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확인한 지식경제부의 '에너지·자원 공공 기관 선진화 방안'을 보면, 정부는 "원자력 발전소 산업 여건 조성 등을 감안해 경영권 매각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원자력 발전소는 설계(한국전력기술), 운영(한국수력원자력)만 공기업이 맡고 있다. 한국전력기술을 매각하면 사실상 원자력 발전소 전체를 민영화하는 물꼬를 트는 셈이다.
그러나 이런 계획을 놓고 환경단체 등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계획"이라며 "원자력 발전소를 10여 기를 지어야 하는 정부가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자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전력기술은 이미 1970년대 민간 기업이 지분의 48%를 가진 적이 있으나 연구개발(R&D) 비용을 감당 못해 다시 정부가 지분을 인수해야 했다.
원자력 설계 기술 가진 KOPEC 지분 49% 매각 추진
현재 한국전력기술은 한국전력공사가 전체 지분의 98%, 한국원자력연구원이 2%를 갖고 있다. 이 가운데 정부는 최대 49%의 지분을 매각할 계획이다. 인천국제공항과 똑같은 수준이다. 정부는 "지분 49%까지만 우선 매각을 추진하되 중장기적으로 기술 자립, 해외 진출 등을 고려해 추가 매각을 추진한다"는 장기적 민영화 전략을 세웠다.
현재까지는 지분 매각 시 5대 건설사 등 특정 기업의 배제 여부를 놓고 지식경제부와 기획재정부가 입장 차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 부처가 모두 1차로 매각되는 20%의 경우 국민주 형태로 매각을 추진한다는 데 긍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추가 매각되는 29%에서 의견이 갈리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추가로 매각되는 지분에도 특정 기업군, 즉 5대 건설사의 참여를 배제해야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기획재정부는 특정 기업의 참여를 막을 수는 없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이 같은 입장 차가 최종 발표될 3단계 방안에서 어떻게 조율돼 공개될지는 예단하기 이르지만 대체로 기획재정부 입장이 반영될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이미 정부가 한국전력기술의 민영화 계획을 세운 마당에, 건설사의 지분 인수 참여를 배제하는 것은 민영화 취지와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소 투자" 자본에 보내는 '신호'…성공할까?
이명박 정부는 2030년까지 국내에 10여 개의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이다. 이런 계획대로라면, 건설업체 등 특정 기업이 한국전력기술의 지분을 인수해 설계부터 건설까지 원자력 발전소 사업을 독점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
정부가 한국전력기술을 팔아 넘기려는 것도 이런 연건을 조성해 국내외 자본의 투자를 유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약 10여 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데는 약 30조 원의 예산이 들 전망이다. 결국 민간 투자를 유치하지 않고는 이런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계획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국전력기술까지 덤으로 시장에 내놓은 것.
그러나 이런 계획을 놓고 대다수 원자력 전문가는 회의적이다. 한 원자력 산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도 정부가 원자력 발전소 민영화 계획을 검토했지만 인수할 대기업이 나서지 않아서 무산된 적이 많다"며 "한국전력기술도 1970년대에 민간 기업에 지분을 넘겼던 적이 있지만 결국 정부가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본부 양이원영 부장도 "1990년대 후반 IMF 사태 직후에도 정부가 원자력 발전소 민영화를 추진했었다"며 "이때도 관심을 보이던 대기업이 부지 선정, 폐기물 처리를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으면 인수할 수 없다고 나와서 무산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원자력 민영화, 이렇게 밀어붙이면 안 돼"
이번 계획이 본격적인 원자력 발전소 민영화의 물꼬를 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청년환경센터 이헌석 대표는 "설계 부문을 민영화한 다음에는 운영 부문의 민영화 얘기가 나올 것"이라며 "정부는 원자력 발전소를 민영화했을 때의 후과를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정부가 원자력 발전소를 확대하려는 시점에 나온 이런 민영화 계획은 더욱더 여러 가지 면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이원영 부장은 "원자력 발전소 민영화는 불가능하다"며 "설사 민간 기업으로 넘어가더라도 정부가 계속 뒤를 봐주는 형식이 될 수밖에 없어서 또 다른 특혜를 양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단 민영화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하면 그 동안 은폐됐던 부지 선정, 폐기물 처리와 관련된 원자력 발전소의 각종 고비용 요소들이 드러난다"며 "정부의 특혜 약속 없이 어떤 기업이 이런 '폭탄'을 떠 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국전력기술 노동조합 등 노동계도 애가 타기는 마찬가지다. 민주노총 출신 홍희덕 의원(민주노동당)은 "국내외 자본이 원자력 산업을 독점하면 엔지니어들의 국외 유출과 같은 일이 발생할 것"이라며 "정부가 앞뒤 안 가리고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한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이런 대목 탓"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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