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의 역사에서 민심을 얻고 천하를 얻지 못한 자가 없고 민심을 잃고 천하를 잃지 않은 자가 없다. 대통령이 되는 것도 민심을 얻는 데 있고 좋은 대통령으로 좋은 정치를 펼치는 것도 민심을 얻는 데 있다면, 민심이야말로 대통령과 대통령 보좌진들과 대통령이 되려 하는 정치인들 모두가 풀어가야 할 공통화두라 아니할 수 없겠다.
민심을 빙산에 비유할 수 있을까?
민심에 비유될 때, 빙산은 두 가지의 정치적 함의를 갖는다. 하나는 드러난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고, 둘째는 바로 그 빙산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 언제든 배를 엎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빙산의 드러난 부분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드러난 부분도 빙산임에 틀림없고 노련한 선장은 바로 그 드러난 부분을 보면서 물 밑에 감춰진 빙산의 전모를 미루어 짐작해 안전한 항해를 한다. 드러난 민심과 드러나지 않은 민심을 같이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현대 정치학은 수학의 도움으로 이 '민심 읽기' 영역에서 의미 있는 진보를 이뤄냈다. 지역, 계층. 세대. 성 등의 주요 변수들은 물론이고 취미·취향 등 생각 가능한 거의 모든 요소들까지 변수로 놓고 일반 국민의 정치 행태를 교차 조사함으로써 빙산의 드러난 부분. 즉 드러난 민심을 씨줄과 날줄로 촘촘하게 해석할 뿐만 아니라 MRI처럼 드러나지 않은 민심의 심연 깊숙이 있는 정치적 멘탈리티까지 해석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실정치는 왕왕 이 정교한 수학적 정치조사를 비웃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행위자들의 의지적 결단이 어느 부문보다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탓도 있지만 수많은 행위자들의 작은 결단들이 만들어내는 나비효과가 어느 영역보다 크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정치학을 계속 과학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한탄이 나오는 것도 현실 정치의 이러한 가변성과 불가측성 때문이다.
정치학을 윤리학과 제왕학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데려나온 마키아벨리도 정치를 양측면, 즉 포르투나와 비르투 두 가지를 같이 보아야 한다고 했다. 더 나아가 그 중에서도 주어진 환경 즉 시운까지 바꾸어갈 수 있는 비르투, 군주의 의지와 결단을 더 강조했다. 마키아벨리에게도 정치는 끊임없이 흐르고 변화하면서 때로는 운명을 넘어서기도 하는 역동적인 움직임이었던 것이다.
민심과 정치지도자의 관계는 민심의 불가측성과 지도자의 의지적 선택의 유동성이 직접적으로 부딪친다는 점에서 정치 역동성의 근원이 된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정치는 어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드라마를 연출한다. 난세가 영웅을 만들어 내고, 세치 혀가 천하를 움직이며, '아직도 배가 열두 척이나 남았고, 저(순신) 또한 죽지 않았습니다.(尙有十二 舜臣不死)'라는 지도자 한 사람의 담대함이 전쟁의 흐름을 바꿔놓기도 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민심잡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내일 <국민과의 대화>가 잘 되면 이어지는 추석연휴를 통해 추석 민심이 좋게 형성될 것이고, 그 흐름을 타고 국정운영에서 대통령 주도성을 강화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낙관적 전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그러나 "듣는 시간을 많이 갖는 <대화>가 되도록 하겠다"는 청와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국민과의 대화: 질문 있습니다>라는 제목에서부터 질문하는 국민보다는 답변하는 대통령에게 일방적으로 포커스가 맞춰질 것이라는 비판적 전망이 우세하다.
더 나아가 장미란, 이용대 선수를 질문자로 세우는 게 어떠냐는 청와대의 '아이디어'가 편집권에 대한 사실상의 간섭과 압력 아니냐는 논란까지 만들어버린 작금의 상황을 감안하면 과연 이번 <국민과의 대화>가 민심을 잡기위한 출발이 될지 또 한 번 민심과 멀어지는 '사연 많은 대화'가 될지는 쉽게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가 힘을 좀 받는다고 느끼는 순간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 논란', '한반도 대운하 논란', '기득권 편중 감세안' 논란 등을 보면 과연 이 정권이 민심을 염두에나 두고 있는 정권인가라는 원초적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드러난 빙산을 보면서 드러나지 않은 빙산의 엄청난 파괴력을 경계하는 노련한 선장처럼, 드러난 민심을 보면서 드러나지 않은 민심을 깊이 헤아리고 무겁게 받드는 정치 지도자를 보고 싶다. 세상을 이겨 낼 비르투의 역동성도 물 아래 잠겨있는 빙산의 몸통 같은 민심의 바다와 만날 때 진정으로 포르투나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지 않겠는가. 민심의 바다에서 나라의 미래를 열어가는 '정신력 강하고 비르투가 풍부한' 리더십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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