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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사와 나오키는 <몬스터>를 그리기 시작할 무렵 슬슬 시작한다는 생각을 했다. 1995년 무렵이었다. 10년 전에 그린 <파인애플 아미>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첫 번째 장편 만화였다. 그 10년 동안 우라사와 나오키는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인물의 캐릭터를 구축하는 법을 터득했다. <파인애플 아미>는 베트남 퇴역 군인의 이야기였다. 강인하지만 외로운 남자는 의뢰인들을 구원한다. <야와라>는 여자 유도 선수들의 이야기였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꼭 의사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보고 싶었다. 하지만 출판사가 거부하자 <야와라>를 떠올렸다. <야와라>로 우라사와 나오키는 인기 만화 작가가 됐다. 다음은 여자 테니스 선수들의 야이기인 <해피>였다. 모두 인물이 살아 숨쉬는 따뜻한 만화들이었다. <마스터 키튼>에서 우라사와 나오키는 일본과 유럽의 혼혈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마스터 키튼은 보험조사원이다. 그는 죽음의 진실에 접근한다. 키튼은 죽음의 참 모습에서 삶의 얼굴을 찾는다. <마스터 키튼>은 그림보다 대사가 많은 만화다. 유럽 문명과 일본 역사에 대한 백과사전적인 지식이 들어있다. 주인공 키튼은 <파인애플 아미>의 주인공을 매만진 캐릭터였다. 키튼도 강하지만 외로운 남자였다. <마스터 키튼>으로 우라사와 나오키는 비로소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마스터 키튼>은 이야기의 추진력은 약했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이야기의 공백을 사유와 철학으로 채웠다. <마스터 키튼>에서 우라사와 나오키는 마침내 거대한 이야기에 손을 댄다. 인물과 인물의 인연은 거미줄처럼 엮인다. 인물의 인연은 거대한 철학적인 명제로 이어지고 명제와 명제가 만나면서 우라사와 나오키의 세계가 형성됐다. 10년 동안 우라사와 나오키는 조금씩 작품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몬스터>였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일본 만화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말했었다. "<몬스터>를 그리고 시작할 무렵 이제 슬슬 시작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앞으로 끔찍한 일이 생길 거란 생각으로 제목도 <몬스터>라고 붙였다."
끔직한 일은 이제부터였다. <몬스터>에서 우라사와 나오키는 질문으로 가득 찬 세계를 구축한다. 인간애란 무엇인가. 선이란 무엇인가. 악은 나쁜가. 인간은 나약한가. 선과 악과 삶과 죽음 사이에서 인간은 과연 무언가를 선택할 수는 있는가. 의사인 주인공 덴마는 죽어가는 아이를 살린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덴마는 시장을 수술하라는 병원 원장의 명령을 거역하고 추락한다. 나약해진 덴마는 회의하면서도 아이를 살렸다는 자긍심으로 버티고자 한다. 그러나 아이는 악마였다. 아이는 악마로 키워질 운명이었다. 아이는 덴마를 위해 병원 원장을 죽인다. 덴마는 순식간에 병원의 권력자가 된다. 하지만 덴마는 병원을 떠난다. 아이를 죽일 결심을 한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모른 채 단지 무언가를 끝내고자 한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봉준호 감독에게 이런 말을 했다. "사회에서 봤을 때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선인지는 항상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거 같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항상 시대 상황이나 배경에 따라 달리 규정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린 항상 보편적인 정의를 찾기를 원하죠." <몬스터>의 덴마는 그걸 찾고 있다. 그러나 덴마가 발견하는 삶의 진실은 분명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20세기 소년>은 3연작으로 영화화됐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는 한 컷 한 컷이 치밀하게 계산된 이미지다. 그래서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은 영화로 만들기에 적합해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반대다. 한 컷 한 컷의 이미지가 너무 조밀하고 치밀해서 영화 감독은 도저히 다른 선택을 하기가 어렵다. 일본 만화 <올드보이>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모티브만 제외하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20세기 소년>은 1969년과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오간다. 이야기의 구조가 실줄과 날줄로 엮여있다. 2시간 길이의 영화 한 편으로 담아내기엔 방대하다. 영화 <20세기 소년>의 연출은 <내일의 기억>을 만든 츠츠미 유키히코 감독이 맡았다. 와타나베 겐의 다소 자전적인 이야기였던 <내일의 기억>은 알츠하이머를 소재로 한 신파 멜로였다. 하지만 츠츠미 유키히코 감독은 원래 건조한 다큐멘터리를 선호하는 사회파 감독이다. <20세기 소년>이 지닌 체제의 대한 비판과 인간에 대한 불신과 기대와 문화 혁명에 대한 희망은 츠츠미 유키히코 감독 같은 의식 있는 감독에겐 썩 잘 어울린다.
영화 <20세기 소년> |
우라사와 나오키는 <20세기 소년>을 8년 만에 완성했다. 지금 그는 <플루토>를 그리고 있다. 데즈카 오사무가 <아톰>을 창조한 지 50년이 됐다. <플루토>는 반세기를 기억하지만 기념하진 않는다. <플루토>의 세계에서 아톰은 더 이상 해맑은 아기 로봇이 아니다. 부모를 그리워하는 철부지도 아니다. 아톰은 중동 전쟁에 참여했고 대학살을 저지른다. 아톰이 옳은가. 아톰은 죄가 없는가. 아톰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한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아톰의 고뇌하는 전자 두뇌 안에서 다시 한 번 보편적인 정의의 진리를 질문한다. 프랑스 르몽드는 일본 만화를 특집으로 다루면서 우라사와 나오키를 가운데에 뒀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세계는 이미 전세계와 소통한다. 일본 만화계는 50년 만에 <아톰>을 부활시키기로 작심했다. 그러나 일본 만화계에서 데즈카 오사무는 신이다. 아톰은 신의 아들이다. 모두들 신의 아들을 재창조할 인물은 우라사와 나오키 밖에 없다고 했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일본 만화계의 새로운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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