지 오래됐다.
역시나, 방송사들의 알아서 기는 행태에 대한 질타가 봇물이다. 방송이 시작되기도 전에 조롱은 "질문이 맘에 안 들면 저 구속될 텐데요"일 정도로 농락적이고 질펀하다. 대화라고 명명된 명령을 거부하고 있다. 방송사들은 낮은 포복으로 살며시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지 모르나 낡은 생각,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적외선 열 감지기 같은 첨단 장비가 보급 된 지 오래이다. 국민들은 그 장비를 감각으로 탑재하고 있다.
이번 주 열쇠말로 '알아서 기다'이다. 진지하게 행위를 수행하고 있는 한 명과 대놓고 자빠진 6개의 방송사가 이번 주를 장식한 주인공이다. 문제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 더 많은 놈놈놈과 조직들이 알아서 기는 일에 동참할까? 아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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