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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 아이 굶겨죽이는 '소득 1만5천불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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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 아이 굶겨죽이는 '소득 1만5천불 사회'

막노동 아버지 일자리 끊겨 두달전부터 굶어, 정부 "살려달라" 외면

막노동을 하던 일용직 노동자의 4살 난 아들이 굶어 숨진 사건이 발발,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4살배기 유아, 피골이 상접한 채 장롱에서 숨진 채 발견**

18일 오전 11시40분께 대구시 동구 불로동 김모씨(39)씨 월세방 장롱에서 김씨의 3자녀 중 둘째인 4살짜리 아들이 숨져 있는 것을 주변에 있는 성당관계자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또 김씨의 21개월 된 막내딸도 심한 영양실조를 앓고 있어 인근병원으로 옮겨져 치료중이다.

<매일신문> <대구신문> 등 대구지역 언론보도에 따르면, 숨진 김군을 최초로 발견한 불로성당 사회복지부장 구모씨(53)는 "김치와 쌀을 전해준 뒤 평소 건강이 좋지 않던 김군의 안부를 물었더니 김군의 아버지가 아무 말 없이 장롱문을 열어보였다"며 "뼈대만 앙상한 김군이 숨진 채 장롱에 있어 신고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김군의 어머니 김모씨(38)는 21개월 된 딸을 업고 불로성당을 찾아가 "먹을 것이 다 떨어졌다"며 도움을 청한 뒤 기저귀값 1천5백원을 빌려가, 이틀날 불로성당 사회복지부장 구모씨가 쌀과 김치를 갖고 김씨 집을 찾아갔다가 김군의 사망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경찰은 숨진 김군이 발견 당시 말 그대로 '피골이 상접한 상태'였으며 부패정도로 미뤄 며칠 전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돼 영양실조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정확한 사인규명을 위해 부검을 의뢰했다.

경찰조사에서 김군 아버지는"지체장애를 가진 아들이 지난 16일부터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경련을 일으켰다"며 "아들이 사망한 것을 알면서도 신고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막노동 일을 하고 있는 김씨는 " 요즘 경기가 나빠지면서 그나마 있던 일감마저 사라져 온 가족이 하루 한끼는 거의 매일 굶었고, 한 달에 1주일 정도는 전혀 식사를 하지 못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지난 16일 밤 12시께 숨진 김군은 밤 늦게 부모가 돌아와 보니 심한 경련과 함께 손 부위 등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어 병원 치료를 위해 김씨 부인이 주위에 돈을 빌리려 다녔지만 어느 누구도 돈을 꿔주지 않아, 김씨 부부는 아이의 머리와 배를 따뜻한 물수건으로 닦아주고 수지침을 놓는 등 응급조치를 취해보았지만 결국 숨지고 말았다. 김씨 부부는 이에 다른 사람들이 이를 볼까봐 두려워 장롱 속에 넣어 둔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는 막노동, 어머니는 정신지체 3급 장애자**

김씨 가족의 경우 겉으로는 부모가 30대로 젊고 노동력이 있어, 국가가 생계를 일부 보전해주는 '극빈층'을 가리키는 '국민기초생활 수급대상자'가 아니다. 하지만 실제상황는 이미 오래 전 극빈층 이상이었다.

2년전 직장을 잃고 막노동을 하던 김군 아버지는 두달 전부터 일거리가 떨어져 수입이 거의 없어 그후 굶기를 밥먹듯 해야 했다. 경찰이 현장확인을 위해 김씨 집에 갔을 때 보증금 1백만원에 월세 25만원짜리 셋방에는 텅빈 냉장고만 있었을 뿐 먹거리가 전무했다. 한달에 1~2만원에 불과한 전기·수도료마저 제 때 내지 못해 집주인이 수개월전부터 대신 납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군 어머니마저 정상이 아닌 정신지체 3급 장애자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동안 의료기관의 정신장애에 대한 진단을 한 번도 받지 못했고, 따라서 장애인 등록 조차도 하지 못했다. 김씨 가족이 2년여전부터 이 동네에 살았지만, 어느 누구도 기초생활 수급권자 신청이나 장애인 등록에 대해 조언을 해주지 않았고, 관할 대구 동구청 역시 이들 가족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에 사망한 김군도 미숙아로 태어나 평소에도 건강이 좋지 않아 밥을 떠먹여 주지 않으면 식사를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생활비를 벌기 위해 부부가 밤낮없이 뛰어다니는 동안 집안 살림은 7살 큰 딸이 챙겨야 했고, 7살난 아이에게 밥도 혼자 못먹는 동생을 돌본다는 것은 너무 벅찬 일이었다. 이런 와중에 2살난 막내도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렸다.

***죽기 1주일전 정부에 지원 요청했으나...**

더욱 안타깝고 충격적인 사실은 사건 발생전 이들 가족이 정부에 구원을 요청했으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사건 발생 일주일 전 어머니 김씨는 아들의 '후천성 성장발육저하'로 장애인 등록을 하기 위해 동사무소를 찾았다. 등록이 되면 아들을 장애인을 위한 어린이집 같은 사회보호시설로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씨는 발을 돌려야 했다. 동 사무소가 김씨가정 현장조사 등을 하는 대신 병원 진단서 등 관련 서류를 갖춰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병원비도 없고 절차도 너무 복잡해 엄두를 못냈던 것이다. 만약 동사무소에서 현장조사만 했더라도 김군이 굶어죽는 최악의 사태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주위의 반응이다.

최근 전국적으로 실시된 차상위계층 조사에도 김씨 가족은 포함되지 않았다. 차상위계층은 극빈층 바로 위의 계층으로, 4인 가족으로 월수 1백22만원이하인 빈민층을 가리키며, 극빈층과 차상위계층 등 빈민층은 도합 5백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건직후 뒤늦게 동구청은 이들에 대해 차상위계층 지정 및 의료보호증 발급 등 지원책을 찾기로 했다.

다수 국민은 지금 IMF사태때보다 극심한 경제난에 절망하고 있다. 매일같이 30명이 자살하는 데 이어, 이번에 발생한 '어린아이 아사(餓死) 사태'는 올해 우리경제가 숫자상으로는 1인당 국민소득 1만5천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으나 그 내면은 부의 양극화로 얼마나 심각한 골병이 들었는가를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한 경제부처 수장이 "빈민층이 급증하면서 내년에는 못 살겠다고 데모할 국민이 1천만명이 될 것"이라고 했던 '불길한 예언'이 이제 눈앞 현실로 나타나려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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